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락기 강화고려역사재단 연구위원
다리가 놓여 오가기가 한결 편리해진 강화 교동도에는 조선시대 교동도호부의 관아 자리와 그 주위를 둘러싼 읍성이 남아있다. 최근 성벽 근처의 나무를 베어내니 성벽의 흐름을 쉽게 볼 수 있다.

읍성 안에는 관아 터만 있는 게 아니라, 포악한 행위를 하다가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이 머물렀다는 집터도 있다. 이 집터를 소개하는 안내판에는 ‘연산군 적거지(謫居址)’라 쓰여 있고, 그 옆에는 ‘연산군잠저지(燕山君潛邸址)’라 쓴 작은 비석이 있다.

인하대 사학과의 남달우 박사가 여러 해 전에 지적했듯이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한 연산군의 유배 생활을 ‘적거’라 하기 어렵고, 임금이 되기 전에 살았던 집을 가리키는 ‘잠저’란 용어도 임금의 장자로 태어나 세자를 거쳐 임금의 자리에 오른 연산군에게는 있을 수 없는 표현이다.

하지만 강화군 향토유적 28호의 지정 명칭이기도 한 ‘연산군 적거지’라는 표현은 교동을 소개하는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심지어 안내판에는 잠저의 ‘잠(潛)’자를 ‘구(溝)’로 잘못 읽어 ‘연산군구저지(燕山君溝邸址)’라는 엉뚱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한번 정해서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예다. ‘연산군 적거지’는 우선 유적의 지정 명칭을 바로 잡는 데서부터 시작할 일이고, ‘연산군잠저지’라 쓴 비석은 그 자리에서 뽑아 박물관에 옮겨 보관하며 잘못된 명명의 교훈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얼마 전 한 지역일간지에서 동서남북 방위로 붙인 ‘구(區)’ 이름을 지역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이름으로 바꾸자고 제안해 화제가 됐다. 남구는 문학구나 학산구, 동구는 화도구, 중구는 제물포구, 서구는 연희구 등, 해당 지역의 역사적 유래에 기반 한 이름을 붙이자는 것인데, 어떤 이름이 더 적합할지는 해당 구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가면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어떤 이름을 붙이든 인천 전체에서 해당 구가 있는 위치와 맞지 않는 지금의 이름보다는 나을 것이다. ‘제물포역에 동인천고교가 있고, 동인천역에 제물포고교가 있다’는 오래된 농담처럼 전철역 이름을 둘러싼 논의도 마찬가지다.

이름과 실상이 들어맞지 않을 때 생기는 혼란을 고쳐가자는 이런 논의가 더 활발해져 논의로만 그치지 말고 실상에 걸맞은 이름을 갖길 바라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그런데 논의를 이미 여러 차례 반복했음에도 여전히, 어쩌면 점점 더 잘못된 이름이 굳어져 가는 경우도 있다. 바로 ‘송도’이다. 1930년대 후반 옥련동 바닷가에 유원지를 만드는 회사의 이름으로 처음 인천에 알려진 ‘송도’는 완공된 유원지의 이름으로 수십년 불리다가 정작 유원지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인천 남쪽 바다를 메운 거대한 공간의 이름으로 변모했다.

만약 그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을 정할 때 ‘송도동’이라 하지 않고 다른 이름을 썼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누가 뭐라해도 ‘송도’는 일본의 절경 세 곳 중 하나인 ‘마쯔시마’의 한자 독음일 뿐이며, 이 이름을 딴 일본 군함은 청일전쟁 때 참전하기도 했다.

전국을 넘어 세계에까지 알려진 ‘송도’라는 이름을 바꾸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인천에서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자는 의견이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의견에 묻혀버리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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