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승주 동북아정치경제연구소장의 경제이야기⑩

 
세월호의 비극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지금, 경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참 한가로워 보인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이 현재 지니고 있는 모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버렸다. 반드시 필요했던 안전 영역에서 국가는 오히려 위험을 조장하는 규제 완화를 해버렸고, 기업은 최악의 비윤리성을 보이면서 침몰해버렸다.

여기에 더해 경직되다 못해 마비된 관료주의로 인해 탈출자는 있어도 구조자는 단 한 명도 없는 비극을 만들어버렸다. 그 비극의 정점에는 유가족들의 피눈물 나는 행진에 대해 ‘순수 유가족’ 운운하며 경찰의 벽을 쌓아버린 비인간적 정부가 있었다.

잠시 대공황이 절정으로 치닫던 1932년 미국의 한 장면을 되새겨보자. 당시 후버 대통령은 나팔수들이 트럼펫으로 식사시간을 알려주고 흰 장갑을 낀 하인들이 시중을 드는 7코스 정찬을 매일 먹었다. 후버는 자신이 제왕의 풍모를 과시해주는 것이 미국인들의 사기를 진작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이렇게 열심히 밥을 먹었다.

그해 여름, 후버가 요란하게 밥 먹던 백악관 바깥의 워싱턴에는 거지 몰골의 유랑민 2만 5000명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이었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서 걸어오거나 히치하이킹이나 기차 훔쳐 타기로 워싱턴으로 몰려왔다. 굶어죽기 직전의 마지막 희망 때문이었다.

미국은 1924년, 1차 세계대전 참전병사들에게 보너스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참전 보너스의 지급 시기는 1945년으로 미뤄진 상태였다. 대공황으로 당장 굶어죽게 생긴 참전용사들은 이 보너스의 지급 시기를 당겨달라는 청원을 하려고 워싱턴에 몰려온 것이다. 그들은 워싱턴 일각에 거대한 야영지를 만들고 의회에 자신들의 급박한 처지를 호소하고자 했다. 이들은 ‘보너스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굶주림에 지친 보너스 원정대에 대한 후버 대통령의 답변은 ‘기병대 공격’이었다. 당시 사령관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었고, 부관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으며, 야전사령관은 조지패튼 소령이었다. 2차 세계대전 영웅들은 전장에서 무공을 쌓기 전에 먼저 미국 내 선배 군인들과 전투를 치렀다.

패튼의 기병대가 먼저 보너스 원정대의 중심을 향해 돌격했고, 이후 최루탄 공격을 퍼부어 강가로 내몰았다. 호전적 군인 맥아더는 자신이 받은 해산 명령을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해 아예 보너스 원정대의 야영촌을 탱크로 밀어버렸다. 미국 내 예비역과 현역의 전투는 현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고, 시상자 100여명이 발생했다. 그 와중에는 최루탄 공격으로 아기 2명이 질식사한 사례도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실시된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역사적 표차로 승리했다. 루스벨트의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자, 보너스 원정대는 다시 워싱턴으로 몰려들었다. 루스벨트의 아내 엘리너는 거리에서 식탁을 차리고 그들에게 커피를 타주며 그들의 사연을 들어줬다.

보너스 원정대의 한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 “후버는 군대를 보냈고, 루스벨트는 아내를 보냈다” 우리 정부는 슬픔에 지친 국민들에게 누구를 보냈는가? 80여 년 전의 역사가 다시 한 번 비극으로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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