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대안교육 이야기③] 열음학교의 벽화 주제수업

대안학교에 대한 편견을 깨고 대안학교의 교육철학을 알리기 위해 비인가 초등 대안학교인 ‘열음학교(남동구 장수동 소재)’의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겪는 이야기를 격월로 연재한다.

▲ 벽화를 그리고 있는 열음학교 학생들.
남동구 장수동 주민들은 스스로 행복한 마을을 만들자는 취지로 ‘장수동 행복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고, 그 일환으로 동네에 벽화를 그렸다.

이를 위해 열음학교 아이들은 벽화 작업에 앞서 벽화를 주제로 수업했다.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이진우 선생의 작업실을 둘러봤고, 이 선생이 열우물 마을에 직접 그렸다는 벽화도 구경했다.

다음날 월요일에는 ‘나와 우리’라는 책을 쓴 이선미 선생을 학교로 초청해 벽화를 어떻게 그려야하는지를 배웠다. 그 다음날에는 이진우 선생이 해바라기를 주제로 한 밑그림을 그려줘, 아이들은 벽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전 시간에는 저학년이 아랫부분을 색칠했고, 오후 시간에는 고학년이 윗부분을 색칠했다. 열음학교에 다니지는 않지만 장수동에 사는 아이들도 방과후에 벽화 그리기를 함께 했다.

아이들이 색칠한 뒤 이진우 선생이 마무리를 해줬다. 하얗고 썰렁한 벽은 어느새 해바라기들로 가득 찼다.

인천대공원 중문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주차장 작은 턱 부분도 색칠했다. 처음에는 채송화를 그렸지만, 중간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다른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달라진 것을 보고 아이들이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벽화 그리기 작업은 끝났고,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무척 재미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 아이들 소감

= 처음엔 밑그림을 그려 발표했다. 다음날 저학년은 오전, 고학년은 오후에 해바라기를 채색 했다. 왕거미(=이진우)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다음날에 다른 벽을 색칠했다. 땡볕 아래여서 힘들었지만 좋았고 유익했다. 해바라기를 채색할 때마다 페인트가 튀어 호스로 다리 전체를 씻기도 했지만, 벽화 그리기는 분명히 재미있고 좋은 작업이었다.(5학년 정미르)

= 해바라기 밑그림에다 노란색으로 칠했다. 세 번째로 채송화를 색칠했는데 다음날 보니까 다른 느낌으로 칠해져서 굉장히 화가 났다. 그래도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5학년 유웅재)

= 먼저 해바라기를 색칠했다. 세 번이나 색칠한 곳에 또 색칠해야 돼, 힘들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색칠을 하려고 했는데 다른 애들이 전부 자리를 차지해 못 그렸다. 벽화 그리기는 힘들었다.(5학년 황성빈)

= 오늘 벽화 작업이 재미있었는데, 오빠들이 얄미웠다. 왜냐면 오빠들은 별로 안 하고 놀았기 때문이다. 비록 옷에 묻어서 안 지워졌지만 재미있었다. 벽화는 장수동 마을을 알리기 위해서 한 활동이다.(4학년 박선영)

= 이진우 선생님과 벽에 해바라기를 색칠했다. 옷에도 묻고 손에도 묻었지만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고, 재미있었다. 또 친구들과 색칠한 게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4학년 고은유)

= 어제 수업에서 선생님이 가져온 본에다가 그리고 실제 벽에서 선생님이 그려 논 해바라기를 색칠했다. 마치 꽃들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고, 다음에 꼭 더 그리고 싶다.(4학년 김시현)

= 벽화를 보는 것보다 색칠하는 것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또 도와주시는 선생님 별칭이 왕거미 선생님이었다. 페인트도 신기하게 느껴졌다.(2학년 김시우)

= 우리가 산을 색칠했다. 해바라기가 무척 예뻤다. 나머지는 고학년들이 했다. 다 완성하니 예뻤다. 하지만 나는 색칠을 잘 못했다. 그리는 것을 마치고 나서 뿌듯했다. 그리고 거리의 미술을 그린 왕거미 선생님도 봤다. 아주 재미있었다.(2학년 조이찬)

= 오늘은 우리 동네를 더 예쁘게 할 벽화 색칠을 했다. 우리 1~3학년은 색깔을 나눠 했다. 초록, 연두, 정말 예뻤다. 모두 즐겁게 했다. 해바라기 그림이었는데 고학년 언니오빠들이 하고 나면 더 예쁠 것 같아 설레었다. 하지만 옷에 묻는 것은 속상했다.(3학년 송윤서)

= 벽화 색칠작업이 아주 재미있었지만 해바라기 스케치가 다 안 돼 바탕을 색칠했다. 많이 아쉬웠다. 다음에는 해바라기를 색칠했으면 좋겠다.(3학년 채서희)

/고희경 열음학교 교사

▲ 자치활동으로 동네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열음학교 학생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말에 공감한 열음학교는 부천시 송내동에 처음 설립됐을 때부터 ‘담 없는 학교’를 지향하며 마을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방과후 프로그램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생태교실도 열어 나들이를 다녀오곤 했다.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마을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의 흙을 뒤집고 페인트를 다시 칠했다. 단오, 한가위, 동지 때는 학교가 나서서 마을축제를 열고 문화적 소외감을 느껴온 마을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거나 팥죽을 쑤어 홀로 계신 어르신들께 전해드리기도 했다.

그 후로 마을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빌리러 오거나 책을 보러 열음학교를 찾았다. 또한 아이들 교육에 관심 있는 이웃들이 생겼고, 그들은 송내동에 어린이도서관을 만들 때 학교에서 회의하고 여러 가지를 모색해보기도 했다.

학교 공간만으로는 수업을 소화할 수 없어 교회 건물을 빌려 풍물수업을 하고, 길 건너 공원에서 아침마다 생태수업을 하고, 놀이터에 딸린 운동장에서 몸 활동을 하고, 어린이집 공간을 빌려 발표회도 했다.

부천새시대여성회에서 하는 독거노인 도시락 봉사를 함께 하면서 열음학교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어르신을 찾아뵙다. 건물 지하 단칸방에 사시는 할머니셨는데, 아이들은 마을 약수터에서 물을 떠다 드리고, 손톱에 매니큐어도 발라드리고,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말벗도 해드리면서 정을 쌓았다.

학교 주변은 시장터여서 상가들이 즐비했는데, 학교에서는 시장놀이 같은 학교 행사 때마다 이웃들을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교류했다. 그분들도 학교가 하는 일들을 지켜보며 호감을 표하셨다. 상가 앞을 매일 오가며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학교 아이들을 위해 과일가게에서는 과일을, 정육점에서는 고기를, 분식점에서는 간식거리를 보내주시곤 했다.

이웃들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대견해하시고 아이들의 얼굴 표정을 살펴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시기도 했다. 그렇게 마을과 학교가 아이들의 울타리가 돼갔다.

4년 동안 머물렀던 송내동에서 경험한 즐거운 소통은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으로 옮겨온 이후 더욱 간절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처음 찾아가 인사드린 경로당에서 꾸준한 방문 제안을 거절당하고는 이웃과의 만남을 시도하려던 마음이 위축됐다.

처음에는 장수동에 사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 없는 데다 마을 아이들도 적었다. 낯선 곳에서 한동안 섬처럼 지내야만 했다. 다행히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만수동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번 만나 몸놀이를 함께 할 수 있었고, 남동구 시민단체들과 ‘어린이날 큰 잔치’를 매해 열 수 있었다.

마을 안에 있는 인천대공원에서 날마다 생태수업을 하고, 청소년수련관을 빌려 풍물수업도 하고, 살림살이 수업으로 텃밭을 가꾸고, 아이들 자치활동으로 쓰레기를 줍고, 제과점에서 빵 굽기 수업도 하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매학기 개학하는 날에는 아이들이 마을을 돌며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천천히 마을을 알았고, 이웃들을 만났다.

장수동에 와서 7년간 지내면서 마을에 살고 있는 연극 선생님과 성교육 전문 선생님, 방과후 교실 선생님을 만났다. 방학이나 방과후에는 이들이 와서 수업을 해주기도 하셨고, 다시 찾아간 경로당에서는 환대해주시기도 했다.

지금은 학교에서 사용하라고 가구나 책을 가져가라는 잘 모르는 이웃의 전화가 오기도 하고,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 번 관모산 산행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열음학교 아이들인 것을 알아차리고 인사를 건네는 어른들도 늘었다.

또 이제는 학교 아이들 반 이상이 장수동으로 이사 와 살고 있다. 아이들은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어디에 뱀 구멍이 있는지, 어디에 산딸기가 있는지, 꿰고 있다. 이 집 저 집 마실이 끊이지 않는데, 안 보이는 아이들은 서너 군데 수소문만 하면 금세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부모들은 먹을거리를 수시로 나누고 아이들 옷과 신발도 물려준다. 출퇴근길에 우연히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장수동에 이사 온 뒤 학교 아이들에게 내 몸 가꾸기(기초 화장법과 머리 손질하는 법)와 비즈공예 수업을 해주시던 학부모는 미용실을 열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마을사랑방이 됐다.

그 사이 학교는 장수동에 들어온 발달장애 대안학교인 참빛문화예술학교, 인천청소년수련관과 협약을 맺어 서로 수업 교류를 하고 공간 대여 지원도 받는 등,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던 예꿈마을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도 더욱 긴밀하게 만나고 있다. 캠프를 같이 하고 ‘쩨쩨한 문화예술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끼리 서로 배움을 나누기도 한다.

올해에는 남동구 행복한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지원해 ‘이야기꽃이 만발한 장수동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에 1차 프로그램으로 ‘나는 기자다’ 마을기자학교를 열어 장수동 마을신문 제작을 위한 각종 실무와 기사 작성법을 배웠다. 그 자리를 계기로 장수동 통장 여섯 분을 모두 만나기도 했다. 지금은 ‘장수동 마을신문’ 제1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9월에는 2차 프로그램인 ‘나는 화가다’ 마을 공동 벽화그리기 사업을 진행해 ‘거리의 미술’ 동호회의 이진우 선생님 도움을 받아 마을 벽화를 그렸다.

11월에는 3차 프로그램으로 <나와 우리>라는 책을 낸 이선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장수동 보물찾기’라는 마을지도를 만들 계획이다.

올해부터는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지원과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후원으로 ‘열음이의 춤추는 느티나무 교실’이라는 생태와 신체 표현을 통합한 수업(‘에코필 댄스컴퍼니’ 진행)으로 장수동 마을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오는 11월 8일에는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400년 느티나무를 주제로 한 ‘장수마을 느티나무 축제’를 연다. 열음학교와 참빛문화예술학교, 빛의 아이들 유치원의 공연뿐 아니라 마을 피아노학원 원장님의 플롯 연주와 중학생의 민요, ‘인간극장’에 나온 아가씨의 성악 등이 기다리고 있다.

내년에는 열음학교가 정식 개교한 지 10년이 된다. 처음엔 아이 몇 명을 품었던 학교가 이제는 마을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곳이 돼가고 있다.

이제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라고 한다. 아이들이 마을의 주민이고 더불어 사는 시민으로 자라야 한다. 대안교육은 교육의 본질을 되살려 민주시민교육을 하는 곳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야한다.

/전경아 열음학교 대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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