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울산행을 좋아한다. 몇 년 전 겨울엔 주말마다 산을 찾아 전국을 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산행이 있다. 딱 이맘 때였다. 그해 마지막 겨울산행으로 경남 통영에 있는 사량도라는 섬에 갔다. 그곳에 지리망산이 있다. 오르는 내내 푸른 통영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산이다. 남도의 바다엔 이른 봄이 찾아와 있었다.

경치에 감탄하며 한참 산행하고 있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이곳이 왜 사량도인 줄 아세요” 했다. 마음이 마냥 들떠 있던 난, 그의 대답을 듣고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사량’은 한자로 뱀 사(蛇), 다리 량(梁)인데, 뱀으로 다리를 이룬다고 할 정도로 뱀이 많다는 뜻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뱀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내가 겨울에 산을 올랐던 건, 눈 덮인 산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겨울엔 뱀을 마주칠 확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도는 바야흐로 봄, 개구리와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맞이했던 것이다.

경칩은 한자로 놀랄 경(驚), 숨을 칩(蟄)이다. 驚(경)은 敬(공경할 경)과 馬(말 마)로 나뉜다. 우선 敬의 일부인 苟(진실로 구)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艹(풀 초)와 勹, 口(입 구)로 나누어,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사람(勹)이 머리에 풀잎(艹)으로 치장을 하고 무언가를 말하는 모습(口)을 나타낸다는 것이 첫 번째 해석이다.

 
고대 사회에서 지위와 권위가 있는 사람은 의식을 행할 때 머리를 치장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신의 뜻과 같았다. 여기에서 ‘진실로’라는 뜻이 나왔다. 敬은 苟에 몽둥이를 뜻하는 攵(칠 복)을 더해 풀잎으로 치장한 사람을 몽둥이로 위협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힘으로 누군가를 굴복시켜 공경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苟의 艹가 羊(양 양)을 간단하게 쓴 것으로, 머리에 양이 그려진 사람이 꿇어앉아 있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라는 해석이 있다. 羊은 양을 신(토템)으로 모시던 부족의 사람을 뜻한다. 그 부족의 사람을 포로로 잡아와 꿇어앉히고 몽둥이(攵)로 강제로 굴복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누군가를 굴복시켜 공경하게 만든다는 뜻의 글자에 馬(말 마)를 더해 ‘놀라다’는 글자를 만들었다. 하필 말이 들어간 이유는, 말이 겁이 많아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기 때문이다.

蟄(숨을 칩)은 執(잡을 집)과 虫(벌레 충의 옛 글자)을 합했다. 執은 수갑을 차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글자다.(그림) 執(집)에서 ‘칩’이라는 음을 가져왔다. 여기에 수갑을 차고 있어 움직일 수 없다는 의미도 보태고 있다. 虫은 요즘으로 치면 벌레지만, 옛 사람들은 기어 다니는 것을 모두 虫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蟄은 겨울잠을 자느라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벌레를 뜻한다. 이것이 나중에 ‘숨는다’는 뜻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날 험한 바위산을 오르내리면서 ‘혹시 겨울잠에서 깬 뱀이 튀어나온다면?’ 하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다. 다행히 뱀은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오가는 곳에 뱀이 고개를 내민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입춘(立春)도, 우수(雨水)도 지나 이제 곧 경칩이다. 봄이 성큼성큼 달려오고 있다는 뜻이다. 조만간 봄 바다를 보러 월미도든, 을왕리든 가봐야겠다. 짧은 봄, 있을 때 즐겨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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