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퍼스트 댄스(First Dance)

퍼스트 댄스(First Dance) | 정소희 감독 | 2014년(미개봉)

세월호 참사 두 달이 지났지만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했고 심지어 열두 구의 시신은 찾지도 못했다. 진도 팽목항에서는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고, 희생자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을 떠돌고 있다. 반면 지방선거를 나름 선방(?)한 대통령은 참극(!)에 가까운 내각 인선으로 정치를 어지럽히고 있고, 세월호를 잊지 않고 책임지겠다던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가 끝나니 시간 때우기에 급급하다.

이런 어지러움을 틈타 밀양에서는 팔순 노인과 수녀님들을 상대로 일사분란하고도 무자비한 진압이 이뤄졌고, 논란 많던 의료 민영화는 ‘영리 자회사 가이드라인 발표’라는,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정부 시책으로 은근슬쩍 추진되고 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고리 원자력발전소는 후쿠시마보다 더한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꿋꿋하게(!) 돌아가고 있다.

시절이 이러하니 텔레비전 드라마도 오락도, 그 좋아하던 영화도 재미가 없다. 심각하거나 슬픈 영화를 보는 건 엄두도 나지 않는다. 심지어 대놓고 오락을 목적으로 한 영화를 봐도 현실의 답답함과 참담함이 연상되어 푹푹, 무거운 한숨이 뒤따른다.

무엇을 해도 신날 일 없는 시절을 지나는 와중에, 담담함과 참담함을 뚫고 뭉클한 감동과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전해준 영화를 만났다. 정소희 감독의 ‘퍼스트 댄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일종의 결혼식 동영상앨범이다. 보통의 결혼식 동영상처럼 한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제목인 ‘퍼스트 댄스(First Dance)’란 서구의 결혼식 피로연의 댄스타임을 시작하는 결혼식 주인공 커플의 댄스를 말한다. 다시 말해 퍼스트 댄스란 댄스타임의 시작을 알리는 댄스이기도 하지만, 결국 반려자와 함께 내딛는 새로운 인생의 첫 걸음을 의미하는 말인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커플은 조금 특별하다.

미국 보스턴에 사는 선민과 로렌은, 결혼식이라고 하면 으레 생각하는 여-남 커플이 아니라 레즈비언 커플이다. 이들은 2012년 6월 여름에 결혼을 하기로 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로렌의 가족들을 유명한 게이 휴양지인 ‘프로빈스 타운’ 해변가로 초대해 아름다운 결혼식을 함께 한다.

선민과 로렌의 결혼식은 특별했다. 영화적 완성도나 연출, 구도, 구성을 생각할 차원을 넘어섰다고나 할까?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커플로 함께 살아낼 것을 약속한 커플과, 그 두 사람의 앞날을 지지하는 친구들, 지도교수, 부모와 가족들, 그리고 종교 지도자인 랍비까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진심이 전해졌다.

선민과 로렌을 비롯해 영화에 나온 인물들의 뜨거운 온기가, 생의 욕구가, 내 심장까지 전해졌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이런 감동적인 자리에 관객으로 참여한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문득 답답함과 참담함에 빠져 허우적대며 지내던 내가 보였다.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랑이거늘, 나는 무엇에 낙심해 무기력해진 것일까?

감동적인 결혼식 이후에도 선민과 로렌의 앞날은 여전히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외롭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지금까지 그랬듯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로 인생을 살아낼 것이고, 사랑할 것이다.

희망보다 절망이 쉬운 시대, 중요한 것은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 그리하여 결국 사랑하는 것 아닌가. 나의 현재를 뜨겁게 끌어안고 ‘다른’ 내일을 상상하기 위해, 나는 살아낼 것이다. 사랑할 것이다.

* 이 영화는 극장 개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7월 10일 개막하는 10회 인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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