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 여행 34. 전남 담양

▲ 죽녹원.
2월 26일부터 27일까지 1박2일로 전라남도 담양을 다녀왔다. 인천에서 담양 가는 길은 좀 멀어서 그렇지 별로 어려울 건 없다. 서해안을 타고 고창까지 내려간 후, 고창~담양고속도로로 갈아타면 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미세먼지가 최악이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먼지를 피할 수도 없고, 달아날 수도 없으니 참으로 큰일이다. 담양에 도착하니 그나마 비가 내려 다행이었다. 담양은 대통밥ㆍ떡갈비ㆍ죽순요리ㆍ창평 국밥 등이 유명하다. 점심을 먹고 먼저 소쇄원으로 갔다.

평생 보고 싶었던 곳을 오십 중반이 넘어서야 왔다. 그것도 온전한 여행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목적 때문에 왔으니, 땅과의 인연도 때가 있는 모양이다. 비는 추적추적 내렸지만 소쇄원 입구에서 따뜻한 장면을 목격했다. 대통에 찐 달걀을 파는데 무인판매다. 무인판매까지는 흔한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1000원짜리 몇 장이 비에 젖고 있었다. 잔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갖다 놓은 거스름돈이었다. 아, 우리 사회가 이 정도만이라도 서로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맑고 깨끗한 정원, 소쇄원

▲ 소쇄원.
소쇄원 입장료가 1000원으로 돼있는데 500원만 받았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의 날’이라 반값으로 할인해준단다. 대숲을 지나니 소쇄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앉아서 봉황을 기다린다는 대봉대 누각을 지나니 계곡이 나오는데 매우 특이하게도 계곡 위로 담장을 쌓았다. 어떻게 냇물 위로 담을 쌓을 생각을 했을까? 처음 보는 장면이다. 이름은 오곡문. 역시 소쇄원이다. 흐린 날이 밝아진 후 달이 뜬다는 제월당이 있고, 제월당 밑으로 사랑방 구실을 하는, 햇볕과 바람이 어우러진 광풍각이 있다.

광풍각 추녀 위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진다. 소쇄원의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 사진작가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식 정원’으로 꼽는 곳이다. 양산보가,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조성한 곳이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으로, 창경궁 후원,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정원 곳곳에 심어 놓은 복숭아나무와 배롱나무 따위가 싹을 틔우고 있다. 머지않아 봄이 되면 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가사문학관, 그리고 송순과 정철

소쇄원에서 담양 시내 쪽으로 되짚어 나오니 길가에 가사문학관이 있다. 담양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가사문학의 유적과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담양은 조선 중기부터 20세기까지 600여 년 동안 가사문학이 융성했던 곳이라 ‘한국 가사문학의 산실’로 불리는데, 가사문학의 전승과 보존, 현대적 계승을 위해 2000년에 개관했다. 가사문학 자료와 송순의 면앙집, 정철의 송강집과 친필 유물들을 전시해놓았다.

정철의 연보를 보다가 그가 강화에서 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눈에 띄었다. 정철은 문인이면서 정치가였다. 그래서 당쟁의 한복판에서 일생 동안 부침을 거듭한 이였다. 그가 강화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다.

자료를 찾아보니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의 송정촌에 우거하다가 58세로 별세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이듬해인 1593년 허름한 농가에서 한 달 남짓 끼니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한때 세상을 호령한 그가 아무 연고도 없는 강화도에서 영양실조로 홀로 죽어갔다니 참으로 권력무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강화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가사문학관 바로 왼쪽 언덕 위에 식영정이 있다.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정자 이름은 그대로 시(詩)다.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쓴 곳이다. 서하당 김성원이 창건해 장인 석천 임억령에게 선물한 건물이라고 한다. 방에 불을 땠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명옥헌과 송강정, 그리고 면앙정

▲ 명옥헌 원림.
명옥헌 원림으로 갔다. 명옥헌 입구의 찻집 벽에 백일홍 사진을 붙여놓았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명옥헌은 오희도ㆍ오이정 부자의 별장 터다. 정자 앞에는 사각형 모양의 위 연못과 사다리꼴 모양의 아래 연못을 만들었다. 명옥헌은 주변에 심은 백일홍나무 수십 그루로 유명한데 여름철이면 나무 이름 그대로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 오래 된 배롱나무의 모습이 기괴하다.

송강정으로 갔다. 정철이 그 유명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은 곳이다. 원래는 죽사정이었는데 정철이 자신의 호를 따 송강정으로 이름을 바꿨다. 1584년 조정에서 물러났을 때 창평으로 내려와 4년 동안 야인생활을 했는데, 이때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썼다. 사실 두 내용도 매우 정치적이다. 선조에게 자신을 서울로 다시 빨리 불러달라는 하소연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서인의 영수였는데 그에 대한 평가도 당파에 따라 정반대다. 서인 쪽에서는 ‘평소 지닌 품격이 소탈하고 대범하며 타고난 성품이 맑고 밝으며, 집에 있을 때에는 효제하고 조정에 벼슬할 때에는 결백하였으니, 마땅히 옛사람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동인 쪽에서는 ‘성품이 편협하고 말이 망령되고 행동이 경망하고 농담과 해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원망을 자초하였다’고 평했다. 선조도 ‘악독한 정철’이라고 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정치란 참으로 비정한 것이다.

다음 코스는 면앙정. 송순이 ‘면앙정가’를 지은 곳이다. 송순이 만년에 그의 고향 담양으로 내려와 면앙정을 짓고 이곳에서 이황 등과 교유했다. 기대승ㆍ고경명ㆍ임제ㆍ정철 등이 그의 제자다.

‘무등산 한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 이어 멀리 떨치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없이 넓은 벌판에 무슨 생각 하느라고 일곱 굽이가 한 곳에 움츠려 우뚝우뚝 벌여 놓은 듯하고,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어놓은 듯하니 너럭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혔으니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펼쳤는 듯’

아무런 감흥 없이 ‘면앙정가’를 30년이나 가르쳤는데, 이제 비로소 면앙정을 보았으니 앞으로는 약간은 다르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죽녹원과 새로운 인연

▲ 죽녹원.
죽녹원으로 갔다. 담양군에서 대밭을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한 대숲이다. 운수대통길을 비롯해 죽마고우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추억의 샛길 등 산책로 8개로 이루어져 있다. 산책로를 모두 이으면 2㎞가 넘는다.

거의 문을 닫을 시간이라 빨리 보고 나가려고 했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해설사 전아무개 선생이 굳이 부스 밖으로 나와 해설을 자청했다.

대나무는 빨리 자라고, 먹을 수도 있고, 대나무로 못 만드는 것이 없고…. 그의 해설을 들으니 대나무야말로 우리의 미래였다. 삼림욕보다 죽림욕이 건강에 더 좋다고 한다. 군데군데 대나무 밑으로 차나무가 있다.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차나무, 바로 죽로차다. 죽녹원은 영화 ‘알포인트’의 촬영지이기도 하고, 내년에 세계 대나무 박람회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가 인천의 한 고등학교 출신이란 걸 알았고, 더구나 홍천 힐리언스에서 구입한 대나무 안마봉의 제작자라는 것도 알았다. ‘두드리면 낫는 대나무봉 건강법’을 지은 전중찬 선생의 딸이다.

전 선생과 헤어져 죽녹원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예약한 담양슬로시티의 ‘한옥에서’라는 숙소로 갔다. 그런데 전 선생에게서 숙소로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두어 시간 후에 부부가 함께 숙소로 왔다. 내 아내가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계속 마음에 걸려서 왔단다. 대나무 안마봉으로 온몸에 지압을 해줬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깜깜한 밤에 차를 몰고 와, 아무 대가도 없이 긴 시간 동안 안마치료를 해주니, 참으로 황송한 일이다. 소중한 인연이 생겼으니, 담양은 더 이상 낯선 동네가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크게 배웠다. 자신을 낮추고 남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남에게 먼저 한 발 다가가는 것. 그게 좋은 인연의 시작이다.

삼지내마을과 관방제림

▲ 관방제림.
아침을 죽으로 간단히 먹고 동네 구경을 나섰다. 담양슬로시티로 조성된 삼지내마을은 3km가 넘는 돌담길과 돌담을 따라 흐르는 냇물이 정겨운 창평 고씨 집성촌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고정주 고택을 비롯해 고재선 가옥, 고재환 가옥 등 1900년대 초에 건축된 한옥 20여 채가 모여 있다. 월봉천ㆍ운암천ㆍ유천이 마을 아래에서 모인다고 해서 삼지내라고 한다.

민박집을 나와 담양 시내에서 전날 못 본 곳들을 둘러봤다. 관방제림으로 갔다. 조선시대에 홍수를 막기 위해 담양천에 둑을 쌓으면서 조성한 방풍림이다. 제방에 느티나무ㆍ푸조나무ㆍ팽나무ㆍ서어나무 등을 심었는데 대부분 수령 200년이 넘었다. 제방의 길이만 2㎞가 넘는다. 둑길 끝에 죽기 전에 꼭 걸어봐야 할, 한국의 아름다운 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연결돼있다. 빨리 둘러보겠다고 관광용 자전거를 빌렸는데, 그 자전거가 그렇게 힘든 건지 처음 알았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1970년대 초 가로수 조성 사업 때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어 가꾸면서 조성됐다. 길의 유래가 재미있다. 원래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할 메타세쿼이아 묘목이 담양으로 잘못 실려 왔다. 그걸 되돌려 보내지 않고 24번국도 8km쯤에 1500여 그루를 심었다. 그게 세월이 지나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한번은 24번국도 폭 확장공사로 이 길이 사라질 뻔했는데 군민들이 노선을 변경시키는 노력으로 살아남았다. 2011년에는 포장을 걷어내고 흙을 깔았고, 2012년부터는 입장료를 받아 담양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 나온 후 완전히 떴다.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식물로 불리는 신생대 나무인데 지구상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이 나무가 1941년 중국에서 발견된 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세쿼이아는 원래 체로키인디안 부족의 영웅 이름이다. 이 나무가 1년에 1m씩 쑥쑥 잘 자란다고 해서 메타세쿼이아라고 했다.

담양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담양온천으로 갔다. 노천탕도 있고, 시설이 몹시 좋다. 다녀본 국내 온천 중 아마도 제일 좋은 곳 같다. 담양 관광지 입장권이 있는 사람은 30% 할인해 준다.

글ㆍ사진 /신현수 (시인ㆍ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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