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 연구용역, 규제완화정책 뒷받침
“경쟁 제한적 지자체 조례 폐지‧ 개선해야”
안행부, 지자체 규제개혁추진단 설치 지시

박근혜 정부가 올해 2월 25일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한 뒤, 규제 완화를 바탕으로 경제민주화 역주행이 가속화되는 동시에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울ㆍ인천ㆍ부산ㆍ대구ㆍ광주 등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정부정책 목표로 ‘도소매와 음식ㆍ숙박 등 생계형 서비스업종의 퇴출전략’을 추진해야한다고 발표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생계형 자영업자 퇴출전략을 발표한 후, 정부의 친(親)재벌 행보는 지난 3월 27일 열린 유통산업포럼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 포럼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현행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과도하다고 주장했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법제화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지난 시기 제도화한 중소상인 보호 정책이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그 후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역주행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안전행정부를 통해 더욱 가속화, 전면화하고 있다.

공정거래위는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지자체(광역ㆍ기초)의 경쟁 제한적 조례ㆍ규칙 등에 관한 실태 파악과 개선방안 연구용역(이하 연구용역)’을 실시한 결과, 경제민주화의 시금석으로 불린 중소상인 보호정책이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 완화 대상이며, 사회적기업 육성 정책, 여성기업 지원 정책 등도 이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안행부는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의 연구용역 결과를 지자체로 확산하기로 하고, 광역시ㆍ도와 시ㆍ군ㆍ구에 규제 완화 전담부서인 ‘규제개혁추진단’을 설치하고 그 결과를 4월 4일까지 보고하라는 지침을 3월 19일 내렸다.

안행부는 광역시ㆍ도의 경우 경제 관련 주무과에, 시ㆍ군ㆍ구는 경제부서에 규제개혁 업무 전담 태스크포스(TF)팀을 3월 31일까지 구성해 관련 업무를 우선 수행하라고 지시했으며, 올해 상반기 중으로 자치법규를 개정해 전담 부서를 설치하라고 했다.

아울러 광역시ㆍ도는 경제 관련 부시장ㆍ부지사 직속으로 과장급(4급 또는 5급)을 단장으로 하는 규제개혁추진단(5명, 1년 한시)을 신설하고, 시ㆍ군ㆍ구는 부단체장 직속으로 6급을 단장으로 하는 규제개혁추진단(4명, 1년 한시)을 신설하라고 했다.

공정거래위, “조례가 국가경쟁력을 상실시켜”

 
공정거래위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은 지난해 2/4분기부터 4/4분기까지 지자체에 ‘경쟁 제한적 자치법규 개선 실적’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고, 이를 토대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이 연구용역의 최종보고서를 보면, 건설 산업ㆍ상생협력ㆍ유통산업발전법 규제 등을 직접적인 경쟁 제한 규제로 지목했다. 또한 경제민주화와 녹색성장 등으로 인해 간접적인 방식의 경쟁 제한이 여전히 많다고 했다.

공정거래위는 이 최종보고서에서 “지역산업(건설업) 발전 지원, 특정 계층(여성기업인ㆍ사회적기업) 지원, 특정 단체(협동조합) 지원, 특정 사업(전략산업ㆍ친환경농업ㆍ녹색산업) 지원 등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단기적으로는 해당 정책 대상에 혜택을 줘 효과를 거둘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수혜 업체에 스스로 시장경쟁력을 제고할 요인을 빼앗고, 비수혜 업체에는 시장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점하게 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상실시키는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공정거래위는 지자체가 제정한 경제민주화 내지 사회적 경제 육성 조례를 폐지 또는 개선해야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대구시 소상인 지원 및 유통업 상생협력 조례’ 등 기초단체들이 ‘유통재벌 입점과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일 지정으로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조례가 진입을 제한한다’며 폐지 대상으로 지목했다.

‘서울시 유통업 상생협력 및 소상공인 지원과 유통분쟁에 관한 조례’ 역시 판매품목을 제한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대기업의 경제활동을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규제라며 폐지 대상으로 지목했다.

‘서울시 사회적기업 육성에 관한 조례’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이 시장경쟁에서 결정적인 불균형을 초래한다며 개선 대상으로, ‘전남 협동조합 육성에 관한 조례’ 또한 시장경쟁을 왜곡한다며 개선 대상으로 지목했다.

‘경기도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조례’ 역시 시장경쟁을 왜곡하고 기업 간 공정거래를 규정하는 상위법에 위배한다며 개선 대상으로 지목했다. 경기와 충남의 ‘친환경농업 육성 조례’ 또한 개선 대상에 포함했다.

대구 ‘로컬푸드 활성화에 관한 조례’는 지역 농식품 생산자를 우대하는 경쟁제한 규정이라 폐지 대상이고, 안동시 ‘친환경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는 친환경농산물을 우선 공급하는 것은 소비선택권을 제한하고 영세한 농업인을 열악한 지위로 격하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며 폐지대상으로 지목됐다.

뒤늦게 “사회적경제와 중소상공인은 지원 대상”

안행부가 일선 지자체에 규제개혁추진단을 신설하라는 지침을 내리기 전, 공정거래위는 이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를 바탕으로 지난 3월 12일 광역시ㆍ도와 시ㆍ군ㆍ구에 ‘경쟁 제한적 자치법규 개선을 위한 업무 설명회’ 참석을 요청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회적 경제 분야와 중소상공인, 여성ㆍ장애인 등을 중심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공정거래위는 뒤늦게 사태수습에 나섰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4월 8일 세종시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사회적 경제 분야와 중소기업ㆍ소상공인 등에 대한 지원 관련 조례들은 애초 규제 완화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이라며 “사회적 경제 분야와 중소기업ㆍ소상공인 등은 경쟁 촉진 대상이 아니라 지원으로 경쟁력을 높여 공정경쟁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같은 날 공정거래위는 “사회적 경제 분야와 중소기업 등 사회적 약자 지원 내용을 폐지ㆍ개선 대상에 포함하기로 결정하거나 지자체에 폐지를 압박하지 않았다. 사회적 경제 육성과 사회적 약자 지원 관련 규제는 대부분 상위 법령에 근거가 있고 그동안 사회적 합의를 거쳐 도입된 만큼, 상위 법령이나 해당 조례의 폐지ㆍ개선 여부는 지자체(이해 당사자, 주민 포함), 안행부와 총리실 등 관계 부처와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처 신중하게 결정할 사항”이라는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공정거래위가 사실상 잘못을 시인하고 한 발 물러난 셈이다. 논란 끝에 공정거래위는 상위법에 근거가 있는 조례는 이번 규제 완화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는 14일 인천시청에서 진행하기로 한 ‘경쟁 제한적 자치법규 개선을 위한 업무 설명회’를 앞두고 지난 11일 인천시에 공문을 보내 “사회적 기업ㆍ협동조합에 대한 지원이나 장애인ㆍ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등 경제ㆍ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지자체 조례ㆍ규칙은 개선 권고대상이 아니다”라고 한 뒤, 14일 개선대상 과제를 합의ㆍ선정할 때도 규제완화 대상에서 제외할 계획임을 밝혔다.

전통시장ㆍ골목상권 지키기 인천비상대책협의회는 “정부의 생계형 자영업자 퇴출 전략과 친(親)재벌ㆍ반(反)경제민주화 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이번 공정거래위의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공정위의 조치가 비판 목소리를 잠시 잠재우기 위한 것이거나 6.4지방선거에서 표를 의식한 꼼수라면 더욱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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