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친구 집에 놀러갔다. 늘 깔끔했던 거실 한쪽에 접시들이 줄지어 있었다. 접시에 놓인 건 이제 막 싹이 튼 무와 옥수수 씨앗들. 물 적신 휴지에 씨앗을 올려놓고 휴지가 마르지 않게 며칠 동안 신경을 썼다고 했다. 곧 마당 텃밭에 옮겨 심을 거란다. 흙이 있는 마당도 없고 큰 화분을 놓을 자리도 마땅치 않은 데도, 나는 굳이 싹 몇 개를 골라 왔다. 하얗고 가느다란 뿌리에 의지해 조그만 이파리를 꼿꼿이 세운 새싹의 자태가 몹시 탐났기 때문이다.

식물은 대단하다. 한시도 쉬지 않고 며칠, 몇 달, 몇 년을 선 채로 지내니 말이다. 그 상태로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중력의 힘을 거슬러 땅 속의 물을 꽃잎까지 전달하는 지경에 이르면, 신기하다 못해 마법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 올리듯, 그 높은 곳까지 물을 전달할 힘이 대체 어디서 나는 것일까? 숨겨둔 모터라도 있는 것일까?

지구에는 참 희한한 현상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가느다란 관을 물속에 넣으면 물이 관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분자들 사이의 서로 끌어당기는 힘, 인력과 관련 있다. 물과 같은 액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을 응집력이라 부르는데, 응집력 때문에 액체는 서로 모여 있으려는 성질을 띤다.

 
물을 그릇보다 더 높이 부어도 넘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응집력 때문이다. 그런데 물에 관을 넣으면 물 분자와 관 사이에도 인력이 생긴다. 물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보다, 관이 물을 끌어당기는 인력이 더 셀 때, 물은 관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이때 올라간 물의 무게가 물과 관 사이 인력과 똑같아지면 물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두꺼운 관에는 무게 때문에 물이 조금 올라가는 반면, 관이 가늘수록 물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식물은 아주 가느다란 관으로 연결돼있다. 이 관으로 뿌리에서 흡수한 물이 잎과 꽃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을 모세관현상이라 부른다.

꼭 관을 타고 액체가 올라가는 것만 모세관현상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다. 관을 수은이 가득 담긴 통에 집어넣으면 수은 높이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수은 분자들끼리의 응집력이 관과 수은 사이의 응집력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모세관현상이다.

모세관현상은 생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책상에 엎은 물을 수건으로 닦을 때, 수건과 물 사이에서 이 현상이 일어난다. 비가 오지 않는 마른 땅에서 커다란 나무가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물기가 땅 사이 좁은 틈으로 쉴 새 없이 올라와 뿌리가 이를 흡수할 수 있다. 가뭄에 땅이 갈라지는 것은, 땅에서 올라오는 물의 양보다 증발하는 양이 많기 때문이다.

모세관현상과 관련한 실험을 집에서 해볼 수도 있다. 주방에서 쓰는 종이타월을 길게 꼬아 한 쪽을 흙탕물이 담긴 유리컵에 담근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빈 유리컵에 걸쳐 놓는다. 몇 분 후부터 흙탕물이 종이타월을 타고 빈 유리컵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상태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빈 유리컵엔 맑은 물이 가득 들어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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