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열었을 때 벽으로 뭔가가 빠르게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머리가 쭈뼛했다.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파리채를 찾는 사이, 그놈은 벌써 저만치나 달아났다. 긴 더듬이를 움직이며 잠시 머뭇거리는 그놈을 향해 파리채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순식간에 상황 종료. 사체를 처리한 후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잦아들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작 손톱만한 녀석 때문에 이리도 법석을 떨다니.

날씨가 따뜻해져서인지 요즘 어쩌다 한 번씩 집에서 바퀴벌레를 본다. 바퀴벌레는 그냥 바퀴라고도 한다. 따뜻하고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난방과 수도시설이 잘 갖춰진 인간의 집은 바퀴가 살기에 안성맞춤이다. 날마다 쓸고 닦고 하는데 왜 바퀴벌레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우리 집처럼 건물이 오래된 경우 집안이 아니라 건물 틈바구니 어딘가에 장기투숙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럴 땐 해충 퇴치하는 업체에 연락하거나 건물을 부수는 것이 답이라고 하니, 이 집에 사는 동안엔 바퀴를 그냥 받아들여야 하나보다.

바퀴는 주로 한밤중에 갑자기 불을 켰을 때 보인다. 참 신기한 것은, 바퀴를 발견한 순간, 바퀴는 이미 내가 있는 방향을 정확히 등진 채 잽싸게 도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바퀴는 1초에 무려 1.5m를 움직인다. 사람으로 치면 100m를 1초 만에 달리는 속력이다. 게다가 바퀴의 꼬리엔 아주 약한 진동도 감지할 수 있는 털이 돋아나 있다. 이 털은 공기가 진동하면 진동이 오는 반대방향으로 휘어져 도망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덕분에 불을 켜려는 내 움직임을 느끼고 미리 내뺄 수 있었던 것이다.

바퀴를 혐오곤충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생김새도 왠지 기분 나쁘지만, 세균을 옮긴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대부분의 바퀴가 인간에게 해롭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맞다. 바퀴 4000여 종 가운데 세균을 옮기는 건 20여종밖에 안 된다. 하지만, 바로 이 적은 종의 바퀴가 바로 인간 주변을 맴돌며 살아가는 녀석들이다. 나머지 많은 종의 바퀴는 썩은 나무나 숲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모든 바퀴가 해충은 아니지만, 벽이나 방바닥을 기어가는 바퀴는 해충이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인간과 오랫동안 어우러져 산 동물들은 옛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한다. 까치나 쥐, 개, 호랑이, 구렁이, 지네나 새, 모기, 심지어 파리도 그렇다. 그런데 바퀴는 전래동화에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짐작하는 게 있다. 원래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에 사는 바퀴는 파리보다 더 작았다고 한다. 날개가 퇴화돼 날지 못하고, 존재감도 미미했다. 그러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미국 물자에 묻어 새로운 종의 바퀴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커다란 데다 휙휙 날기까지 하는 바퀴를 본 것은 이때부터였으니, 전래동화에 바퀴가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리 생명력 강한 바퀴라 해도 천적은 있다. 거미나 벌이 대표적인 천적으로 꼽힌다. 곰팡이와 고양이도 바퀴의 천적이다. 다만, 그 천적이 도시에 살지 못할 뿐이다. 가게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바퀴벌레 약은, 먹은 것을 서식지에다 토해 다른 바퀴와 나눠먹는 바퀴의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이 방법은 개체 수를 줄일 수는 있어도 박멸은 어렵다. 연기로 바퀴의 숨통을 죄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바퀴의 알 껍질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래서 얼마 후 새로운 세대의 바퀴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바퀴는 그 자체로 아무 문제가 없는 곤충이다. 3억 5000만년 동안 바로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지구에서 살아왔다. 오히려 도시의 지저분한 환경이 더 문제다. 인간은 200년 만에 지구를 오염덩어리로 만들고야 말았다. 지구 입장에서 박멸해야할 것은 바퀴일까, 인간일까? 쉽고도 어려운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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