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당당한 인천의 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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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 등으로 가족단위의 나들이가 늘어가고 있지만 정작 지역 내에서 갈만한 곳이 마땅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인천지역과 주변에서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가족들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 제공하고자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서면, 오래 전 익숙했으나 지금은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점점 되살아난다.
그곳에 가면 그물을 고치는 어부와 굴까는 아낙네, 길가에 나무좌판을 깔고 앉아 생선을 파는 우리 어머니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있었다.

기찻길을 지나면 다닥다닥 붙은 판자집이 산처럼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간신히 제 몸을 지탱하고 있을 것 같은 판자집이 늘어서 있는 길고 좁은 골목을 지나면 비릿한 바다 냄새가 진하게 새어나왔다. 그곳엔 잠시도 쉬지 않는 분주한 움직임이 있어 우리들 역시 퍼덕이며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곳. 바로 부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부두. 바다와 사람을 이어주는 곳.
떠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
만선의 기쁨을 안고 저 멀리서 빨간 깃발이 퍼덕이며 그리운 뭍으로 다가오는 어부들이 있는 곳. 외로운 섬에서 육지로 나가 공장에 취직해서 꼭 성공해 돌아오겠다며 눈물을 떨구고 작별하던 우리의 누이들이 서 있던 곳.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부두. 그러나 세월의 깊이만큼 부두의 세월도 변했다. 인생의 뒤안길처럼 사람들이 하나둘씩 부두를 떠났다. 지금은 노인들만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부두는 그래도 정겹다. 무릇 모든 인간과 역사에도 영욕의 세월이 있듯이 부두도 그러하며 수없이 스쳐 지나간 무명의 사람들의 저마다의 기억과 사연이 숨겨져 있다.


추억에 잠겨있는 삶의 터전 화수부두

도시 속의 고립된 섬 같은 화수부두는 인천에서 유일하게 생활터전이 유지되는 곳이기도 하다. 화수부두에는 아직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 남아있다. 바로 눈앞에 문을 마주하고 모여 사는 낡은 집과 옛 길이 그대로 남아있다.

원래 화수부두는 인천의 부두중 제일 잘나가는 부두였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사람들과 배가 가득했던 선착장으로 대표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많던 사람들과 어선들이 떠나고 지금은 100여 가구 남짓한 주민들만이 남아있다. 여기저기 문 닫은 선술집, 한적한 거리에 마실 나온 몇몇의 노인들, 좁은 골목길은 쓸쓸한 화수부두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다. 차마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화수부두를 지키고 있는 노인들에게 이곳은 왕년에 호황을 누리던 삶을 추억하며 되씹는 소중한 곳이다.

그러나 여전히 화수부두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오랜 터전이다. 비록 근근한 고기잡이로 생활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매일 그물을 걷고 다시 손질하는 손길은 쉬어본 일이 없다. 한쪽에는 주꾸미를 잡기 위해 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소라 껍데기를 쌓아 놓은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멀리서 갓 잡아온 싱싱한 쭈꾸미를 사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도 있고, 한쪽에서 쇠잔한 부두 아래로 낚시대를 드리우며 조용히 바다를 벗 삼기 위해 화수부두를 찾는 이들도 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건설예정인 철재부두 개장과 함께 주민들의 집단 이주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현재의 화수부두 마저 추억의 뒷편으로 퇴장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다소 쓸쓸하지만 잊혀진 우리의 삶의 한 부분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화수부두는 만석동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내려와 사거리에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낚시꾼을 기다리는 만석부두

그 바다로 가는 길은 하늘로 가는 길인 듯 좁다.
서로 어깨를 포갠 채 잠들어 있는 하꼬방들의
조갑지만한 유리창들이 길을 인도한다.
내걸린 속옷들이 꽃무늬가 된 실뱀 골목을
빠져나오자 문득 적막이다.
사방에서 피어나는 잡비린내
부두는 노쇠한 창부처럼 자빠져
물때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희 시인 ‘만석부두에 들어’ 중-


동구 만석동 만석부두는 예나 지금이나 부지런히 드나드는 어선들의 엔진 소리가 활기찬 곳이다. 부두를 들어서는 입구에는 낚시꾼들을 태우고 갈 어선을 홍보하는 가게와 문구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부두라기에는 조금 어색한 만석부두는 낚시를 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고 하는 일을 반복한다. 오후에 이곳에 서 있으면 새벽에 어선을 타고 먼 바다로 떠났던 많은 낚시꾼들이 잡아온 것을 담은 커다란 통과 그릇을 흐뭇한 표정으로 들고 오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만석부두. 작은 낚시배가 오며 가며 자기 몸을 기대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바다와 사람을 이어주는 또 다른 부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좁은 골목 깊숙이 감춰진 ‘작은 소래포구’ 북성부두
인천역에서 내려서 동인천방향에 있는 신고가도로 밑 대한제분과 중앙조선 공장 사이의 좁고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북성부두를 만날 수 있다.
골목길 입구 옆에 기울어져 붙어있는 부두 표지판을 시작으로 좁고 긴 골목길을 따라가면 이 뒤에 이런 곳이 있었나.하는 작은 탄성과 함께 인천앞바다와 한 줄로 늘어선 횟집들이 보인다. 바다와 바로 근접해 두 사람만 지나가도 어깨가 부딪히는 좁은 공간에 늘어선 횟집은 작고 아담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로운 것으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 이 같은 공간이 현존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만큼의 정감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회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북성부두는 소래포구처럼 크지는 않지만 또 다른 맛을 전해준다. 마치 바다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이곳 횟집에서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인천 앞바다의 풍경을 바라보며 제철 생선회를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지금은 망둥이 낚시철.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물과 소쿠리에 말리려고 내놓은 생선의 비릿한 냄새 속에서 둑방 위에 서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낚시에 여념이 없다.

북성부두의 풍경은 이중적이다. 옛 포구를 가운데 두고 왼쪽은 높은 굴뚝연기를 내뿜는 공장이 버티고 있고, 또 한쪽은 바다까지 몰려온 고층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다. 공해의 찌들은 도시의 탁한 하늘, 울퉁불퉁 괴물처럼 휘어버린 공장의 배관망과 공존하는 이곳 북성부두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강하게 남는다.


단지 즐거운 여행지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쓸쓸함을 느끼게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곳, 점차 잊혀지는 우리 삶의 터전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 그래서 슬프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당한 우리 인천의 부두들이다.

/도움말 한세도 (나들이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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