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공룡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 전집 중에서도 유독 공룡에 관한 책을 거의 매일 봤다. 공룡들의 전투를 직접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토록 커다랗고 힘세고 사나운 것들과 함께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공룡만큼 크고 힘세고 사나운 동물이 아직 지구상에 살아 있다. 바로 코끼리이다. 코끼리의 몸무게는 무려 5톤. 육상동물 중 가장 무겁다. 그래도 초식동물인데 사나운 공룡에 비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코끼리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누구 눈치를 볼 일도, 도망갈 필요도 없다. 그래서 사자는 물론, 악어도 물가에서 물을 빨아들이는 코끼리의 코를 함부로 베어 물지 못한다.

이런 코끼리가 고작 몸무게 100킬로그램도 안 되는 인간에게 끌려 다닌다. 지금이야 텔레비전에서 이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옛날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한자 ‘거짓 위(僞)’에 당시 사람들의 심정이 담겨 있다.

 
僞는 사람 인(亻)과 할 위(爲)로 나뉜다. 爲는 다시 爫(손톱 조)와 아랫부분으로 나뉘는데, 아랫부분이 뜻하는 것은 코끼리이다. 爲의 갑골문(그림 참고)은 세로로 된 코끼리와 그것을 손으로 끌고 가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코끼리를 뜻하는 한자는 象(코끼리, 형상 상)이다. 맨 윗부분이 코끼리의 기다란 코와 커다란 머리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코와 머리를 지우고 통통한 몸통만 남겨 놓은 것이 돼지 시(豕)이다.

象이 코끼리에서 형상이란 뜻으로 확장된 것은 기후 변화와 관련 있다. 3000년 전, 갑골문이 만들어진 상나라 시대엔 중국 내륙지역에 코끼리가 무리지어 살았다. 이후 지구 기온이 점점 떨어져 코끼리는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했고 지금은 중국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한다.

눈앞에서 코끼리가 사라진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르자 이제 사람들은 코끼리가 진짜 살아 있는 동물인지, 아니면 상상 속 동물인지 헛갈렸다. 온갖 추측과 상상이 오갔다. 코끼리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고 머릿속에서만 떠올릴 수 있는 어떤 것, 이것이 형상이란 뜻으로 이어진 것이다. ‘상상(想像)하다’는 코끼리를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할 위(爲)에는 象의 모양이 많이 변형돼있다. ‘손으로 코끼리를 조종해 일을 한다’는 데서 ‘하다’는 뜻이 남았다. 여기에 사람 인(亻)을 더해 사람의 행위를 강조한 글자가 바로 거짓 위(僞)이다. 커다란 코끼리를 떠올리기도 힘든데 사람이 부리기까지 한다고 하면, 이것은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또한 그런 코끼리를 사람이 조종한다 한들, 그것은 진짜 코끼리의 모습이 아니다. 이래저래 거짓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방법은 간단하다. 어려서 힘이 약한 코끼리를 단단한 쇠사슬에 묶어 기둥에 잡아매어 놓는 것이다. 코끼리는 처음엔 막무가내로 발버둥 치다가도 죽기 직전이 되면 더 이상 벗어나려 애쓰지 않는다. 바로 이 기억 때문에 어른이 돼서도 저항하지 않고 쇠사슬에 끌려 이리저리 움직인다. 거짓은 이렇게 코끼리의 무릎도 꿇게 만든다.

요즘 난 가끔씩 쇠사슬에 묶인 코끼리처럼 무기력에 빠진다. 바다 속 진실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어쩔 수 없이 보낸 시간들. 아무 것도 없는 빈손으로, 다시 돌아올 4월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 눈물만 흐른다. 나를 둘러싼 거짓을 향해, 저건 거짓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우리 눈을 가리는 저 가느다란 쇠사슬,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바로 나, 우리, 코끼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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