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하재준 수필가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4일, 고희를 넘긴 수필가 하재준(74ㆍ사진)씨를 부평구 삼산동 그의 집에서 만났다. 유독 교육감 후보의 자질을 강조하는 작가를 보며 의아해했다. 이야기를 듣던 중 전직 국어교사였음을 알았다. 그는 수필은 진솔한 삶의 문학이라고 했다.

올바르고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고민

▲ 하재준 수필가
“1941년생이에요. 어렸을 때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어려운 시대였죠.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신문배달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어요”

하 작가의 고향은 전라북도 정읍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정읍에서 ‘천석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그는 고학(苦學)을 안 하면 안 될 상황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돈보다는 올바른 가치관으로 사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고학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하던 해인 1966년 3월, <전북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사회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시절인 1973년 전북 지역신문 3개가 통폐합되면서 앞날이 불투명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기자생활 7년을 정리하고 공립학교 교사를 결심했다. 이후 국어교사로 27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고학을 하면서도,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교사로 있으면서도 ‘올바로 사는 것, 의미 있는 삶’이라는 화두를 향한 그의 고민은 계속됐다.

“부천에 사는 큰딸의 권유로 2005년에 인천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 이듬해부터 <부천자치신문>에 글을 썼죠”

지인의 소개로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다 신문사 사장의 추천으로 논설위원과 논설주간까지 맡았다. 하 작가는 2012년 1월에 위암수술을, 3월에 뇌수술을 받았다.

“수술할 때는 ‘어쩌면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엔 한 달에 한 번꼴로 칼럼을 쓰는데 몸이 피곤하면 그마저 잘 못쓰죠”

많이 회복됐지만 예전 같지 않다는 하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필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맹렬하게 글을 쓰다

늦게 시작한 교직생활인지라 승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그것은 학생들에게도 좋고 자신의 발전도 이룰 수 있는 ‘글쓰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교직생활을 하며 대학원에 다니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신춘문예’ 등의 신인상 제도로 단번에 등단하지만, 당시 등단 제도는 3회 추천제도였다.

초회 추천, 2회 추천, 3회 추천을 마지막으로 추천이 완료되는 것이다. ‘전북 문학’이라는 동인회에 들어가 글을 썼다. 경희대 대학원을 다닐 때 당시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었던 서정범 교수와 조경희 한국수필가협회 회장이 초회 추천해줬고, 1년 후 작품을 써갔더니 추천을 완료해줘, 등단했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고 3회 추천이었는데, 하 작가가 추천될 무렵인 1986년엔 2회 추천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문단의 원로들인 명망 있는 작가들의 추천과 글이 반드시 문학잡지에 실려야 등단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하 작가는 ‘한국수필’이라는 잡지로 등단해 재작년 쓰러지기 전까지 30년 동안 맹렬하게 글을 썼다고 한다.

삶의 진솔한 얘기인 수필에 더 끌려

하 작가는 지금까지 논문집 1권, 칼럼집 1권, 수필집 6권을 펴냈다. 그는 만족스런 글 한 편 썼을 때의 쾌감은 글을 쓰며 쌓인 스트레스를 보상하고도 남을 기쁨이라고 했다.

시ㆍ소설ㆍ수필 중에 수필에 매력을 느낀 하 작가는 “수필은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지요. 모든 문학은 상상의 세계가 있어야 해요. 소설은 허구를 통해, 시는 이미지나 상징적인 것을 통해 나타내지만, 수필은 진솔한 것을 통해 나타내지요”라며 진솔한 삶이라고 하는 수필과 상상의 세계와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줬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밖에서 나를 불러요. 대답하고 나가면서 저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해요. ‘어머니가 어디 아프신가? 무슨 일로 다급하게 부르시지?’ 등, 다양한 상상이요. 어머니가 불러 밖으로 나간 사실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세계가 결합할 때 수필로 나와요. 작가들은 좀 더 가치 있는 상상의 세계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해요”

어머니, ‘창피’라는 단어 가르쳐주시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와 두엄을 손수레에 싣고 밭으로 부리러가고 있었어요. 가는 도중 어머니와 같이 수학했던 친구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멋쟁이 부인이었죠. 한참 담소를 나누고 그 분이 돌아가신 후 어머니께 창피하지 않았냐고 여쭙자, ‘창피라는 단어는 자기가 할 바를 못하고 남한테 아쉬운 말을 할 때 쓰는 거다. 우리는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열심히 일하는데 무엇이 창피하냐’라고 하셨죠. 그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떠오르는지 그의 눈동자에 물기가 맺히고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의 그 깊은 말씀이 힘이 돼 20년 고학을 했어요. 어려울 때마다 힘을 얻어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어머니가 저를 건전한 정신으로 이끌어주셨어요”

그의 어머니는 그가 마흔두 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묵은 김치를 먹으면서 어머니를 생각했어요. 김치에는 각기 맛을 내는, 맵고 짜고 독한 갖가지 양념들이 들어있죠. 생강이랑 마늘 같은 것들이 얼마나 독해요? 그런 것들을 독에 가둬 몇 개월 두면 숙성돼 새콤달콤한 맛이 나잖아요.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기 위해 쓸개고 간이고 다 내주며 모진 고난을 가슴속에서 승화시키는 게 꼭 김치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 글을 쓸 수 있고, 작가는 이런 눈을 가져야한단다. 그것이 작가의 눈이고 마음이고 사상이며 실력이라고 한다.

형식보다 내용 갖춘 작가들이 많아야

▲ 하재준 수필가가 자신의 저서를 펼쳐보이고 있다.
하 작가는 지금까지 백제문학상ㆍ노산문학상ㆍ전북문학상 수상 등,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특히 수필집 ‘아름다움이 피어오르기까지(교음사. 2007)’에 수록된 ‘코스모스’라는 수필은 현재 천재교육에서 출간한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에 수필작문 교본으로 나왔다. 작년 6월 출간된 ‘냉수한잔이라도(교음사. 2013)’는 한국문인상 본상 수상에 이어 수필가협회상으로 두 번의 상을 받았다. 하 작가의 책은 국립도서관ㆍ국회도서관ㆍ과학도서관ㆍ문학도서관에 소장돼있다.

“지금 인천수필가협회에서 강의하는데, 무엇보다 작가들의 실력을 강조해요. 실력이란 해박한 지식이죠. 기초적인 지식 없이 그냥 감정만 쏟아내는 것은 기본이 안 된 겁니다. 또한 작가는 인격을 갖춰야합니다. 그래야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이 나와요. 아무리 잘쓴 글이라도 글은 자신의 마음과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면 거짓이죠”

하 작가는 ‘예쁘다’의 어원을 설명했다.

“‘어여쁘다’에서 비롯된 말이죠. 변사또가 춘향이에게 수청을 강요했지만 이도령과의 언약으로 거부하고 기꺼이 곤장을 맞았잖아요. 너무 아파 비명을 지르는 춘향이에게 사람들이 모여서 ‘어여쁘다’라고 합니다. 불쌍하고 가련하다는 뜻이죠. 춘향이의 어여쁜 마음 속에는 범접할 수 없는 그윽한 정신적 세계가 담겨있습니다. 작가들은 자기의 얼굴과 자신의 작품에 ‘예쁜’정신세계가 담겨있어야 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정(情)과 정이 얽힌 인천에서 할 수 있는 일 하고파

하 작가는 현재 인천수필가협회 소속 작가들을 위한 교육과 주안문화센터에서 대중들을 위한 수필창작 강의를 무보수로 하고 있다.

“인생이 얼마나 남았겠어요? 그러나 하고 싶은 게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는 내가 갖고 있는 적은 지식이라도 다 퍼주고 나눠주고 가고 싶습니다. 또 하나, 후손대대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을 계속 쓰고 싶죠. 한 작품이라도 좋으니 후대들에게 읽힐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마지막으로는 교회 장로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과 글을 쓰고 싶습니다”

2005년 12월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9년째 살고 있는 인천에 고향만큼의 따뜻함을 아직 못 느끼지만 평가를 하기보다 먼저 무언가를 시도해야한다는 하 작가.

“인천시민들이 좀 더 정을 나누며 살고 싶은 인천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라인은요, 어린 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른들까지 내가 먼저 인사하기를 시작하고 1년쯤 지나니 요즘에는 어느 아파트 못지않게 정과 정이 얽혀있는 것을 느껴요”

인터뷰를 마치고 아파트 단지 앞까지 기자를 배웅하러 나오는 길에 만난 동네 주민과 하 작가가 끊임없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소한 집안 사정까지 아는 듯한 대화내용이 정겨웠다. 그의 수필처럼 사람 사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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