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점심시간을 코앞에 둔 11시 58분. 굉음과 함께 천지가 뒤흔들렸다. 건물 수십만 채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식사 준비를 위해 피워둔 불은 순식간에 나무로 된 벽과 지붕에 옮겨 붙었다. 여기저기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와 비명소리로 도시는 아수라장이 됐다.

90여 년 전 일본 관동지역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현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지진으로 기록된다. 이 지진으로 300만 명에 달하던 그 지역 인구 중 20만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관동지역은 수도인 도쿄와 요코하마 등 대도시가 속한 곳으로 일본의 수도권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도쿄는 대지진과 2차 세계대전 폭격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우고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그런데 외국 재난전문가들에게 이런 도쿄의 모습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한낱 ‘죽음을 기다리는 도시’일 뿐이다. 지진이 또 일어날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진 말이다.

지진은 땅속이 무너질 때 생기는 진동이다. 그렇다면, 땅은 왜 무너질까. 지구는 ‘지각-맨틀-핵(외핵과 내핵)’으로 구성돼있다. 삶은 계란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지각은 계란껍데기처럼 얇고 단단하다. ‘판’이라 부르는 열 개 정도의 커다란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 이 이론을 판구조론이라 한다.

맨틀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끈적끈적한 암석으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고 액체란 뜻은 아니다. 겉으론 단단한 고체처럼 보이지만 계속 아래로 흐르고 있는 유리를 생각하면 된다. 맨틀은 엄청나게 뜨거운 핵과 차가운 지각 사이에서 열을 이동시키며 매우 천천히 위아래로 대류운동을 한다. 이 때문에 지각 역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느리게 흐르는 맨틀을 따라 지각도 천천히 이동한다. 이른바 대륙이동설이다.

지진은 천천히 움직이던 대륙이 또 다른 대륙과 부딪히는 경계에서 발생한다. 판 두 개가 서로 충돌하면 엄청난 압력이 생긴다. 줄다리기처럼 팽팽하던 힘이 어느 한쪽으로 몰려 압력이 터지는 순간, 지각이 갈라지고 끊어지고 깨지고 난리가 난다. 이때 지진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현상은 판의 경계에선 늘 일어나는 일이다.

지구 전체로 보면 하루 평균 두 차례 정도 진도 2.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지진은 한 번 난 곳에 또 나기 쉽다. 대륙판이 다른 판 아래로 밀려들어가면서 계속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기가 길어지면 그만큼 쌓인 압력이 높아 지진의 강도가 훨씬 세어진다. 도쿄 땅 속 깊은 곳엔 90년 동안 쌓인 압력이 버티고 있다. 그것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얼마 전 네팔에 발생한 지진은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한 것이다. 이 두 판은 약 4000만 년 전부터 부딪히기 시작해 지각을 밀어 올려 지금의 높은 히말라야 산맥까지 만들만큼 힘이 아주 세다. 특히 인도판은 1년에 5cm씩 아시아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대단히 빠른 속도다. 그곳은 과거에도 지진이 발생했고, 앞으로 또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

당연히 예상해야했다. 평소 시민들에게 지진 시 대처방법을 교육하고 건물 내진설계 등 사고에 철저히 대비하는 일본과 달리 네팔은 가난하다. 가난하다고 해서 목숨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판 내부에 위치해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는 나는, 가슴 아픈 참사에 다만 성금 몇 푼을 보내고 기도할 뿐이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든다. 과연 나라가 가난해서 세월호 참사가 생겼을까? 기술과 교육 수준이 낮아 원인을 못 밝히는 걸까? 참,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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