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소방관 김씨

한파가 몰아친 그날은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졌다. 사이렌이 울리고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서둘러 방화복과 장갑, 헬멧 등을 챙겨 화재현장으로 출발했다. 화재현장으로 출동한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매번 심장을 울리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다.

큰 소리로 사이렌을 울리자 길을 터주는 자동차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터준 길을 향해 먼저 내달리는 얌체 차량들도 보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한 시민은 소방차가 지나가는 데도 쳐다보기만 하고 천천히 걷고 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나지만, 화재 진압이 우선이다.

소방차가 골목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불법 주ㆍ정차된 차량으로 진입이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화재현장. 1시간가량 물을 쏘아 겨우 진압할 수 있었다. 방화복과 장갑은 흠뻑 젖어버렸다. 소방서로 돌아온 후 방화복과 장갑을 말리려고 널어놨지만, 미처 마르기도 전에 다시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방화복은 다행히 두 벌이라 갈아입고 출동했지만, 장갑은 한 벌뿐이다. 꽁꽁 얼어붙은 장갑을 끼고 다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또 1시간 동안 화재를 진압하고 흠뻑 젖은 채로 소방서로 돌아왔다. 하지만 또 출동이다. 이날만 다섯 번 출동했다. 덜 마른 방화복과 장갑을 끼고 화재와도 추위와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소방노예’라는 시선이 더 큰 스트레스

▲ 화재 현장에 진입해 불을 끄고 있는 소방관들.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인천에서 10년 가까이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30대)씨는 소방관이 국민의 생명을 구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멋있고 보람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시험을 봤고,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턴가 ‘내가 이 직업을 왜 택했을까, 똥 밟았다’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고 있다. 화재현장을 출동하며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른바 ‘소방노예’라는 시선을 받는 것이 더 스트레스다.

‘소방 노예’라는 표현은 우리나라 소방관이 매우 낙후한 장비를 착용하며 목숨을 내걸어 화재를 진압하고, 힘없는 조직이라 상부(소방방재청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시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빗된 것이다.

소방관의 99%는 지방직 공무원으로 인사권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에 있지만, 중앙정부 기관인 소방방재청의 업무지휘를 받는다. 때문에 소방관은 지자체의 눈치도 중앙정부의 눈치도 봐야하는 처지다.

김씨는 ‘소방 노예’가 10년 전에도 있었던 표현이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예전보다 장비는 조금 더 좋아지고 비합리적 부분들이 개선되기도 했지만, 큰 틀에서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가장 속이 상하는 것은 같은 공무원임에도 소방관을 무시하고 깔보듯이 대하는 지자체 행정직 공무원들과 교육 행정직 공무원들의 태도다. 매해 관공서에서 하는 소방훈련이나 소방교육을 나가면 “이런 것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 대충하고 사진만 찍으면 되지”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렇게 훈련이나 교육에 권위가 생기지 않다보니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학교 소방점검도 마찬가지다. 원래 방화관리자를 교장이나 행정실장이 맡아야하는데, 소방점검을 나왔다고 하면,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고 불성실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런 태도가 안전 불감증의 한 원인은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에서 소방관은 ‘인명을 구조하는 영웅’ 대접을 받지만, 한국에서 소방관은 ‘노예’ 취급을 받는 현실이 슬프다. 결혼하고 싶어도 배우자가 될 사람의 부모에게 ‘소방관’이라고 얘기를 꺼내기조차 힘든 현실은 그를 더욱 슬프게 한다.

잘못 안 했어도 민원인 찾아가 무릎 꿇고 사정

▲ 화재 현장에 진입해 불을 끄고 있는 소방관들.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화재현장에 출동하지는 않지만 사건ㆍ사고의 구조 전담활동을 맡는 119생활구조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생활구조대는 잠긴 문을 따주고, 벌집을 제거해주고, 동물을 구해주기도 하고,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다.

생활구조대가 가장 힘든 것은, 응급환자 이송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데 주민들의 얌체 같은 신고다. 응급하지도 않은데 마치 택시처럼 응급차를 불러 얌체처럼 타고 가거나 하수구에 핸드폰이 빠졌다고 꺼내달라고 신고하는 주민을 보면 답답하다.

“다른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다. 한 아주머니가 아파서 죽겠다고 119에 신고해, 구조대가 출동했다. 그런데 그 집에 도착해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기척이 없었다. 문을 계속 두드리니 안에서 ‘잠시만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아주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고무장갑을 낀 채로 문을 열고 나왔다. ‘누가 아픈 것이냐’고 묻자, ‘나에요’ 하더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할 것 다하고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 그 동료는 정말 어이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 이야기를 들려준 뒤 “위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고한 것은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고, 신고자에게 서명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시청이나 소방본부에 민원을 넣으면 감찰계에 끌려가 조사를 받아야한다. 소방조직은 민원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민원이 발생하면 해당 소방관이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위에서는 책임을 지우려한다. 한 소방관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민원을 넣은 주민을 찾아가 무릎 꿇고 민원을 취하해달라고 사정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방관이 힘없는 조직이다 보니 동물 구조나 수해 발생 시 물을 빼내는 일 등, 관할 구청에서 해야 할 일들을 담당하게 되는 것 같다며 인력을 늘리거나 지원 예산을 늘리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나 다른 행정기관이 해야 할 일을 계속 떠맡고 있다고 했다.

화재 진압 장갑, 10년 가까이 딱 세 번 지급받아
순직 사건 때만 “처우 개선” … 10년간 그대로

▲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119 생활구조대원들.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특히 그는 “인천이 다른 지역보다 그나마 낫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화재 진압 현장에서 소방관의 생명을 지켜주는 장비가 낡고 제 때에 교체가 안 되는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10년 가까이 근무하는 동안 장갑을 딱 세 번 받았다. 장갑이 아무리 좋아도 화재 현장을 헤집고 들어갔다 나오면 몇 번 만에도 물이 샌다. 때문에 장갑을 꿰매 쓰거나 그냥 찢어진 장갑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마저도 단 한 짝뿐이다. 그의 동료들 중에는 손에 크고 작은 화상을 입은 사람이 많다. 1년에 최소 두 벌 정도는 보급돼야 화재 진압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방화복도 비슷하다. 다행히 두 벌 있지만, 한 벌은 이미 내용연수(사용 가능 햇수)가 지났다. 한번은 여름에 얇은 새 방화복을 지급받았다. 선배들이 ‘여름용’이라고 이야기해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은 선배들의 푸념 섞인 표현이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저렴한 방화복을 구입해 지급한 것이다. 그는 내용연수가 좀 지난 방화복을 입고, 그 얇은 방화복은 캐비닛에 처박아 둘 수밖에 없었다.

소방차의 내용연수가 몇 년 전부터 8년에서 10년으로 늘었는데도 10년이 넘은 소방차가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 그는 후배 소방관으로부터 ‘브레이크에 계속 문제가 생기는 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차량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수리하는 것으로 그쳤다. 새 소방차로 바뀌지 않았다.

그는 “소방장비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것인데, 어떻게 예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방치할 수가 있는가”라며 “언제까지 소방관이 ‘소방 노예’로 살아야하는가? 지자체가 그동안 책임을 못 져 지금까지 왔다면, 이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방관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생겨 열악한 환경이 알려질 때마다 정부는 처우 개선을 약속했지만, 지난 10년간 달라진 것은 없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세월호 사건 이후 소방방재청을 해체하고 소방 기구를 국가안전처에 편입하려고 한다. 이렇게 해봐야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또, 현장을 아는 소방전문가가 아닌 행정직 공무원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소방관의 처우 개선 없이 차관급인 소방방재청장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1계급 강등이나 다름없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소방관은 아마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한 소방관은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처리를 요청해 '소방관 김씨'라고 지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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