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최주영 인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10이라는 숫자는 신령스럽다. 십진법의 세계가 그렇고, 모든 종교의 계율이 십계로 이뤄진 것도 그렇다. 축구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에게 주는 번호도 10이다. 엄마 뱃속에 있던 태아는 열 달 후 세상과 만난다. 인천여성영화제(이하 영화제)가 올해로 10회를 맞았다. 10주년 행사 준비로 한창 바쁜 최주영(41ㆍ사진) 인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2005년 시작해 올해로 10회째

▲ 최주영 인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최 집행위원장은 2004년 설립된 인천여성회 사무처장을 맡으며 여성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영화를 상영하면서 사람을 모으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서울에서 진행하고 있는 국제여성영화제를 보러갔는데, 8일 동안 축제처럼 재밌게 하더라고요.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영화도 많았고, 상영관 밖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자연스런 분위기가 신선하고 좋았어요. 여성들이 모이는 문화라서 자유로움이 많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신기해서 우리도 해보자고 했죠”

2005년, 인천시 여성과에서는 7월 초 여성주간에 맞춰 행사를 고민하다가 인천여성영화제와 연결돼 홍보와 재정적 도움을 줬다. 지역의 시민단체들도 다방면으로 도움을 줬고, 인천에서 영화제가 낯설던 시기라 언론의 관심도 많았다.

1회 영화제 때에는 <조선일보>에서도 영화제를 소개하며 무료인 점을 함께 알렸는데, 많은 노인이 그 기사를 오려 가지고 영화를 보러왔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영화제 준비단계에서 토론하면서 ‘전 세계의 영화를 상영하는데 북녘 영화가 없는 게 아쉽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게다가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이라는, 북을 지원하는 단체가 영화제를 공동으로 주관하기도 했거든요. 당시 통일부에서는 일정 규모가 되면 북한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 유치를 신청했어요. 해병대 복장을 한 할아버지 서너 분이 <조선일보> 기사를 오려 와서 이북영화를 보러 들어가신 거예요. 초긴장을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오셔서 고향이 북쪽이었는데 고향 생각나는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줘 정말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사회적 기업을 만들다

5회까지는 영화제를 인천여성회 사업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영화제가 질적ㆍ양적 성장을 거듭해 6회부터는 여성회에서 독립해 ‘인천여성영화제’를 비영리단체로 등록했다. 이때부터 최 집행위원장은 인천여성회 활동을 정리하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7회 때부터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더욱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2008년 10월, 사회적 기업인 ‘생태주의 난타 퍼포먼스 그룹’ (주)노리단이 문화예술 분야 예비 사회적 기업가 양성 아카데미인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을 꿈꾸다!’를 개최했다. 이 아카데미에 참석한 최 집행위원장은 사회적 기업으로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걸로 먹고 살자’가 목표인 인천여성회 회원들과 사회적경제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 성원들의 지지로 2012년 4월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해 상근자 5명의 인건비를 지원받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고, 현재 9명이 근무하고 있다. 최 집행위원장은 이 사회적 기업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인건비가 80% 지원돼, 나머지는 사업으로 충당해야합니다. 아직 임금체불은 안 됐지만 사업 아이템이 부족해 쉽지는 않죠”

영상과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상근자가 많아 홍보영상 제작 주문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학교나 각종 단체의 영상교육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으려면 매출액ㆍ사회공헌 실적ㆍ대표자의 운영마인드ㆍ고용비율 등, 갖춰야할 게 많은데 영화제는 다양한 행사와 사업으로 매출실적이 높은 편이다.

지역주민과 더 밀착하기 위해서

“영화제를 10회째 진행하다 보니 국제영화제나 아시아영화제로 확대해야하지 않나, 하는 질문을 많이 해요.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지역 영화제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지역주민과 호흡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처음의 목표이고, 그걸 훼손하면서 외적 확장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들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은 ‘달리는 영화상자’다. 영화 상영과 영상교육을 할 수 있는 장비를 트럭에 싣고 아파트 단지나 도시텃밭, 시골과 섬마을, 학교 등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 영화를 매개로 시민들과 더욱 밀착하려고 한다.

“찾아가는 영화관 사업인 ‘달리는 영화상자’는 상업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또한 영화는 어떤 사람과 어떤 공간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자기가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영화를 보면 할 수 있는 얘기가 훨씬 많아요. 영화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서로 말문을 트이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섬마을에서 교육하고 상영한다면, 낮 시간에는 주민들과 마을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소재로 1분짜리 영상 만들기 교육을 진행한다. 저녁에는 주민들이 제작한 영상을 틀어준다.

페미니스트 지역미디어 활동가

▲ 최주영 인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제 상근자 아홉 명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근무한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지만, 시간에 매어있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감수성과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사무실을 떠난 다양한 외근을 허용한다. 대신 매주 1회 학습과 토론 시간은 치열하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은 재밌는 놀이와 함께 야외에서 워크숍을 진행한다.

“거듭된 토론으로 상근자들의 정체성을 정했어요. ‘페미니스트 지역미디어 활동가’라고요. 쉽지 않았죠. 생소하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아직 두려워하는 상근자도 있지만, 지향은 분명히 했습니다”

최 집행위원장에게 페미니스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자, 대답대신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자기 편의대로 듣고 해석하는 기자들을 많이 봐 왔다며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남성의 권리를 누르거나 훼손하지 않아요. 모든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게 기본정신인거죠. 특히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소수자와 약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배려하고 모든 억압과 착취를 반대하는 겁니다.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게 아닌 인간적ㆍ인권적인 시선으로, 미디어와 문화를 무기로, 지역을 기반으로 스스로 활동을 만들어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되고자 팀워크를 만들어갑니다”

영상은 나의 무기

“객관이라는 게 과연 있나요? 다큐멘터리도 객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주관적이에요. 영상교육을 한다는 건 자기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배우는 것이라고 봐요.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말하는 힘을 키우는 거죠. 객관적인 것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내 시선으로 보되 객관적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죠”

최 집행위원장은 영상이라는 매체가 그런 힘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상교육을 하다보면 타인을 찍기도 하지만 자기를 찍기도 해요. 카메라로 ‘또 다른 나’와 마주하는데,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신기하게도, 평상시에는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게 어색하다가도 카메라를 대면 긴장하기도 하지만 진솔한 얘기를 하게 돼 필터처럼 자신이 걸러진다고 한다.

“평소에 엄마와 대화하는 게 어색했는데 일주일간 같이 있을 일이 생겼어요. 서먹하기도 하고 카메라로 엄마를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에 가져갔는데 나중에 엄마가 ‘카메라랑 잘 놀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진지하게 되면서 그동안 못 나눴던 많은 얘기를 했어요”

10년은 또 다른 시작

10주년을 맞아 인천여성영화제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미드나잇시네마도 하고, 지금까지 반응이 좋았던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행사도 한다. 또한 10년 동안 자원활동가나 스텝으로 영화제에 도움을 준 사람들과 함께하는 파티와 포럼을 기획했다.

“10년이 됐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정리하고 되돌아 볼 만큼 오랜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행사를 준비하면서 한 친구가 ‘10년은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생각해보니 10은 시작하는 숫자일 수 있겠다. 이제 뭔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아니더라도 인천여성영화제는 계속 나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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