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근대건축전시관과 인천개항박물관

인구 10만의 조용한 도시, 인천 중구

올 하반기 인구 300만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는 인천은 서울과 부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부산은 인구 감소 현상을 보이는 반면, 인천은 지속적으로 증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넘버(number) 투(two)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나온 경인지방통계청 인천사무소 자료를 보면, 송도ㆍ청라ㆍ영종 등 인천경제자유구역 국제도시에 인구가 유입됐고, 서구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로 인구가 증가했다. 반면, 다른 구의 경우 인구가 감소했다.

그러나 통계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원도심에서 꾸준하게 인구가 증가한 곳이 한 곳 있다. 바로 중구다. 특히 중구는 근대문화의 메카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중구는 인천의 뿌리로서 자존심이 꼿꼿하게 서려있는 곳이다. 그 자존심의 이면에는 과거 개항으로 인한 상처와 성장의 흔적이 선명하다.

중구의 매력과 개항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중구 문화예술과에서 일하는 견수찬(46ㆍ사진) 학예사의 덕분이다. 그와의 만남은 다소 낯설었지만 진지했다.

개항, 단지 항구를 연 것이 아니다

▲ 견수찬 학예사.
“개항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어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경제ㆍ사회ㆍ문화적으로 급변하게 한 사건을 우리 체질에 맞게 소화해야한다는 입장이고요, 다른 하나는 외세에 의한 개항의 결과 식민지로 전락했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견해예요”

견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니 개항이란 단순히 항구가 열려 배가 드나들었다는 의미 이상을 함축하고 있다.

“오늘날 외국과 교류는 일상적이지만 1883년 개항은 질적으로 달라요. 주요 항구 중에 인천을 가장 늦게 열었어요. 인천의 개항은 수도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거든요. 그래서 1883년 이후 독특한 문화가 형성됩니다”

개인적 평가와는 별개로 개항은 역사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해봐야하는지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박물관의 역할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천시는 2003년부터 인천의 우수한 전통‧관광 자원을 알리기 위해 테마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시는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건축물을 활용해 건물이 상징하는 역사성을 표현한 ‘작은 박물관’을 기획했다. 시민들에게 지역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외래 관광객들에게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중구에서는 인천시유형문화제 제50호로 지정된 구(舊) 일본제18은행을 근대건축전시관으로 바꿔 2006년에 문을 열었다. 연이어 인천시유형문화제 제7호로 지정된 구(舊) 일본제1은행도 개항박물관으로 2010년 개관했다. 근대건축전시관 홈페이지에는 ‘일본이 한국의 금융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계획해 세운 은행이었다’고 쓰여 있다.

근대의 역사문화가 숨 쉬는 곳, 인천개항장

▲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내부 모습.
“그 외에도 중구에는 개항 당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 중구청 건물 터도 일본영사관이 있던 곳이고요.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 터도 남아있고, 그 당시 상류층들이 여흥을 즐긴 구락부와 100년이 넘은 중국과 일본식 건물들도 잘 보존돼 있죠. 만국공원이라 불린 자유공원과도 연결돼있고요”

월미도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을 걷다보면 100년 이상의 시ㆍ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 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은 각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 건물들의 역사적 가치를 결코 축소할 수 없다.

“아직 많은 시민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홍보하고 있지만 워낙 박물관들의 규모가 크지 않고 구도심이어서 어려움이 있어요”

시민들의 주거지에서 꽤 떨어져있기 때문에 일부러 나와야한다. 외국의 경우 전시장이나 박물관을 약속 장소로 선택해 자연스럽게 문화를 접할 수 있지만, 이곳은 그러기엔 한계가 있다.

근대건축전시관에는 개항 당시 중구의 모습을 담은 건축물들의 모형과 관련 자료들이 있으며, 개항박물관에는 개항 후 인천항을 통해 소개된 근대 문물이 전시돼 있다.

“문화탐방코스를 만들었어요. 관광객들이 예약하면 문화관광해설사들이 함께 다니면서 안내하고 의미도 설명하는 프로그램인데, 가족단위로 많이 신청하죠”

가장 많은 방문객은 현장체험학습을 온 학생들이다. 교사가 먼저 보고 괜찮다고 판단한 후 학생들과 함께 오는데,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도 많이 온다.

역사적 의미가 있거나 가치를 가진 문화자원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2000년부터 문화지구제도를 뒀다. 현재까지 인사동ㆍ대학로ㆍ파주 헤이리ㆍ인천개항장 등 4개 지역이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인천의 경우 2010년 지정돼, 오래된 근대건축물을 개·보수하는 데 경관개선보조금이 지원되거나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권장업종을 하게 되면 저리 융자를 알선해 주기도 한다.

이분법적 사고, 경계해야

▲ 근대건축전시관.
“개항을 안 했으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해피엔딩이었을까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도 해봐요. 그 시기는 서구 열강들이 총포로 무장하고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세계를 휘젓던 시절이었죠. 식민지가 된 나라도 있고, 능동적으로 개화한 나라도 있고요”

견 학예사는 결과가 비극적이었다고 과정 자체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식민지로 전락한 결과로 인해 이전의 모든 과정이 그걸 위한 예비 음모라 보는 것도 과하다고 했다.

최원식 인하대 국문과 교수도 개항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접근방법을 경계해야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근대건축전시관이 생긴 지 10년이고 개항박물관이 개관한 지 4년밖에 안 됐어요. 아직 연륜이 짧죠. 오랜 기간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하고 여러분들의 관심도 필요합니다. 자꾸 관심을 갖고 찾아와 조언해줘야 투자도 하고 발전시킬 힘을 얻습니다”

이 땅이, 건물이 겪어온 역사이자 흔적

개항 이후 인천에는 서구 열강들의 조계지들이 세워졌고, 그 흔적이 중구 곳곳에 근대건축물로 남아있다.
견 학예사는 물었다.

“과연 그것(=근대 건축물)들이 이른바 얘기하는 제국주의 침략 목적만 있나요? 동원하고 사용한 게 사실이니까 일부분은 맞는 얘기죠.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이 땅이, 그 건물이 겪어온 역사이고 흔적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봐요”

남아있는 건축물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항기에는 독특한 외래문화로,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민족을 압살하는 공간으로, 해방 후에는 공공기관으로 사용되다가 민간인에 의해 상점으로 개업하기도 했던 130년의 세월의 근대 건축물들.

“중구는 박물관 외에도 근대 역사문화를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이 많아요. 오셔서 보신다면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 이상의 뭔가를 마음속에 남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 바로 인천개항장입니다. 100여 년 전 새로운 도시로 변모하는 시기의 인천을 느껴보세요. 오늘날 인천의 뿌리는 중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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