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취재] 법정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버스를 타자!’

오랜 대기시간, 이미 탑승자 있으면 또 기다려야
간석오거리에서 인천시청까지 1시간 30분 걸려


▲ 저상버스가 도착했지만, 장애인들의 휠체어가 탈 수 없도록 일반버스처럼 멀리 정차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 지난 21일 오후 1시, 인천지하철 간석오거리역 5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에 휠체어를 탄 누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속 장애인 3명과 활동보조인 등이 모였다.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인천장차연)가 인천시에 법정 저상버스 대수 도입과 확충을 요구하며 마련한 ‘버스를 타자!’ 행사와 이날 오후 3시에 인천시청에서 진행할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참가자들은 활동 계획을 논의하느라 10여분을 소요한 뒤 인천시청 방향 77번 저상버스(이하 저상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기자는 장애인 3명에게서 저상버스 이용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평소 이동할 때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홍영대(28)씨는 이날 처음 저상버스를 탔고 실제로 저상버스가 운행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박영춘(53)씨는 저상버스를 여러 번 타봤다. 잘 탑승할 수 있게 친절하게 도와준 버스 기사와 그렇지 않고 귀찮아하던 기사를 모두 겪어봤다.

여현숙(50)씨는 저상버스가 모든 노선에 배치돼있는 게 아니기에 환승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버스 기사가 경사판 작동방법을 모르거나 경사판에 녹이 슨 경우를 종종 봤다. 직장인이기도 한 여씨는 외출할 때 보통 브레이크 등을 손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한 장치를 장착한 승용차를 운전한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문종권 누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장애인 이동권의 열악한 현실을 들려줬다.

그는 “저상버스는 배차시간이 길어 이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자회견 2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장애인콜택시도 타기 힘들다. 이 제도를 새로 아는 장애인들은 늘어나지만 그에 비해 장애인콜택시가 늘어나는 속도는 더디다. 원칙대로 탑승을 원하는 시각 2시간 전에 예약하지만, 3시간을 기다려야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고 말했다.

30여분 만인 1시 40분, 저상버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장애인이 탈 수 있게 인도에 붙이지 않고 일반 버스처럼 멀리 떨어져 정차했다. 여씨의 활동보조인 한아무개(21)씨가 기사에게 장애인이 탑승해야하니 인도에 바싹 붙여 달라고 요구했다.

기사는 한씨가 주문한대로 정차한 뒤 차체 바닥을 낮췄다. 하지만 출입구 경사판은 인도로 내려오지 않았다. 버스 운전석 쪽으로 이유를 물으러간 한씨는 “기사가 스위치를 수차례 누르면서 ‘(경사판이) 고장 났다’고 반복하며, ‘죄송하지만 뒤에 오는 버스를 타시면 안 되냐’고 말했다”고 전한 뒤 혀를 찼다. 문씨는 “정비를 제대로 안 한 탓”이라며 “무늬만 저상버스”라고 질타했다.

▲ 저상버스 출입구 경사판이 고장 나 장애인들이 탑승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저상버스는 33분여 만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인도에서 떨어져 정차했다. 한씨가 장애인이 탈 수 있게 정차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기사는 “이미 장애인 한 명이 타고 있어 안 된다”고 답했다.

원래 일반 저상버스는 기본 구조상 휠체어 장애인 2명이 탑승할 수게 돼있다. 박영춘씨는 “아마 접이식 의자(일반 저상버스 내부 앞부분 양옆에 비치된 것으로, 장애인 탑승 시 기사는 이것을 접어 장애인이 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한다)에 비장애인이 앉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시간이 넘게 저상버스를 못 타자 홍영대씨는 “장애인콜택시로 갔으면 벌써 갔을 것”이라며 화를 냈다. 그는 “기다리고 있는 게 너무 화가 난다. 버스 기사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 하고, 비장애인들도 휠체어 체험을 한번 해봐야한다”고 말했다.

그 뒤 17여분 만에 온 저상버스는 이전 버스들과 달리 인도에 근접해 정차한 뒤, 자연스럽게 경사판을 내렸다. 활동보조인이 휠체어를 밀어 버스에 올라서자, 기사가 나와 접이식 의자를 접어 올려 홍씨와 여씨가 자리를 잡게 한 뒤 안전벨트로 휠체어를 고정했다. 비교적 능숙한 그의 조끼엔 모범기사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박씨는 바로 뒤에 오는 저상버스를 타기로 계획했으나,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져 다른 수단을 이용했다.

승차한 지 5분여 정도 지나고 인천시청 주변 정류소에서 내린 참가자들은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 시청 정문에 도착했다. 이때가 2시 47분. 앞서 사전 논의와 차량 탑승시간을 합한 15여분을 제하더라도, 간석오거리에서 시청까지 1시간 30여분이 걸린 셈이다. 지친 기색이 만연한 기자에게 홍씨가 한 마디 던졌다. “힘들죠? 우리는 매일 이러고 살아요”

3시에 시작한 기자회견에서 인천장차연은 각각 다른 곳에서 저상버스를 탔던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뒤, 인천시의 저상버스 도입률이 6대 광역시 평균(15%)에도 못 미치는 10%대임을 강조하며 저상버스 33대분을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할 것을 시에 요구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국토교통부의 방침에 따라 2016년까지 저상버스를 전체 버스 대비 39.1% 도입한다’는 내용을 담은 ‘2차 인천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5개년 계획)’을 지킬 것을 주장했다.(관련기사 2014.04.10.)

기자회견 현장에 나와 있던 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저상버스 추가 도입은, 먼저 국토부가 어느 지역에는 저상버스가 부족한지 또는 남는지를 조사해야하기에 당장 확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현재에도 버스운송업체에 저상버스 구입 시 여러 혜택을 주지만, 회사 측에서 수익성이 없다고 구입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국토부가 설정한 목표치(=6대 광역시와 경기도는 2016년까지 전체버스 대비 저상버스 비율을 40%로 맞춰야한다)가 다소 높다고도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 센터장은 “교통약자에는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임산부, 어린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엄마들도 해당한다. 저상버스가 확대되면 이런 약자들이 불편함 없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회사가 저상버스 도입을 꺼려한다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한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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