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숙 시민기자의 교실이야기 ⑪

몇 해 전에 우리 학교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흔히 ‘분노조절장애’라 부르더군요.

그 아이는 화가 나면 의자를 발로 차고 책상을 뒤엎었습니다. 교사고 학생이고 상관없이 소리 지르며 달려들었죠. 그 아이가 화가 나서 날뛰면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안든 그 광경을 봐야했습니다. “아빠한테 연락한다”라는 말만이 유일하게 그 아이를 멈추게 할 수 있었죠.

교사들이 모여 제비뽑기로 한 해 동안 가르칠 반을 뽑는데 그 아이가 속해 있는 반을 어떤 여교사가 뽑았어요. 남교사가 “괜찮겠냐?”고 물었고, 그 교사는 “괜찮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교사에게 아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한 해를 보냈죠.

그 여교사는 말했어요. “이미 그 아이는 무서운 아빠나 무서운 남자 선생님을 많이 겪어봤고, 더 이상 힘으로 아이를 통제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은 말했죠. “다른 아이들이 걱정이에요. 그 아이가 화가 나서 날뛰면 반 아이들이 그 모습을 다 보잖아요. 애들 눈에 공포가 가득하더군요.

특히 여자 아이들이요” 이어서 “그 아이가 화가 났을 때 누가 우리 교실을 봐주든가 아니면 그 아이를 데리고 있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어요. 그 여교사는 아이가 화가 나면 얼른 데리고 나와서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옆에서 함께 있어주면서 아이 마음을 다독여줬는데, 그러자니 한두 번도 아니고 아이가 금방 마음이 가라앉는 것도 아니어서 여러 가지로 곤란했지요.

 
쉬는 시간 교사가 그 아이와 복도에서 함께 서 있는 모습, 수업이 끝나면 교사가 교실에서 그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자주 봤죠. 그렇게 한 해가 지났습니다. 다른 교사들은 “그 아이에게 좀 더 무섭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종종했지만, 그 교사는 끝까지 아이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그 학년을 끝내고 봄방학에 그 교사와 밥을 먹었습니다.

그 즈음 교사 힐링(healing) 연수가 생겼는데, 그 교사는 그 연수에서 한 작업 한 가지를 이야기해주더군요. 올 한해 자기를 가장 힘들게 한 아이에 대해서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어보라고 강사가 얘기했대요. 교사는 그 아이에 대해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다 적었더니, 강사가 한 문장만 남기고 다 지워보라고 했다는군요. 교사는 이것저것 지우고 남은 문장 하나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했어요. 남은 한 문장은 ‘그 아이가 의자를 집어던졌다’였던 겁니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해요. ‘아! 그 당시 나도 몰랐지만 나도 그 아이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했구나’라고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아이들에게 종종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편안하게 인정했습니다. 무척 감사한 일이에요. 사실 교사가 남들 앞에서 어떤 아이가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결코 쉽진 않습니다. 어쨌든 아이들은 교사보다 어리고, 교사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교사가 아이들을 두려워하는 건 마치 교사가 아이를 제대로 교육할 수 없다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두려운데 두려운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큰 힘을 써서 그 상황을 제압하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파리를 잡는데 파리채가 아닌 화염방사기를 뿌려서 잡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 결국 교사도 아이도 상처받게 되더군요.

그러고 보니 6학년 도덕과목 전담교사를 할 때였는데 어떤 반에 수업을 들어가니, 여자 아이 몇몇이 귓속말을 하다가 날 쳐다보다가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웃다가 내가 쳐다보면 헛기침을 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른 척을 하고, 다시 날 쳐다보며 웃고 그러더군요. 너무 화가 났는데 그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수업을 어떻게 끝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분노와 두려움으로 얼어버려 수업 종이 치자마자 교실 밖으로 뛰쳐나와 혼자 연구실에 앉아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한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는 담임교사를 찾아가 “그 아이들 그냥 놔두면 안 된다” “학부모 면담을 해야 한다” “교권침해고 수업권 방해다” 하며 난리를 치긴 했지만 돌아보니 결국 난 그 아이들에게 아무런 의사표현도 하지 못했고 그 아이들 부모에게 연락하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과 맞서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 비슷한 느낌은 고학년을 맡으면 어쩔 수 없이 늘 따라다닙니다. 친구들에게 힘을 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늘 있고 때로는 그 힘을 공개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과시하기 위해 교사를 대상으로 ‘힘겨루기 게임’을 걸어오는 아이도 있지요.

어떤 여자아이들은 지능적인 이중생활로 힘을 씁니다. 교사 앞에서나 교실 안에서는 딱 혼나지 않을 만큼, 튀지 않을 만큼 자기 할 일을 하지만 교사가 없는 그 어딘가에서는 대장노릇을 하며 은근히 친구들을 힘들게 하면서 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아이들이 내 눈에 보이고, 그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보이고, 교실 분위기가 편치 않음을 느낍니다. 올해도 역시나 아이들과 한 달을 지내고나니 그런 흐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반가운 변화는 친구들 안에서 힘을 쓰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그래. 너는 어디 가서 휘어잡고 휘두르며 살면 살았지 남에게 휘둘리며 살진 않겠구나. 늘 착한 아이로 살아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아이들보다는 이 험한 세상 잘 헤치며 살겠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깐, 몇몇 아이가 그 아이로 인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오면서 다시 예전에 느낀 그 긴장감과 두려움이 나를 휘감습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진작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을 텐데 이 아이를 내 앞으로 불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아이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도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아이도 나와 반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마음을 먹어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상처 받을까봐 두려우면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고 했나요. 그 아이에게 상처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나를 봅니다. 두려움에 휩싸이면 나를 보호하느라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품을 수 없습니다. 품지 못하면 늘 아이와 나는 피곤한 신경전으로 서로 상처주고 상처 받으며 한 해를 보내겠지요.

그 아이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네가 아무렇지 않게 한 행동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좀 보렴. 난 평화로운 교실을 원해. 네가 힘을 쓰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도 너에게 상처받을까봐 널 밀어내기보다는 네가 얼마나 괜찮은 아이인지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

아이든 어른이든 힘을 쓰려는 사람과 평화로운 방식으로 맞서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시 도전합니다. 평화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닫습니다. 모두 마음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교실을 위해서 다시 내가 갖고 있는 두려움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어 맞서봅니다.

※구자숙 시민기자는 인천대정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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