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인천에 사는 가족들이 극장으로 총출동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기 위해서다. 76년 동안 부부로 살아온 98세 할아버지와 89세 할머니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터에,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영화가 끝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죽음엔 눈물이 따를 테고, 그걸 보는 나 역시 울지 않을 자신이 없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내 눈물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참 전, 의외의 장면에서 터졌다. 눈에 띄게 기력이 쇠한 할아버지를 이끌고 할머니는 속옷가게에 들른다. 할머니가 고른 것은 아동용 내복 여섯 벌. 손자손녀들에게 주는 것이려니 했는데, 오래 전 하늘나라로 보낸 여섯 자녀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내복 한 벌 입혀보지 못한 채 먼저 보낸 것이 그 나이가 돼도 잊히지 않았던 것이다.

 
‘잊히다’는 뜻의 한자는 ‘잊을 망(忘)’이다. 망(忘)은 ‘망할 망(亡)’과 ‘마음 심(心)’으로 나뉜다. 망(亡)의 갑골문은 날이 부러진 칼을 뜻한다.(그림) ‘칼 도(刀)’에 선 하나를 그어 칼날이 부러졌음을 나타낸 것이다. 망(亡)은 이것을 왼쪽으로 90도 돌려놓았다.

전쟁 중 칼이 부러진다면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나’의 죽음은 전쟁의 패배로 이어져 이전에 의미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래서 망(亡)에는 ‘죽다’ ‘멸망하다’ ‘없어지다’는 뜻도 있다. 죽은 이를 가리켜 망자(亡者)라고 하는데, 이 말은 그냥 목숨이 끊어진 상태가 아닌, 장례까지 모두 마친 상태에서나 쓸 수 있다. 육신에서 영혼을 완전히 떠나보낸 상태가 망(亡)이다.

망할 망(亡) 옆에 마음 심(忄, 심방변)이 붙으면 ‘바쁠 망(忙)’이 된다. ‘망하다’에서 어떻게 ‘바쁘다’는 뜻이 나왔을까? 나는 이 상황을 직접 겪어보았다. 집들이를 앞두고, 날이 무뎌진 부엌칼로 대파 한 단을 잘게 써느라 거짓말 조금 보태 한나절을 보냈다. 음식이 늦어질까 몹시 초조했던 기억이 난다. 바쁠 망(忙)은 부러진 칼을 옆에 두고 절절 매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꼭 일이 많아야만 바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의 한가운데 파묻혀 있을 때는 바쁘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주변 상황이 받쳐주지 않거나 생각이 자꾸 다른 곳으로 흐를 때, 마음은 잠시도 쉬지 못한다. 마음이 쉴 수 없는 상태, 망(忙)은 ‘바쁘다’는 뜻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잊을 망(忘)은 망할 망(亡) 아래에 마음 심(心)을 붙인 것이다. 마음 심(心)은 심장을 나타낸다. 옛 중국인들은 심장에서도 생각이 나온다고 여겼다. 분명 알고 있던 것인데 떠오르지 않는다. 부러진 칼처럼 이젠 꺼내 쓸 수가 없다. ‘잊었다’는 말뜻을 한참 생각해보니, 왠지 허망하다.

넓고 멀다는 뜻의 형용사 ‘망망하다’에는 아득할 망(茫)을 쓴다. 망할 망(亡)에 물 수(氵)와 풀 초(艹)를 더했다. 저 멀리 강 너머에 돋아난 풀밭을 보듯, 넓고 멀어 아득한 상태를 뜻한다.

영화 속에서 길고 긴 인생의 마지막 순간, 먼저 간 어린 자식의 내복을 챙기는 노부부를 보면서, 연초부터 울면 안 된다고 어금니를 꽉 물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대체 얼마나 큰 존재이기에 이토록 긴 세월을 가슴에 품고 산단 말인가.

아직 가야할 때가 되기도 전에 먼저 강을 건넌 이들과, 강은 건넜으되 아직 망자라 불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 것도 변한 것 없는 지금, 이젠 눈물도 미안하다. 그들이 닿은 강가엔 파란 물망초 꽃이 피어 있었을까. 물망초(勿忘草)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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