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흔들리는 현대제철 인천공장 ②

▲ 현대제철 인천공장.<사진 : 현대제철 홈페이지>

철강 산업은 자동차ㆍ조선ㆍ건설ㆍ기계ㆍ금속ㆍ가전 등 주요 산업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국가 기간산업인 동시에 막대한 초기 투자를 요하는 장치산업이다. 그래서 철강 산업을 ‘산업의 쌀’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혁명가이자 정치가인 마오쩌둥(毛澤東)은 1960년 초에 ‘산업의 쌀’ 생산력을 대폭 늘려 10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동네마다 제철소를 만들어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허황된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이 유명한 일화는 철강 산업의 중요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철강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자동차ㆍ조선ㆍ기계ㆍ금속 등 연관 산업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철강 산업은 ‘생산의 비탄력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기 하향국면에선 내수 수요 감소로 수입을 줄이고 주변국으로 수출을 늘린다. 반대로 경기 상승국면에는 늘어나는 내수 수요를 위해 수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린다.

인천공장, 현대제철 사업 확장에 기여

현대제철의 전기로 생산 능력은 세계 1ㆍ2위를 다툰다. 그 핵심은 인천공장이었다. 인천공장은 1956년 11월 13일 평로 제강공장에서 시험출강을 성공하며 쇳물 생산을 본격화했다. 그 뒤 55년이 흐른 2011년에 인천공장은 제강 38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인천공장은 크게 압연ㆍ냉연ㆍ주단강 공장으로 나뉜다. 전기로 총7기가 가동되고 있는데, 철근용 2기(60ㆍ90톤), 형강용 3기(70ㆍ80ㆍ120톤), 주단강용 2기(40ㆍ50톤)로 구성된다.

현대제철이 세계 일류 철강회사로 성장한 배경에는 인천공장이 있다. 오늘날 현대제철의 생산시설과 기술력 등은 모두 옛 ‘인천제철’에서 비롯했다. 인천공장은 돈을 꾸준히 벌어 현대제철의 사업 확장에 기여했다.

정부의 철강 산업 민영화 추진으로 ‘인천제철’은 1978년에 현대로 넘어갔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인천제철을 직접 챙기며 신규 투자 등으로 철강 사업을 확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강원산업을 인수했다. 탄광 산업으로 출발한 강원산업은 1990년대 초반까지 재계 순위 30위권에 포함됐지만, 무리한 설비 투자 등으로 워크아웃 대상이 됐다. 생산능력 450만 톤이던 인천제철은 2000년에 생산능력 340만 톤의 강원산업을 인수했다. 그해 삼미특수강도 인수했다. 이는 오늘날 현대제철을 국내 최대, 나아가 세계 2위의 전기로 업체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인천제철은 이후 새롭게 출범한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한 자동차뿐 아니라 로템ㆍ위스코ㆍ엠코 등에 철강을 제공하며 성장했다. 이후 한보철강을 인수하고 당진에 세계 최초로 밀폐형 원료처리시설을 도입하고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가동했다. 여기다 ‘3고로’ 준공과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도 합병했다. 지난해엔 동부특수강을 인수했고, 최근엔 SPP율촌에너지 인수 의향서를 제출해 4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됐다.

▲ 현대제철 인천공장에서 생산되는 초대형 잉곳.

투자 없는 인천공장, 구조조정 먹구름 엄습

현대제철은 지난해 매출 16조 32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 1조 4499억원을 냈고, 당기 순이익 7511억원을 달성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제철을 낳고 키운 인천공장은 ‘딸 삼형제 시집보내면 좀도둑도 안 든다’는 처지가 됐다.

<인천투데이>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현대제철 인천공장의 운영 실적은 과거에 비해 저조하다. 2013년 말 기준 인천공장의 매출은 2조 9400억원이다. 2007~2008년 연 매출이 3조 660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줄어들었다. 연평균 영업이익도 2007~2008년 5000억원 대였지만, 2013년엔 500억원대로 크게 줄었다. 심지어 2014년 1/4분기 영업이익은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제철은 ‘값싼 중국산 H형강 등이 국내에 들어와, 국내 철강업계가 휘청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강홍규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지부 인천지회장은 <인천투데이>과 한 인터뷰에서 “강원산업 인수를 시작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부실 덩어리 공장을 연이어 인수했다. 한보철강 인수 후 일관제철소 신설에만 10조원을 투입했지만, 인천공장엔 어떠한 신규 투자가 없었다”며 “SPP율촌에너지 인수 후엔 인천공장 주단강 공장의 경쟁력이 상실돼 구조조정 수순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10년 넘게 인천공장엔 투자하지 않고, 이제와 사업 경쟁력을 내세워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는 것은 오늘날 현대제철을 키운 인천공장을 죽이겠다는 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항만과 공항, 수도권 배후도시를 가진 인천공장의 경쟁력은 뛰어나기에 회사의 신규 투자만 있다면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인천공장의 고용 인력은 줄어들고 있다. 인력이 고령화됐지만, 신규 물량이 없어 신규 채용도 없다. 당진공장 인수 후 인천공장의 인력이 당진으로 갔다. 현재 인천공장의 고용 인력은 1800여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제철은 경쟁력이 약화된 인천공장의 주강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매각에 들어갔다. 주강공장에서 근무하던 97명 중 77명이 인천공장 내 다른 부서로 전환 배치됐고, 나머지 20명은 당진 일관제철소의 특수강공장에 배치될 예정이다.

▲ 현대제철 인천공장

충청 정치권과 언론, 본사 당진 이전 추진
손 놓고 있는 인천 정치권, 노조 발 ‘동동’

인천에 있는 현대제철 본사를 당진으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노골화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의 하나로 꼽히는 한보철강의 당진공장을 2004년 10월 인수했다.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강판을 직접 생산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현대는 한보철강 당진공장 옆의 황량한 갯벌을 막아 일관제철소를 건설했다. 2006년 시작한 이 건설 공사에 투입한 자금은 9조 8845억원, 건설과 운영 등에 투입된 인력은 20만명에 달했다.

현대가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인수하면서 충남 지역경제에 청신호가 들어왔다.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재가동하면서 신규 인력 3000명이 채용됐고, 2조원대의 신규 투자가 이뤄졌다. 당진공장이 인천공장보다 커지자, 충청지역 정치권과 언론은 현대제철 본사를 인천에서 당진으로 옮기자고 주장하고 있다. ‘당진공장이 인천공장보다 규모나 생산능력 면에서 월등한 데 매출액과 영업이익 대부분이 본사에 귀속돼 자본 역외유출 현상이 심각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충청투데이> 등 충남지역 언론들은 ‘현대제철 인천본사, 당진으로 와야 하는 100가지 이유’ 등의 기획연재로 몇 년 전부터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 정치권도 가세했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이지만, 그 기세가 만만하지 않다.

새누리당 김동완(56ㆍ충남 당진) 의원은 ‘당진 부지가 인천에 비해 여덟 배 넓고, 직원 수와 매출액도 2.8배에 달한다’며 ‘본사와 연구소 등을 당진으로 이전해 인구 유입과 지방세수를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중앙 행정기관이나 공기업이 세종시와 혁신도시로 이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경쟁력 있는 대기업 본사의 지방 이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6월 26일 ‘현대제철의 지역 기여와 본사 이전 추진방안’을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 토론회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인제 최고위원,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참석했다. 김 의원은 우유철 현대제철 사장을 만나 본사 당진 이전의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당진시개발위원회도 현대제철 본사 당진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당진시 유관기관 120개가 가입해있는 이 위원회는 현대제철 본사 이전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반해 인천지역 정치권은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제철 인천공장이 위치한 동구의 지역구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은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얼마 전 풀려나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 현대제철 인천공장 출신의 조택상 전 동구청장 재임시절엔 동구와 회사가 대화했지만, 지금은 대화채널도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동조합만 발을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본사 이전과 관련해 현대제철 관계자는 “당진지역 국회의원의 공약이라 본사 이전이 이야기됐지만, 회사는 이전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인천공장에 투자도 꾸준히 진행돼 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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