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훈 교사가 전하는 ‘부모가 알아야 할 학습의 원리’②

 
부모가 공부를 강조하면 아이는 오히려 공부를 더 싫어한다. 참 역설적이다. 그래서 좋은 부모 되기가 더 쉽지 않은 것 같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유아기 자녀가 있고 학습지와 학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당장 그만 두라고 조언하고 싶다. 대신,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방법이 부모와 아이의 좋은 관계뿐만 아니라 공부에도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자녀와 대화’에 집착하는 유대인들

전 세계적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이다. 미국 대학의 입시사정관제도가 겉으로는 봉사활동이나 전공 관련 다양한 활동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수의 유대인이 미국 명문대를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대인의 자녀교육의 비결은 무엇일까? 몇 가지 있지만, 그 중 핵심은 부모와 자녀의 대화이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은 자녀에게 유대교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녀와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는 시간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녀와 대화, 왜 중요한가

그렇다면 자녀와 대화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유명한 연구 중에 하나가 하버드대학교 캐서린 스노우 박사의 연구이다. 스노우 박사팀이 만3세 자녀를 가진 83개 가정을 대상으로 2년간 언어습득을 연구한 결과, 아이들이 ‘책 읽기’로 배운 단어는 140개에 불과했지만, ‘가족과 식사’하면서 배운 단어는 무려 1000개 정도로 파악됐다. 여기에서 가족과 식사는 단순히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활발한 대화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초등학교 진학 후에도 가족과 식사를 자주하는 아이일수록 학업성적이 높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모와 대화를 많이 하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다

2002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국가 학업성취도 평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부모와 대화를 자주 하는 학생이 모든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비결은 무엇일까. 자녀와 대화 속에 숨겨있는 보물은 바로 아이가 부모와 대화하면서 얻는 언어능력이다.

아동의 언어능력 중에 수용 어휘력(=듣고 이해하는 능력)은 지능(IQ)과 높은 상관성을 보인다. 즉, 부모와 대화로 아이들은 높은 언어능력을 갖추고 또한 이를 바탕으로 우수한 지적능력도 얻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능(IQ)이 높은 아이는 학업 성취 또한 우수하다.

참고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에서 눈여겨볼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올바른 성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69.8점)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아이가 ‘공부 잘해라’(62.3점), ‘좋은 친구 사귀어라’(61.8점)라고 말하는 부모의 아이보다 성적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부모가 학업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공부’를 강조하는 것보다 ‘훌륭한 사람’ 즉, 가치와 인격을 강조하는 것이 공부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우선 가정에서 식사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식사 시간에 대화를 가능한 절제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 밥상에서 말을 했다가 할아버지에게 혼난 기억이 있다. 그리고 대화를 더 이어가기 위해 후식도 필요하다. 던킨 도너츠의 윌리엄 로젠버그, 허쉬 초콜릿의 밀턴 허쉬,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의 매터 루우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유대인이다. 유대인 어머니는 자녀와 대화를 연장하기 위해서 달콤한 후식을 준비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대화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준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한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읽기연구소의 김영숙 교수는 아이들의 ‘언어 확장’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끊임없는 질문 공세로 부모를 괴롭힌다. 보통 ‘피곤하니깐 그만 질문해라’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면 안 된다. 아이의 질문에 친절하게 응해야한다. 그리고 너무 쉽게 설명하지 말고 적절한 난이도가 있는 단어를 사용해 답할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바로 다음 질문을 이어가고, 부모는 그 단어를 설명하며 점점 처음 시작한 주제와 관련한 단어를 ‘확장’해가는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많은 남자 아이가 공룡에 흥미를 보인다. 이때 의도적으로 ‘공룡에는 초식 공룡과 육식 공룡이 있단다’라고 말하면, 아이는 ‘아빠, 초식이 무슨 뜻이야’ 하고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초식에서 초의 뜻은 풀이고, 식은 먹는다는 뜻으로, 두 단어를 합쳐 풀을 주로 먹는다는 뜻이야’라고 답하면 된다. 이것이 언어를 확장해나가는 방법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아이와 대화를 연결하고 또 연결해나가면 하루 종일이라도 대화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보물은 ‘정서’

부모와 대화로 아이는 학습에서 또 하나의 보물인 ‘정서’라는 선물을 얻는다. 부모와 많이 대화하는 아이는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어른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상담 받길 원한다.

학습에서 ‘정서’는 지적능력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서 불안은 아이의 학습에 치명적인 방해를 준다. 미국 UCLA 대학의 앨런 쇼어는 영유아기 시절 아이가 부모의 지속적 무관심과 같은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뇌가 더 작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또한 미국 워싱턴 의과대학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적게 받은 아이의 경우 뇌의 해마(hippocampus)가 더 작다는 것을 발견했다.

뇌의 해마는 기억의 중추로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묘하게도 기억과 학습 그리고 감정적인 행동도 함께 관여한다. 따라서 뇌가 정서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우선적 기능인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집중하기 때문에 기억과 학습의 기능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책상에 앉아 있어도 정신은 딴 곳에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길 원한다면 아이와 많이 대화하길 바란다. 여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학습의 비밀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자녀와 함께 여유 있는 저녁 식사와 후식 그리고 언어를 확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민거리가 또 있다. 가족과 대화를 방해하는 텔레비전(TV)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아이의 변화는 언제나 부모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 김중훈 시민기자는 인천운서초등학교 교사이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