▲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원
동구 누리집 ‘열린 구청장실’이라는 코너에 3월 20일자로 ‘화도진과 한미관계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화도진지 고증에 애쓴 ‘개항과 양관역정’의 저자 최성연의 노고를 밝히면서 “오랫동안 터만 남아 잡초만 무성한 언덕으로 방치되었던 화도진지가 다시 군영모습을 되찾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한미관계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했다. 이어 “물론 이설(異說)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조차도 부정확하다고 본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화도진지를 한미관계와 연결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됐다고 본 구설(舊說)을 따랐기 때문이고, 이설(異說)이 부정확하다고 단정한 것은 조약 체결지로 새로 제기된 ‘파라다이스호텔 설’과 ‘라파치아 웨딩홀 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근거를 밝혀놓지 않아, 알 수 없다.

‘파라다이스호텔 설’은 2000년대 중반 한 연구자에 의해 제기됐다. 최성연 선생이 자료를 오독해 화도진지가 조약 체결지로 잘못 알려져 왔다고 보고, 파라다이스호텔 자리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장소로 새롭게 제시했다. 그동안 정설로 받아들였던 ‘화도진 설’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인천해관 관사 터’라는 구체적 지점을 주목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한 문제제기였다.

‘인천해관 관사 터’는 조약이 체결된 곳으로 기록돼있는 장소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게 조약 체결지를 고증하는 중요한 단서로 언급돼왔다. 그러던 중, 2013년 해관 사료를 수집해오던 관세청 서울세관 공무원이 ‘Commissioner’s present residence’라고 적힌 ‘제물포지도’를 발견하면서 옛 라파치아 웨딩홀 자리가 새로운 장소로 지목됐다. 현재로선 가장 신빙성이 높은 자료다. 좀 더 정밀한 고증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붙인다 하더라도, ‘화도진 설’은 지금으로서는 사실상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봐야한다. 근거가 되는 자료나 논리적 설명이 다른 설들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화도진 설’을 고집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조약 체결지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화도진과 한미관계 이야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역사관이 담겨 있다. 우선, 화도진의 고증과 복원을 ‘한미관계’에서 찾으려는 시각이다. 근대사에서 화도진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략했다 쳐도 ‘한미관계’라고 못 박아 표현한 건, 미국과의 수교 100주년을 기념한 덕에 화도진이 복원될 수 있었다고 보는 태도다.

이러한 시각은 글 전체를 감싸고돌아서 “결과적으로 슈펠트가 우리나라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보장해준 셈이 되었다”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슈펠트가 ‘권유’해 태극기가 처음 만들어졌다고도 했다. 마치 우리가 태극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게 슈펠트의 친절 때문이었다고 오해할 만한 설명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일을 조례까지 만들어 ‘동구 구민의 날’로 정한 일도 재고해봐야 할 문제인데, 동구의 공식적인 글에서 근대시기 서구 열강의 한 나라였던 미국과의 관계로 ‘동구의 정체성, 존립성, 애향심’을 찾으려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 건 납득하기 어렵다.

올해 ‘화도진축제’ 주제가 ‘함께 갑시다’라고 한다. 미국의 한 주(州)라도 되고 싶은 걸까. 너무 먼 곳을 바라보지 말았으면 한다. 함께 갈 사람들은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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