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제자문회의, 도소매와 음식·숙박 등 생계형 서비스업 퇴출전략 추진

▲ 2013년 12월 19일 부산에서 열린 ‘서비스업 글로벌화 전략’ 세미나 <사진출처ㆍ국민경제자문회의>
2008년 3월 11일, ‘대형마트 규제와 중소상인 육성을 위한 인천지역대책위원회’는 국회 정론관에서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600만 입법 청원운동’을 선포하고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전국대책위’ 구성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 이후 상인들이 모여 단체를 결성했고, 선거 때 정당과 정책협약을 맺는가하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무분별한 입점에 맞서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하고, 중소상인 보호 법안 입법투쟁을 전개했다.

2006년 카드수수료율 인하운동과 2007년 대형마트 입점 반대운동에서 촉발한 상인운동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과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법)’ 개정운동으로 이어졌고, 2008년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제민주화를 국민적 담론으로 이끌어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다.

상인운동이 출발한 지 6년이 지나 다시 ‘상공의 날(3월 19일)’이 찾아왔다. 중소상인들은 살림살이가 나아졌을까?

중소상인들의 입법투쟁은 나름의 성과를 냈다.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돼 대형마트 등의 의무휴일제가 시행됐고, 사업조정이 제도화됐다. 상생법 개정으로 전통시장 보호구역에 대형마트 등이 입점하는 것을 제한했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요구는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 같은 법률 개정과 제도 도입은 중소상인을 보호하기에 역부족이었다. 2013년 남양유업 밀어내기 사태와 편의점 가맹점주의 잇단 자살, 배상면주가 점주 자살로 수면 아래에 있던 ‘갑ㆍ을’ 모순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린 ‘남양유업방지법(=대리점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국회에 상정조차 안 됐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통과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5개다.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프랜차이즈법(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금산분리 강화법(금융지주회사법ㆍ은행법) 일부 개정안 ▲하도급법(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상가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안 ▲상생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의 경우 독소조항이 신설됐고, 경제민주화 8대 입법과제 중 통과된 3개 법안도 일부만 개정돼, 중소상인들은 ‘무늬만 경제민주화’라고 비판했다.

대형마트 더 늘고, SSM은 전통시장에 버젓이 진출

▲ 국민경제자문회의 홈페이지에 공개돼있는 자료 중 일부.
‘대리점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대형마트를 허가제로 전환하자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 ‘지분 51% 이상을 가맹점주가 보유하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사업조정 ‘권고’를 ‘명령’으로 격상하자는 상생법 개정도 답보상태다.

또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위한 동반성장위는 위원 구성에서 재벌 몫이 90%라 사실상 대기업 영향력 아래에 있으며, ‘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정 또한 진척이 없다. 여기까지였다. 경제민주화는 정부 정책에서 사라졌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박완주 국회의원이 올해 1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한창이던 2012년 12월에 대형마트 27개가 개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27개 중 5개가 지난해 개장했고, 올해 22개가 개장할 예정이다. 2012년 12월은 정부 주도로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해 발족한 유통산업발전협의회가 본격 운영되던 때다.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변종 SSM’으로 불리는 상품취급점(=옛 상품공급점)의 출점도 크게 늘었다. 이마트의 에브리데이리테일은 지난해 11월 30일 현재 351개로 가장 많았고, 롯데슈퍼(54개), 홈플러스익스프레스(9개), GS슈퍼(4개)가 그 뒤를 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상품취급점 199개가 전통상업 보존구역 안에 있다는 점이다. 에브리데이리테일 179개, 롯데슈퍼 17개, 홈플러스익스프레스 2개, GS슈퍼 1개가 전통상업 보존구역 안에서 영업하고 있다. 상생법이 무용지물인 셈이다.

정부 생계형 자영업자 퇴출 추진에, 중소상인들 분노

경제민주화는 사라지고, 유통재벌은 출점을 늘리고 있으며, 관련 법안은 답보상태에 있는 가운데,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생계형 자영업자 퇴출 추진을 정책 목표로 제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중소상인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할 때, 해당 계획의 기초를 닦은 기구로, ‘대통령을 도와 국민의 행복과 경제발전을 위한 주요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헌법기관’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의장은 대통령이고,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이 당연직 위원이다. 또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장 등이 지명위원으로 위촉돼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사실상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이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정부 정책 목표로 ‘도소매와 음식숙박 등 생계형 서비스업종의 퇴출전략’을 추진하기로 하고,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국내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17일 인천, 19일 부산에서 그리고 올해 1월 16일 광주, 23일 대구, 24일 대전에서 ‘서비스업 글로벌화 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서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서비스경제연구부장이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 주제발표를 했으며, 해당 자료는 국민경제자문회의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돼있다.

김주훈 부장은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해 법률ㆍ의료 등 전문 서비스업종의 진입 장벽을 완화하고 도소매, 음식ㆍ숙박 등 생계형 서비스업종의 퇴출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공식 문건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도소매업과 음식ㆍ숙박업 등 생계형 서비스업종은 노동집약 서비스업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 과당경쟁을 초래하는 만큼, 이 생계형 자영업자들에 대해 퇴출전략을 추진해야한다는 것이다. 퇴출되는 과정에서 직업을 전환해야하므로 정부가 이들의 전업을 지원하면 되고, 이들에 대한 퇴출이 진행되면 과당경쟁이 해소돼 잔류하는 생계형 자영업자는 큰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주훈 부장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8일 KDI에서 주재한 제3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서비스산업 육성방안을 발표한 이 분야의 정부 쪽 실무 책임연구원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이 같은 정책목표에 대해 반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1월 열린 광주 세미나에서 김기호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 쪽 발표자들이 너무 쉽게 퇴출과 구조조정을 거론한다’고 지적하고, ‘정부가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중소 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서민들의 등을 떠밀 경우 우리 경제가 나락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중소상인들은 크게 분노했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장은 “미약하지만 제한적인 규제로 유통재벌이 골목상권과 중소상공인 생계 업종에 무분별하게 난입하는 것을 일부 업종과 지역에서 잠시 멈추게 했을 뿐”이라고 한 뒤 “벼랑 끝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 손을 잡아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벼랑으로 내몰겠다는 것으로, 박근혜 정부의 친(親)재벌 본색이 여과 없이 드러난 일이다. 중소상인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예전과 마찬가지로 중소상인을 외면하는 정치세력을 엄중하게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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