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숙 시민기자의교실이야기 ⑮

아이들은 수업시간 40분을 교실 의자에 앉아 있다. 쉬는 시간 종이 치는 순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복도와 계단은 뛸 수도 소리 지를 수도 없는 공간이다.

그랬다간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하고 생활 당번에게 이름을 적히기도 한다. 그러든가 말든가 상관없이 복도에서 뛰거나 소리 지르는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제지당하고 교실로 들어오고 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또 교실에서 뛰고 소리 지른다.

아이들이라 그것마저도 귀엽고 예쁠 것 같지만, 교사인 나는 귀를 막고 참아내면서 뛰는 아이들 때문에 누가 다치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 쳐다보다가 결국 소리 지른다.

“학교에서 뛰거나 소리 질러도 괜찮은 곳은 어디라고?” “운동장이요” “뛰거나 소리 지르려면 운동장으로 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시계를 보면 헛웃음이 난다. 교실이 있는 5층에서 운동장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걸으면 5분, 뛰면 3분쯤 걸릴 텐데. 쉬는 시간 10분은 이미 다 끝나간다.

한 아이가 말했다. “야, 운동장에 빨리 가고 싶으면 미국으로 이사 가. 거기는 학교 건물이 1층이야” 다른 아이들은 말한다. “우와, 대박 부럽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2부제 수업에 한 반에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득실거렸어도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바람이라도 쐬고 올 수 있었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서울 재개발 지역의 학교였지만, 건물은 2층이었다.

쉬는 시간은 짧고 운동장은 너무 먼 5~6학년 담임을 몇 해 하다 보니 교실에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이 있다. 바로 보드게임이다. 보드게임을 교실 뒤편에 마련해놓으면,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조곤조곤 논다.

뛰거나 소리 지르는 아이들이 그만큼 준다. 물론, 그럼에도 꼭 뛰거나 소리 질러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판을 깔아주니 아이들이 집에서 보드게임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 아이가 집에서 서양 카드(=트럼프)를 들고 와서 내게 물었다. “선생님 학교에서 카드 가지고 놀아도 되요?” 이를 들은 여자 아이들이 “선생님, 카드는 도박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내기를 하거나 돈을 걸면 도박이다. 가지고 노는 것은 괜찮은데 뭔가를 걸고 하면 도박이 되니 그때는 금지하겠다”

그 뒤로 남자 아이들이 한참을 카드를 가지고 놀았다. 그러더니 방학 하기 3주 전쯤 한 녀석이 뭔가를 들고 왔다. 바로 화투였다. 그리고 똑같이 물었다. “선생님, 학교에서 화투 쳐도 되나요?”

난 학교에서는 절대 있으면 안 될 것을 본 듯한 기분으로 머리가 멍했다. 두말할 것도 없었다. “가방에 넣어라. 그리고 집에 두고 와라”

그런데 다음날 아이들이 말했다. “선생님, ○○이 가방에 화투 있어요” 아이를 불렀다. “어제 내가 집에 두고 오라고 말한 것 같은데”

아이가 답했다. “선생님, 저번에 돈을 걸지 않으면 도박이 아니어서 카드는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화투도 똑같아요. 돈만 걸지 않으면 그림 맞추기 게임인데요, 왜 카드는 되고 화투는 안 되나요”

아, 이런. 할 말이 없었다. 사실 화투를 돌려보내며 갸우뚱했다. ‘왜 아이들에게 카드는 된다고 했으면서 화투는 안 된다고 했을까’

그렇게 시작한 논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처음 화투놀이를 허락받으려고 했던 아이는 자기 세력을 늘렸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남자 아이들이 나에게 몰려와 화투장을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저희랑 얘기 좀 하시죠”

토론이 붙었다. 토론인지 말싸움인지 며칠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 논리는 대충 이렇다. 첫째, 돈이나 무엇을 걸지 않는다면 화투는 그림 맞추기 놀이일 뿐이다. 명절에도 온가족이 다함께 하는 놀이 아닌가. 둘째, 화투를 가지고 재미있게 놀려고 하는 것은 행복권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일이다. 셋째, 화투가 내 인생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가겠다. 넷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고 놀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안 된다며 말한 논리는 이랬다. 첫째, 우리나라는 화투놀이를 할 때 돈을 걸고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너희들이 지금은 돈을 걸고 하지 않지만 이렇게 자주 가지고 놀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러다 나중에 도박에 자연스럽게 빠질까봐 걱정이다. 둘째, 너희는 그냥 재미있게 하는 그림 맞추기 게임이겠지만, 밖에서 보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 생각해봐라. 너희가 교실에서 화투를 친다는 것을 부모님이 알면 뭐라고 하겠는가. 애들 화투 치는 것도 그냥 놔둔다며 얼마나 이상한 교사라고 손가락질 하겠는가. 난 솔직히 그런 이야기 듣는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다. 셋째, 몇몇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 반에는 ‘화투는 술과 담배처럼 어른들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화투를 교실에서 보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날마다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날마다 ‘미안하지만 허락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보채기는 끝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난 결단을 내렸다. “그래. 하루 날 잡아서 보드게임대회를 하자. 보드게임 종목에 화투를 포함하겠다”

난 타협안을 제시했고, 아이들은 매일 할 수 없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다행히 그 선에서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보드게임대회를 한 날, 그 아이들은 너무나 진지하고 즐겁게 화투를 쳤다.

보드게임에 열중하는 아이들을 보며 또 한 번 생각했다. 제발 학교 교실을 2층 이하에만 둘 수 있게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이 운동장이랑 땅이랑 흙이랑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말이다.

※ 구자숙 시민기자는 인천대정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