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선장, 노구로 어선 몰아 여의나루 도착

▲ 지난 20일 새벽 연평도를 출발한 어선이 경인아라뱃길을 이용해 한강으로 들어와 여의도로 향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인천 앞 서해 5도를 출발한 어선이 한강 여의나루에 도착했다. 65년 만의 일이다. 한국전쟁 전후로 뱃길이 달라지긴 했지만, 서해와 한강을 잇는 뱃길이 다시 열린 것이다.

한국전쟁 전에 서해 어민들은 강화도 북단 즉, 예성강과 한강이 만나 이루는 염하를 타고 한강 하구를 이용해 마포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65년이 흐른 2015년, 연평도 어민들이 지난 20일 인천항 연안여객 뱃길로 인천대교를 지나 인천항을 경유한 다음에 경인아라뱃길을 타고 한강 여의나루에 도착했다. 연평도에서 여의나루 임시선착장까지 6시간 정도 걸렸다.

한국전쟁 이후 단절된 뱃길이 다시 열린 이날, 어민들은 서해 5도 수산물을 직접 판매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달려왔고, 정치권은 앞 다퉈 이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연평도 어민들은 어선 세 척(어촌1호ㆍ수광호ㆍ원양호)에 싣고 온 건 농어ㆍ광어ㆍ홍어ㆍ꽃게 등 수산물 약 280kg이다. 어민들은 육지에서 맛보기 어려운 무게 10kg 이상의 자연산 농어와 홍어를 직접 해체해 입항식을 찾은 사람들에게 맛을 보여줬다. 서해 5도는 꽃게가 많이 잡히는데, 홍어 역시 전라남도보다 어획량이 많다.

이 어민들은 수산물만 가져온 게 아니다. 어선 세 척에 모두 ‘중국어선 불법조업으로 고통 받는 서해 5도 어민들을 도와주세요’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즉, 중국어선 불법조업으로 고통 받는 어민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미로 여의나루에 온 것이다.

서해 5도와 한강을 잇는 뱃길을 복원한 서해아라뱃길정책추진단 관계자는 “서해 5도는 남북 접경지역으로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생존이 위협받는 곳이다. 게다가 10여년 넘게 지속된 중국어선 불법조업으로 생계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서해 5도의 특수성을 감안해 ‘서해 5도 지원 특별법’ 개정을 통한 정부의 피해 보상과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한국수자원공사 경인아라뱃길사업본부는 지난해 서해아라뱃길정책추진단을 발족했다. 정책추진단은 경인아라뱃길 인근에 서해 5도 농수산물 직판장이 필요하다고 국회를 설득했고, 국회는 해양수산부에 관련 예산을 반영했다.

이에 따라 인천공항철도 검암역(서구 시천동) 인근에 ‘서해5도복합수산물센터(3층 규모)’가 내년에 들어설 예정이다. 검암역은 인천공항철도와 KTX가 지나는 역이며, 내년에 개통 예정인 인천도시철도 2호선의 환승역 역할도 한다.

박태원 연평어촌계장은 “지난해 경인아라뱃길 경인항에서 입항식을 할 때까지만 해도 과연 서해와 한강을 잇는 뱃길이 열릴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의문이 반반이었다. 연평도를 출발해 국회 앞까지 오면서 희망이 생겼다. 다만 이번 행사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서해 5도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될 수 있게 정부와 국회가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촌1호를 몰고 온 송동만(72) 선장은 “한국전쟁 전 예닐곱 살 무렵 수산물을 팔러가는 아버지를 따라 연평도에서 배를 타고 마포나루에 왔다. 65년 만에 직접 배를 몰고 다시 한강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수산물을 신선하게 보관할 장소와 이를 운반할 운송선, 그리고 판로가 없어 수산물을 잡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대청도의 경우 보관창고가 있으나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냉장보관이 되지 않는다. 여객선이 운항하지 않는 날은 수산물을 뭍으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조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민들은 “정부와 국회가 적극 지원해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이 섬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나아가 뱃길이 열려 다음 세대는 서해와 한강을 자유롭게 오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인천공항철도 검암역 인근 경인아라뱃길 수변에 조성될 서해5도복합수산물센터 조감도. 1층 수산물판매장, 2층 수산물식당, 3층 복합문화체험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인천지역 여야 국회의원, 앞 다퉈 지원 약속
한강 주변 기초지자체, 판매장 조성 뜻 밝혀

이날 여의나루 입항식으로 서해 5도의 농수산물을 직거래하는 서해아라뱃길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인천지역 여야 국회의원은 이 사업 지원에 한목소리를 냈다.

입항식에 참여한 새누리당 이학재(서구ㆍ강화군 갑) 국회의원은 “군사적 위협과 중국어선 불법조업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민들이 바다와 나라를 지키며 잡는 수산물이 제값에 팔려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라뱃길로 서해 5도 수산물을 수도권 시민에게 공급하는 수산물 직판 사업을 꼭 성공시키겠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남동구 갑) 국회의원 또한 “서해아라뱃길사업으로 수산물직판장을 설치하고 운반선을 도입해 어민들의 소득을 늘려야한다. 4월 임시국회에서 ‘서해 5도 지원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돼 어민 피해 보상이 이뤄질 수 있게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기초단체에선 한강 수변에 판매장을 조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서해아라뱃길정책추진단은 “여의나루 입항식을 치른 후 한강 주변 기초단체에서 서해 5도 어민들을 위해 판매장을 조성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했다.

서해아라뱃길정책추진단은 서해 5도 수산물 운반선 두 척을 구비할 계획이다. 한 척을 백령도와 대ㆍ소청도에, 다른 한 척을 소ㆍ대연평도에 투입해 내년에 검암역 인근에 조성되는 복합수산물센터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그 뒤 한강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하지만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운반선이 없는 상태에서 어선이 경인아라뱃길을 이용하는 게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는 것인지, 또 운반선을 도입한다 해도 조업기간이 아닐 때 운반선 유지관리비를 마련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 허선규 서해아라뱃길정책추진단장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약속했던 대로 우선 국회에서 ‘서해 5도 지원 특별법’을 개정해 운반선 도입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며 “운반선 유지관리비의 경우 휴업기간에 치어 방류 사업 등 공익사업에 활용하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단장은 또한 “서해 5도 수산물을 인천항에 하역한 뒤 육상으로 수송하기 위해 선적하는 과정을 운반선 도입으로 ‘원스톱’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공공기관과 현지 어민들이 운반선 운영에 공동으로 참여함으로써 중간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국산 수산물의 국산 수산물 둔갑을 차단해 소비자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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