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승주 동북아정치경제연구소장의 경제이야기⑨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경제공약은 ‘경제민주화’였다. 그리고 집권 1년차인 지금 경제정책의 중심에는 ‘규제완화’가 있다. 이 두 가지 구호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국민들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국가에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다. 국가는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나올 수 있는 정책은 크게 두 가지밖에 없다. 금리정책과 재정정책이다.

경제가 침체국면일 때는 금리를 인하하고, 적자재정을 편성하는 대책을 내놓는다. 경제가 과열국면일 때는 반대로 금리를 올리고 재정을 흑자로 편성한다. 매우 간단해 보이는 해법이지만, 사실 이것만큼 효과적인 대책은 없다는 것이 지난 100여년간 인류가 경험해온 역사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 정부는 이 두 가지 대책을 쓰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점이다. 분명 내수경기는 침체일로에 있고, 어떤 식이든 정부가 경기활성화대책을 내놓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금리는 이미 3%대 미만까지 떨어져있어 더 이상 낮출 여지가 매우 적다. 여기에다 지난 정부가 자기파괴적인 재정정책을 쓰는 바람에 더 이상 재정을 동원할 여유도 없는 형편이다. 정부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두 가지 무기가 무력화됐으니, 남은 것은 보조적으로 쓰이는 대책이라도 내놓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규제완화와 경제민주화다.

이 두 가지 대책은 특별히 정부가 돈을 들이지 않는다는 점과, 이를 통해 투자를 활성화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규제완화 정책은 돈 한 푼 들지 않는 경기활성화대책’이라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정부가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하고 완화하는 데 특별히 돈이 들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꼭 불합리한 규제인가의 문제이고, 규제를 완화하면 정말로 경기가 회복되느냐의 문제이다.

함부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는 지금 진도 앞바다의 비극에서 너무나 절실하게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선박의 운용연수를 20년으로 제한한다는 규제, 구명정 등의 안전 확보를 위한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규제, 선박의 구조변경이나 과적을 제대로 감시해야한다는 규제가 완화됐을 때, 우리는 비용을 따질 수조차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전 국민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물론 관료이기주의에 의한 그야말로 형식적인 규제들도 많이 있고, 이런 규제가 기업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는 반성은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이런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겠다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정부가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했을 때 우리는 기업 활동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이를 통해 더 많은 투자와 생산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도 있다. 즉, 규제완화 정책이란 정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었던 투자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는 정책이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는 무엇인가? 독과점 대기업의 불공정한 행동 때문에 시장 경쟁이 무너지는 사태를 막겠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생산자와 소비자, 기업가와 노동자가 공정하게 경쟁함으로써 시장이 제대로 역할을 하게 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인 것이다. 규제완화가 정부의 불합리를 없애겠다는 것이라면, 경제민주화는 시장의 불공정을 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자 이제 판단을 내려 보자. 어차피 전통적인 금리정책이나 재정정책은 쓰기 곤란하니, 정부나 시장에 존재하는 각종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것이 최선인 상황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힘겨운 것이 공무원들의 간섭 때문인가? 이 질문에 진지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어야만 규제완화를 소리치는 정부의 입장이 정당화될 수 있다. 최소한 이 질문을 던지는 나로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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