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섯 살이던 어느 날 저녁,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언니가 내 귀에 대고 비밀스런 이야기를 속삭였다. “내일 아침에 밥 먹고 나면 엄마 아빠한테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거야. 내가 아빠한테 달아드릴 테니, 너는 엄마한테 달아드려”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고, 잘 할 수 있겠냐고, 내게 몇 번이나 확인했다. 나는 지상 최대의 부담스런 미션을 부여받은 듯, 정말로 진지해졌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밥을 다 먹고 언니가 내게 눈짓을 하며 주머니에서 꽃을 꺼냈다. “엄마 아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섯 살짜리가 시침핀으로 꽃을 꽂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내 손에 있던 꽃은 엄마가 직접 달았다. 들키진 않았으나 달진 못했으니 절반의 성공이었다.

노동자의 날을 시작으로 온갖 ‘날’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5월이다. 이중 나와 관련 있는 날은 어버이날뿐이다. 어버이라는 말은 어머니에서 ‘어’를, 아버지에서 ‘버’를 딴 것이다. 한자로는 부모(父母)이다.

 
아비 부(父)는 돌도끼를 손에 든 모습에서 나왔다. 돌을 다듬어 만든 돌도끼로 나무를 잘라 건물을 짓고, 흙을 파고, 커다란 고깃덩어리도 쓱쓱 잘랐다. 돌도끼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바로 동물을 사냥할 때였다. 돌도끼 한 방에 동물들이 정신을 잃고 픽픽 쓰러지니,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엔 하트가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도끼가 꼭 좋은 일에만 쓰인 것은 아니다. 말을 잘 듣지 않는 누군가를 벌하는 데에도 가차 없이 쓰였다. 돌도끼는 먹을 것과 가죽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도구이자 한편으론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부와 권력은 점차 돌도끼를 든 이에게 집중됐고, 결국 父는 ‘아버지’를 뜻하는 글자가 됐다. 그래서 父는 가부장제에 뿌리를 둔, 가부장제를 그대로 상징하는 글자라 할 수 있다.

희한한 것은, 대부분의 한자가 다른 한자와 결합해 새로운 뜻으로 거듭나는 것과 달리, 父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父와 비슷한 모양의 ‘사귈 교’(交)도, 사람의 모습을 본뜬 한자 글월 문(文)에 팔 두 개를 더한 것으로 돌도끼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른 한자와 감히 함께 쓰지도 못할 만큼, 父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멀고 큰 존재였을까? 어쩌면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父가 권위와 선망을 넘어 두려움과 공포로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父는 외로움을 상징하는 글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어미 모(母)는 여자 녀(女)에 점 두 개를 찍어 젖가슴을 강조한 글자이다. 분유도, 젖병도 없던 시절,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이를 낳은 이뿐이었으니, 당연히 어머니를 의미한다. 혹시, 아비 부에 비해 단순한 글자라 생각하시는지? 만일 그렇다면 그 생각의 뿌리 역시, 아이에게 젖먹이는 값진 일에 그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가부장사회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젖먹이는 일이 돈 버는 일보다 가치를 인정받고, 아기를 낳은 여성들이 많은 복지를 누리는 환경에 사는 이에게 母라는 글자는 아마도 높은 인간애와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글자로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와 언니에게 생애 최초의 어버이날이었던 그 날은, 우리 부모님에게도 최초의 어버이날이었다. 평소 무뚝뚝함과 자상함을 맘대로 넘나들던, 조금은 제멋대로였던 우리 아빠는 그날 몹시 감동한 듯, ‘회사 가서 사람들에게 자랑할 거다. 오늘 하루 종일 달고 있을 거다’라고 하셨다. 옆에서 환하게 웃던 엄마 얼굴도 기억난다.

올해 난 생화 대신 코바늘로 카네이션을 한 송이 만들었다. 비록 꽃을 달아드릴 가슴 하나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드릴 이가 있음에 감사한다. 엄마, 낮에 짜증내서 미안해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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