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사다 ⑧] 김기용 석남초등학교 교사

<편집자 주>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하지만 공교육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교사도 많다.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거나 학생들과 삶을 교감하며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린다.

<인천투데이>은 지난해 5월부터 학교 안에서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덟 번째 교사는 34세에 부평초등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해 현재 석남초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기용(49ㆍ사진) 교사이다.

부모님의 바람과는 다른 길

“집안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부모님이 공무원을 했으면 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셨다. 사범대학교나 교육대학교로 진학해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 적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부모님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음대를 선택했고 졸업 후에는 대학 조교, 민간 오케스트라 사무국장, 뮤지컬 극단의 뮤직 디렉터 등의 일을 했다. 그러다 1997년 말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터지면서 큰 어려움이 생겼고, 힘든 일을 전전하다 기간제 교사로 교직에 몸을 담았다.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가 교사가 됐다. 지금도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6일 석남초교(교장 신문희ㆍ서구 소재) 별관 3층에 있는 3학년 연수실에서 만난 김기용 교사는 교사가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음대를 졸업한 김 교사는 대학에서 조교를 오래했기 때문에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 시간강사를 하다가 교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이 터진 후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대학 졸업 신분을 숨기고 부평공단의 한 공장에서 일했다. 당시 결혼한 상태였기에 돈을 버는 것이 우선이었다.

공장 일을 그만 둔 후에는 부평구청에서 공공근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금이 적어 새벽에는 우유 배달을 했다. 그런 도중 아내가 전해준 신문이 교사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내가 건넨 신문, 교사의 길로 안내

▲ 김기용 석남초등학교 교사
그 신문에 초등학교에서 퇴임한 교사가 많아 교사 수가 부족해 중등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에 한해 예체능과 영어 과목 기간제 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나왔는데, 음대를 다니며 교직을 이수해 자격증이 있어 지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시험을 보기 전 한 달 동안 공공근로와 우유 배달을 하며 틈틈이 도서관에서 공부해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1999년 부평초교 음악 전담 기간제 교사로 교단에 섰다.

이후 1000시간이 넘게 연수를 받은 후 정규직 교사가 됐고, 부평초교와 부현동초교, 효성서초교를 거쳐 지금은 석남초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 교사는 “예술을 했으니 얼마나 자유분방하게 살아왔겠는가. 처음 학교에 들어오니 모든 부분에서 적응이 안 됐다”며 “늘 비용을 똑같이 나눠 내는 것이나 교장ㆍ교감선생님 등 관리자들에게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분위기가 특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나도 많이 변했고 적응했지만 말이다”(웃음)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정 교사가 된 후 바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기간제 교사로 있을 때 호봉 계산이 잘못된 걸 알았는데 행정실에 이야기해도 ‘교장에게 누가 될 수 있다’며 그냥 ‘손해를 보라’ 하고 수정해주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이에 교육청에 전화해 따졌더니 다음날 바로 문제가 해결됐다. 김 교사는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정 교사가 되면 전교조에 가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이들은 풀어놔야한다’는 철칙

정 교사가 된 후부터는 늘 담임교사를 맡았던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급훈을 바꾸지 않았다. ‘신나는 학교, 즐거운 교실’이 그가 맡은 반의 급훈이다. 아이들은 풀어놔야한다는 그의 철칙 때문이다.

“그래야 아이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고, 아이의 불만을 들은 후 내가 고쳐야할 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또한 거기에 맞춰 수업을 준비할 수 있다”

주변에선 아이들을 너무 풀어주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게 학급을 이끌어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자신에게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이들과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학부모 모임을 만들고 계속 유대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다. 특히 효성서초교에서 만든 아버지 모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들과 함께 개인사도 나누고 교육에 관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아이들 덕분에 좋은 인연을 가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풀피리 선생님’으로 통하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아이들이 리코더를 손에서 놓지 않게 하고 있다. 음악수업 시간 이외에도 비는 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계이름과 음정을 익히고 연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른 과목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집중을 잘 안 하면 리코더를 꺼내 ‘리코더를 연주할 테니 음정을 맞춰보고 따라 불어보라’는 식이다. 그럼 아이들이 집중하고 재밌어 한다. 그러면 다시 본래 수업을 진행한다.

“이렇게 리코더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6개월 정도 만에도 음정 8개를 모두 익히고, 음악을 연주해주면 바로 따라 연주하는 아이들도 있다. 1주일에 한 번 음악 수업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음악을 익히는 데는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김 교사는 이런 노하우를 살려 교사들을 대상으로 방학 때 진행하는 ‘리코더’ 직무연수를 운영하기도 한다. 인기가 많아 다른 시ㆍ도교육청에서 연수하러 오는 교사도 많다.

이런 덕분인지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풀피리 선생님’으로 통한다. 그는 이 별명이 매우 마음에 든다. 아이들과 친숙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김 교사는 “초등학교는 아이가 어떤 것을 잘하는지 찾아내고 잘 발현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혁신학교가 잘 운영되고 학교현장이 변해야한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를 급격하게 진행하기 보다는 속도를 잘 조절해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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