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는 소비자가 질을 판단해 선택하기 어렵다”
“의료는 소비자가 질을 판단해 선택하기 어렵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4.07.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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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임준 인천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

영화 ‘블랙딜(다큐멘터리 | 2014.7. | 한국 | 이훈규 감독)’은 철도ㆍ교육ㆍ전기ㆍ물 등 공공재를 민영화해 파탄 난 다른 나라 사례를 보여준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를 떠오르게 한다. 의료보험이 민영화된 미국의 끔찍한 현실은 우리나라에 공적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도 ‘의료 영리화’가 사회적 이슈가 됐고, 급기야 3월 10일 의사들이 파업을 했다. 인천시의사회 회원 1000여명도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닌 국민건강권을 지키려는 것’이라며 이 파업에 동참했다.

갖가지 사건사고로 안전과 건강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요즘, 공공(公共)의료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임준(47ㆍ사진) 인천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을 그가 예방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가천대학교 메디컬캠퍼스에서 만났다.

살맛나는 세상 위해 행동한 의대생

▲ 임준 인천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
1987년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시절, 의과대학에 입학한 임 단장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93년엔 ‘노동건강연대’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산업재해 문제와 산업안전보건활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88년 7월 2일, 문송면이라는 한 소년이 열다섯 나이에 수은중독이라는 직업병으로 죽었다. 당시 시민사회ㆍ노동단체의 활동으로 정부기업이었던 원진레이온(1993년 6월 8일 폐업)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라는 이름의 신경 독가스로 죽어가고 있음을 밝혔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6년 넘게 눈물겨운 투쟁을 벌여 보상을 받았고, 그 후 전문병원 설립과 산재직업병제도 개선 등의 값진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삼성전자나 한국타이어 등 많은 대기업에서 노동자들이 암에 걸려 숨지거나 폭발사고 등으로 희생되고 있다.

문송면군 사망사건 이후 산재추방운동 차원으로 ‘노동과건강연구회’가 결성됐고, 이 연구회는 산재의 심각성을 알려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1년 ‘노동건강연대’라는 단체로 새롭게 태어났다.

임 단장은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노동건강연대’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 후 199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실’에 참여하면서 보건의료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1987년 9월에 국내 최초로 개설된 이 의료관리학 교실은 보건의료분야의 연구와 교육 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의학과 함께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분야의 지식과 방법론을 활용해 보건의료와 관련한 제반 현상을 분석해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1995년부터 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 참여하면서 보건의료 분야에 관심을 갖고 1999년 의료관리학 교실에서 김용익ㆍ김창엽 교수님들의 영향을 받아 보건의료 정책에 참여했습니다”

인천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이 되다

지난해 10월, ‘인천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하 지원단) 운영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이 조례는 지원단의 설립 목적을 ‘시민에게 양질의 공공보건의료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하여’라고 명시했으며, ‘지원단을 인천시의료원 내에 둔다’고 했다.

임 단장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한 겁니다. 공공보건의료는 단순히 취약계층의 진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며 공공의료의 개념을 설명했다.

“공공의료 영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양질의 적정진료를 하는 거죠. 여기에는 민간의료와 공공의료가 함께 합니다. 두 번째는 취약계층의 안전망 역할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충족 의료’라는 건데, 분만ㆍ응급ㆍ감염 등 민간의료가 비용대비 수익이 없어 잘하지 않는 분야를 정부가 직접 공공기관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죠”

공공보건의료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강조점은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취약계층이나 미충족 진료만을 강조하는 시각이 있어요. ‘잔여적’ 복지라고도 하죠. 물론 그것도 의미는 있지만, 저는 좀 더 보편적이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좋은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잖아요”

유엔에서 채택한 사회권 규약에는 ‘모든 개인은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돼있다.

“의료서비스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누릴 권리라는 거죠. 이것이 보건의료의 특수성이에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시장적 메커니즘의 분배로 권리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겁니다. 구매력(=경제력)이 있는 사람만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되는 실정인데, 경제적 격차 없이 누구나 좋은 서비스를 받고 좋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과 공공의료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 보장성 하락과 영리추구가 가속되는 경향으로 서민들의 ‘건강 향유권’은 점점 배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가 대형 병원에서 점점 없어지죠? 소아과는요? 외과는요? 이 부서들은 꼭 필요하고 중요한 부서지만 경쟁력이 떨어지니까 투자를 안 해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합니다. 이게 현재의 보건의료 메커니즘입니다. 결코 공공적이지 않고 영리 추구적입니다”

영리 병원 문제는 괴담?

▲ 임준 인천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
“일부 전문가는 유럽도 영리 병원을 추구하고 우리나라도 현재 병원이 영리활동을 하는데 영리 병원을 추구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합니다. 영리 병원을 허용하면 경쟁으로 의료의 질이 높아진다는 거죠”

그러나 임 단장은 영리적이라 의료의 질이 오히려 낮아진다고 반박한다. “일반적인 시장은 경쟁으로 질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양말을 독점적으로 만들면 질이 나빠질 경향이 크고 시장의 효용성이 떨어져요. 써보면 아니까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죠.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해 상품의 질을 높여야합니다. 하지만 보건의료서비스는 소비자 판단이 가능합니까? 의료 특성상 의료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소수라 공급이 독점적입니다. 또한 소비자가 공급자의 질을 판단하기도, 선택하기도 어렵습니다”

전문용어로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설명하는 임 단장은 돈 있는 대형 병원은 장비구입 등의 비용투자에 집중해 경쟁을 왜곡한다고 했다. 정부의 역할은 공적 규제를 강화해 질적인 경쟁을 유도해야한다고 했다.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게 필요한데 지금은 전혀 관리가 안 되고 있어요. 영리적 체계가 원인입니다. 지금은 이런 체계를 바꾸는 게 급선무인거죠. 의료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불만족이 극에 달했어요. 대형 병원 쏠림 현상도 심하고요. 의료비 상승으로 수많은 병폐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더 영리적으로 된다면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겁니다”

임 단장은 영리 병원 문제는 괴담이 아니라, 사실이며 규제를 통해 체계를 바꿔야한다고 강조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규제를 강화해야합니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민간의료를 지원해야 합니다”

지엽적 영리 병원 문제 아닌,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전반적 시각으로 전환해야

임 단장은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문제는 특정 정권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대한민국 수립이후 지금까지 영리화의 흐름으로 왔다는 것이다.

“60ㆍ70년대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해서 의료라는 개념도, 수요도 부족했죠. 1989년 의료보험이 생기고 수요 증가로 욕구가 분출됐는데 공급체계는 시장에 맡겨버려 수요ㆍ공급의 불평등 문제가 발생한 거죠. 게다가 전두환 정권 이후부터는 대형 병원의 독점이 진행됐고요”

그 후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줄고 의료 민영화가 추진됐다. 물론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투자총액이 부분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원이나 보건소 등의 건물 증축이나 리모델링 수준이지 의료안전망이나 ‘미충족 의료’를 확대하는 변화는 아니었다.

임 단장은 건강보험제도나 주치의제도, 의료법ㆍ보건의료기본법 등 법과 제도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공공보건의료 정책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일에 지원단이 제 역할을 하겠다고도 했다.

“인천의 경우 공공의료기관으로 인천의료원과 보건소, 시립병원, 적십자병원, 산재병원, 재활병원 등이 있는데, 지원단은 이 기관들이 공적 역할을 잘 하게 지원하는 일을 합니다. 전체를 바라보며 사업의 우선순위와 중점사업을 정하고 통계 등의 데이터를 제시해 사업 타당성의 근거도 마련하죠”

또한, 인천시의 보건의료정책을 담당하는 보건정책과가 인천시민들을 위한 올바른 역할을 하게 기술과 정책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의회와 시민들의 의사를 수렴해 조례 제정 등을 지원하는 역할도 해나갈 예정이다.

“현안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의료 프레임’을 형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공공의료는 너무 취약합니다. 국민들이 의료인들을 불신해요. 의료의 규제 강화를 위해 의료법을 개정하고 주치의 등록제를 실시해야합니다. 또한 공공의료를 확대하고 민간의료기관에서 운영하는 거버넌스를 강화해 정부가 장비나 시설에 투자해 공공재의 역할을 하게 해야 합니다”

모든 국민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 그렇지 않다면 가능한 시스템이 되게 전체적 개혁이 필요하다. 인천시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인천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정복 인천시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