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맥키 알스톤 감독│국내 미개봉

사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그러나 여기 사랑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위가 흔들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받는 한 남자가 있다. 최초로 커밍아웃(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힘)한 성공회 주교 진 로빈슨이다.

로빈슨 주교에게 신에 대한 사랑과 애인을 향한 사랑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사랑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는 세상은 그의 사랑을 반기지 않는다. 교회 원로들은 성공회 주교 전원이 모이는 램버스 회의에 로빈슨 주교의 참석을 불허하고, 일부 성공회 교도는 그가 설교하는 미사에 일부러 참석해 소란을 피운다. 단지 그가 게이라는 이유로.

이 영화는 지금 교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자, 그렇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었던 이슈인 동성애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엄숙함과 권위의 상징인 교회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다양한 성적 지향과 그에 대한 입장 차이를 성공회 주교들, 신자들, 그리고 논쟁을 지켜보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보여줌으로써 찬반 이분법을 넘는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보수적인 한국 교회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한국에서는 몇 차례의 공동체상영마저 불발됐고, 작년 몇몇 영화제에서만 상영되고 아직 정식 개봉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고작 영화 상영조차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인지 질문하는 것이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 정확하게 통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교회들의 퍼포먼스는 명확한 실패다.

실존 인물인 진 로빈슨 주교와 그를 대하는 세계 성공회, 미국 성공회의 모습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동성애는 옳다, 그르다’의 이분법이 아니다. 로빈슨 주교의 모습에서, 그를 대하는 교회와 사람들의 모습에서, 개인의 취향 문제로 봉합하기 일쑤였던 동성애 이슈가 사실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이며 따라서 공동이 해결해야 하는 정의의 문제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통 동성애는 개인의 취향으로 치부되고, 그래서 동성애에 대한 호불호 역시 개인의 취향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동성애에 대한 호불호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호불호와 다르다. 권력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을 혐오하고 비난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성애는 로빈슨 주교의 현실에서 볼 수 있듯, 배제와 불평등의 충분하고도 합법적인 이유가 된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들이 내뱉는 비난의 말과 경멸의 눈빛, 물리적 폭력에는 그들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가장 결정적 근거로 내놓는 성경에 나와 있는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신의 말씀이 들어설 자리 따윈 없다. ‘다름’을 당연한 차별과 배제로 바꿔버리는 우리 사회의 부정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이다.

이 영화는 로빈슨 주교의 가족과 동료, 신도들, 그들 속에 있는 게이ㆍ레즈비언 커플들과 에이즈 환자, 아프리카 흑인 여성처럼 편견과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로, 동성애가 주교 개인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이며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된 만큼 공동의 해법이 필요한 것임을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로빈슨 주교를 지지하는 한 흑인 여성 주교는 말한다. “이전에는 여성이 주교가 될 수 없었고, 더 이전에는 흑인 여성이 주교가 될 수 없었다. 지금 교회 원로들은 동성애자가 주교가 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 또한 변화할 것이다. 동성애자가 주교가 될 수 있게 된 다음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없겠지. 우리는 그것과 싸워야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로빈슨 주교의 말은 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