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한진 업무협약 기한 종료됐지만…

한진그룹의 인천경제자유구역 국제병원 건립사업이 무산됐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한진그룹과 인천시, 인하대학교가 2013년에 체결한 한진메디컬콤플렉스(가칭) 업무협약(MOU)이 해지됐다고 최근 밝혔다.

2013년 10월, 송영길 인천시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송도에 ‘한진메디컬콤플렉스(Hanjin Medical Complex)’를 건립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한진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약 5000억원을 투입해 송도지구 갯벌타워 건너편 7만 7550㎡(=약 2만 3500평)에 병원(1300병상)과 연구교육단지, 복합지원단지(=메디텔ㆍ노인요양원ㆍ메디컬비지니스 시설) 등을 단계별로 건설하기로 했다.

▲ 2013년 10월 16일 열린 가칭 ‘한진 메디컬 콤플렉스’ 건립 양해각서 체결식. 왼쪽부터 김영모 인하대 의과대학병원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송영길 전 인천시장, 이종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박춘배 전 인하대 총장.<자료사진>
2010년 지방선거 때 송영길 시장이 당선되면서 인천경제자유구역 영리 병원 도입 논란은 비영리 병원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한진도 비영리 국제병원을 도입하는 사업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인천시와 한진이 체결한 업무협약에 ‘향후 영리 병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된 사실이 지난해 7월 드러났고, 9월에는 경제자유구역에 설립할 투자개방형 병원의 규제를 정부가 대폭 완화하고 병원의 자(子)법인 설립을 허용하면서 영리 병원 논란은 다시 점화됐다.

지난해 6.4 지방선거 때에는 유정복 시장이 ‘송도 주민이 원하는 영리 병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영리 병원 논란은 확산됐다.

이러한 경과를 거쳐 이번에 인천시와 한진의 업무협약이 해지돼,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인천시가 추진한 영리 병원 정책의 실패라고 분석하기도 하는데, 사정은 다소 복잡하다.

우선 인천시와 한진이 체결한 업무협약이 해지된 것은 한진이 2014년 12월 말까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업계획서를 수립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고, 최근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한진그룹 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제대로 된 검토도 부족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2013년 업무협약 체결 이후 송도 국제병원 조성 태스크포스(T/F)팀을 맡은 인하대병원 쪽은 송도 5ㆍ7공구에 비영리 병원 도입을 골자로 한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인천시는 지난해 7월 한진 쪽에 송도 1공구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을 골자로 한 의료복합단지 건립을 요청했다. 이에 한진은 영리 병원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으나, 기한 안에 계획서를 제출하지 못하면서 2013년 체결한 협약은 해지된 것이다.

“국제병원, 영리든 비영리든 사업성 있으면 돼”

한진의 국제병원 설립 계획이 무산되면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 병원의 사업성 여부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인천경제청은 업무협약이 해지됐지만, 국제병원 건립 사업이 물거품된 건 아니라고 했다. 인천경제청은 “한진도 영리 병원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고, 또 최근에는 ‘땅콩 회항’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상태에서 업무협약 기한이 도래한 것일 뿐”이라며 “사업계획을 다시 제출하겠다고 하면, 다시 진행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인천경제청은 송도에 국제의료 단지를 조성하길 원하고, 다만 사업자와 투자자의 의지와 사업타당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우리가 영리 병원을 하겠다고 해서 영리 병원이 되는 게 아니다. 비영리든 영리든 사업자와 투자자의 입장에서 사업성이 있어야한다.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은 영리든 비영리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도 인천경제청과 비슷한 의사를 나타냈다. 한진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전까지만 해도 비영리 병원을 염두에 두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러다 영리 병원 도입에 따른 타당성을 검토했는데, 검토할 시간이 부족한 가운데 업무협약 기한이 종료됐다. 비영리 병원 도입은 어느 정도 검토됐지만, 영리 병원 사업타당성 분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송도에 국제병원을 건립하는 것은 여전히 진행형이다”라고 밝혔다.

“영리 병원 추진 중단하고 공공의료 강화해야”

정부가 제주도에 국내 1호 영리 병원으로 추진했던 중국 싼얼병원 사업계획이 지난해 무산된 데 이어 이번에 인천경제자유구역 영리 병원 추진도 중단됐다.

정부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규제를 완화하고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등, 외자유치를 통한 영리 병원 도입을 허용했으나, 현실적으로는 해당 사업들이 무산되면서 정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이 가져온 결과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국내 병원도 외국인환자 유치에 문제가 없는 만큼, 굳이 의료 민영화 논란을 자초하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지난해 국내 의료기관의 외국인환자 유치 실적을 조사한 결과, 의료기관 1개당 연간 76명(0.3명/1일)을 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경실련과 인천경실련은 현재 국내 비영리 의료체계에서 국내 병원들의 외국인 환자 진료를 위한 의료 공급에 차질이 없고, 절차와 방법 등에도 장애가 없다고 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국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전체 병상 수는 인구 1000명 당 9.6개이다. 이는 OECD 평균(4.8병상)의 두 배 이상이며, OECD 회원국 중에서 일본(13.4병상)에 이어 2위이다.

반면에 경실련이 밝힌 내용을 보면, 2011년 기준 OECD 국가 중 인구 1000명 당 공공 병원 병상 수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핀란드가 5.0개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비교 대상 국가 24개의 평균은 3.25개로 나타났다. 한국은 인구 1000명 당 1.19병상으로 비교 대상 국가 중 가장 적었다.

또, 영리 병원을 허용하고 있는 OECD 국가 18개의 영리 병원 병상 비율은 평균 15%이고, 비영리 병원 중 공공 병원 병상 비율은 평균 77%로 공공 병원 병상 비율이 영리 병원 병상보다 다섯 배 정도로 나타났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한국은 공공 병원 병상 비율이 12%로 비교 국가 24개 중 최하위다. 게다가 현재 영리 병원을 허용하고 있진 않지만 병원 중 88%에 달하는 비영리 민간병원에서 보험 환자에게 비급여 진료로 사실상 의료 영리화가 이뤄지고 있어 의료 공공성이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 영리 병원을 짓는 게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영리 병원이 도입되면 국내의 부실한 공공의료체계는 더욱 약화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영리 병원 추진을 중단하고 공공의료체계 강화에 나서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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