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솔 부는 봄바람 쌓인 눈 녹이고’ 이런 가사로 시작하는 동요가 있다. 나는 이 노래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봄 햇살에 속아 옷을 얇게 입고 나갔다가 ‘쌩쌩 부는 봄바람’에 감기에 걸려 고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19년 전, 대학에 입학한 때였다. 3년 동안 교복을 입고 꼭두새벽에 집을 나섰다가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했으니, 옷을 제대로 입을 줄도, 봄 날씨의 변덕스러움도 알 리가 없었다.

날씨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에게 큰 관심사였다. 농사짓는 이들에겐 한 해 농사의 흥망이 가뭄이냐, 장마냐에 달려 있었다. 먼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이들은 변화무쌍한 바다날씨에 따라 목숨이 오갔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큰 눈이 내리기 전 식량과 땔감을 넉넉히 준비해놔야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하늘의 색깔, 구름의 양과 모양, 바람의 방향과 세기 등을 세삼하게 관찰했다. 별빛의 흔들림이나 곤충과 동물의 울음소리까지 날씨를 짐작하는 데 이용했다. 정보가 쌓이면 통계가 된다. 일기예보는 통계를 바탕으로 앞날을 점치는 점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날씨를 알기는 여전히 어렵고 하늘은 두려운 존재였다.

 
현대 기상학은 1800년대에 이르러 유럽에서 처음 발전하기 시작했다. 날씨 예측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온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온도계가 정확해야하는데, 정확한 온도계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을 100으로 나눠 0도부터 100도까지 측정할 수 있는 온도계는 1742년에야 나왔다. 이후 1800년대 초 현대 기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크 하워드가 구름을 모양에 따라 층운ㆍ적운ㆍ권운 세 가지로 분류하고 구름의 형성과정을 추측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억지스런 상상으로 일관하던 당시 기상학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흔히 ‘평년기온’ ‘예년기온’이란 말을 많이 쓴다. 이것은 과거 30년 동안의 평균기온을 나타내는 것일 뿐, 그것이 정상이란 뜻은 아니다. 평균값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100점 맞은 학생과 0점 맞은 학생, 두 학생의 평균점수는 50점이다. 하지만 정작 50점 맞은 학생은 찾을 수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평균값의 함정이다.

이 함정은 날씨예보에도 숨어 있다. 날씨는 정확한 답이 나오는 수학식이 아니라, 지난 날씨정보들을 조합해 추측하는 통계학에 가깝다. 아무리 훌륭한 슈퍼컴퓨터를 동원하더라도 날씨를 100% 정확히 맞출 수는 없다. 지표 부근의 수증기량ㆍ풍속ㆍ기온 등은 비교적 정확히 측정할 수 있지만, 날씨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층 대기에 관한 관측 기술과 이해가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날씨예보를 보는 것이 안 보는 것보다 낫다. 우리나라 기상청 예보는 85% 적중률을 보인다. 게다가 예보하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도가 그려진 종이 위에 검정색 펜으로 죽죽 기압선을 그리며, 마치 우리나라가 손바닥만 하기라도 하듯 얼버무려 일기예보를 전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동네예보’라는 것이 생겼다. 전국을 3500개 구역으로 나눠 동네별로 기온과 풍속, 비 올 확률 등 정보를 제공한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내가 있는 곳을 스스로 파악해 현재 위치한 곳의 날씨를 알려준다. 몇 초만 투자하면 오후에 내린 비를 맞아 생쥐가 될 일도 없다.

꽃샘추위를 온몸으로 경험한 이후, 나는 4월까지 내복을 벗지 않는다. 추위보다도, 추위에 오들오들 떠느라 봄 햇살을 맘껏 즐기지 못하는 것이 더 싫기 때문이다. 다음 주 춘분이 지나면 한동안 해는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을 것이다. 슬슬 봄옷을 꺼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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