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시아버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면 “느그 쌀은 남었냐?”고 자주 물으신다. 당연히, 쌀이 남아 있을 때가 훨씬 많다. 그러면 아버님은 “여즉 다 못 먹었댜?” 하시며 안타까워하신다.

처음엔 아버님의 이러한 관심이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다 먹었다고 말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아버님의 속뜻을 알았다. 젊은 날의 자신처럼 배곯고 다닐까봐, 일흔이 다 되신 아버님이 마흔 안팎인 우리를 걱정하시는 것이다.

쌀은 보리나 콩, 옥수수 등 다른 농작물과 달리 쌀알을 뜻하는 쌀 미(米)와 벼를 뜻하는 벼 화(禾)가 따로 있다. 사실, 원래는 둘 다 곡식을 두루 나타내는 한자였다.

米(미)와 禾(화)에는 나무 목(木)이 공통으로 들어있다. 木은 나무의 가지와 줄기, 뿌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여기에, 줄기에 매달린 곡식의 낱알을 점 두 개로 표현한 것이 쌀 미(米)이다. 벼 화(禾)는 木에 丿(삐침 별)을 얹어 곡식이 익어 줄기가 휘어진 것을 나타낸다.

곡식을 뜻하던 한자를 독차지할 정도로 쌀은 인간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고, 한 해 농사 역시 벼농사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다보니, 米와 禾화 들어간 한자가 많다.

가루 분(粉)은 米와 分(나눌 분)으로 이뤄져있다. 分은 다시 八(여덟 팔)과 刀(칼 도)로 나뉘는데, 八은 무언가가 반으로 잘려 있는 모습을, 刀는 날이 굽은 칼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칼로 무언가를 반으로 잘랐다는 뜻이다. 곡식(米)을 잘게 나눈 것에서 ‘가루’라는 뜻이 만들어졌다.

기운 기(氣)에도 米가 들어 있다. 기운을 나타내는 옛 글자는 气였다. 공중에 떠다니는 새털구름을 선 세 개로 표현한 것이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만나 쌀알에 응축되고, 그것을 먹은 사람이 기운을 차린다는 고대 중국인의 철학적 관념이 담긴 글자이다.(‘한자 오디세이’ 정춘수 지음)

 
禾가 쓰인 글자로 화목할 화(和)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흔히, 벼 옆에 입 구(口)를 넣어 ‘밥을 함께 먹는다’ 또는 ‘화목하게 먹는다’는 뜻으로 추측하는데, 여기서 口는 곡식이 잘 여문 것을 하늘과 땅에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일종의 제사의 한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신에게 감사를 하는 데서 화목하다는 뜻이 나왔다.

어원을 알고 나서 마음이 짠했던 글자도 있다. 향기를 나타내는 香(향기 향)이다. 아래에 쓰인 曰은 그릇에 무언가를 담아 끓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香의 갑골문을 보면 그릇 안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벼이다.(그림) 香은 솥에다 밥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글자인 것이다.

꽃향기도 아닌 밥 끓는 냄새, 그것이 ‘향기’라는 뜻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가 얼마나 많은 순간 고픈 배를 움켜쥐었을 지, 배고픔을 모르고 살아온 나는 그 고통을 가히 상상할 수 없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기에 아버님은 한 자루 가득 쌀을 보내시고는 “어서 먹어라”고 재촉하는 것일까. 이게 과연 우리 아버님만의 일일까?

배고픈 시대는 지났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더라도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밥이 인간 존엄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배고픔이 일상이 되면 결코 ‘배’만 고플 수 없다. 초ㆍ중학교 무상급식에 많은 이가 박수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한 도지사가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밥을 끊겠단다. 우리 아버님이 아신다면 뭐라 하실까?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애들 밥 갖고 장난치는가? 먹는 것 갖고 그라는 거 아니제” ‘겪어 봐서 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것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