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제정 의의와 인천문화정책 개선방안 세미나] “인천 특성 살린 문화정책으로 경쟁력 갖춰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사에서 ‘문화 융성’으로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연이어 7월에 ‘문화융성위원회’가 출범하고, 10월엔 ‘문화가 있는 삶-8대 정책과제’가 발표됐다.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은 지난 20일 기자 브리핑에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 스포츠경기와 공연 등의 관람료 인하를 확대해 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가 있는 날’에는 조기 퇴근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나가겠다고 했다.

지난해 말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법안이 연거푸 제정됐다. 바로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이다. ‘문화기본법’은 3월, ‘지역문화진흥법’은 7월에 각각 시행된다.

인천발전연구원(이하 인발연) 인천도시인문학센터(센터장 김창수)는 지난 19일 ‘문화 관련법 제정과 인천 문화정책’이란 제목으로 세미나를 열었다. 법 제정 의의와 법이 향후 지역 문화정책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고 대응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관련자 20여명이 고민을 함께 나눴다.

세미나 진행을 맡은 김창수 센터장은 “지역 문화정책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올 법안이 통과됐다. 문화향유권리를 법적으로 적용한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은 8년 정도 국회에서 계류되다가 폐지된 바 있다. 역사가 파란만장하다”고 한 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문화 관련법들이 일시에 이렇게 제ㆍ개정되기는 처음이다. 문화의 르네상스 시기가 되게, 법이 살아있어 시민들이 체감하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며, 오늘이 그런 자리가 되자”며 세미나를 시작했다.

문화기본법, 문화권을 기본권으로 설정
지역문화진흥법, 지역문화 중흥 계기 마련

▲ 인천발전연구원 도시인문학센터가 주관한 ‘문화관련법 제정과 인천문화정책’ 세미나가 지난 19일 열렸다.
첫 주제발표는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이 맡았다. 그는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에 따른 문화 분야 법제 정비와 지역 문화정책에 대해 발제했다.

박 연구위원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 핵심 사항 중 ‘문화재정 2%’와 ‘문화기본법’ 제정이 있었다. 이미 수년간 논의했고 정치권에서도 법안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 국회를 쉽게 통과했다”며 문화기본법 제정 배경과 과정을 설명했다.

‘문화기본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제2조 ‘민주주의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서 문화가 갖는 중요성 인식’이라는 부분은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했다. 또한 제4조에는 자유권의 개념과 사회권의 개념을 포괄한 ‘문화권’이라는 개념을 명시해 헌법의 ‘행복추구권’처럼 ‘문화권’을 기본권의 개념으로 설정했다.

이 법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문화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국가의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법률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2001년을 ‘지역문화의 해’로 지정해 지역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그것이 ‘지역문화진흥법’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법 제정으로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법적ㆍ제도적 체계를 마련했다.

‘지역문화진흥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지역문화’의 개념을 정의해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를 규정했다. 5년 단위의 국가계획을 세우고 연도별 시ㆍ도 계획을 수립해 시행할 근거도 마련했다. 또한 ‘생활문화’를 정의하는 동시에 활성화를 위해 시설 확충과 운영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 더불어 지역문화재단 또는 지역문화예술위원회를 설립할 수 있는 법제화를 이루기도 했다.

박 연구위원은 “국민의 문화향유를 실질적으로 증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의의로 둘 수 있다”며 “문화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에 기여하게 지역의 문화자원을 잘 활용해 문화도시와 문화산업을 연결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는 문화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기본으로 하되 안정적 재원 확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를 해결해야만 문화의 진정한 자주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발제가 끝나자, 김창수 센터장은 “법 제정에 담긴 정신을 살펴보고 지역에서 향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단서를 줬다”며 “지역의 문화정책에 대한 말은 있지만 실제로 정책이 없었다. 제대로 된 계획을 갖고 집행하지 않았다. 이제는 법을 바탕으로 지역차원에서 명실상부한 문화정책을 수립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역문화정책, 향유자 중심으로 변화해야

이어 발제에 나선 손동혁 인천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은 먼저 “문화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인 지역문화진흥법이 10년 동안 논의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작년 말 갑자기 통과됐다고 했을 때 당황했다. 앞으로 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본격적으로 발제에 나선 손 본부장은 ‘두 법의 제정과 인천문화정책 개선방안’을 설명했다.

그는 문화기본법에서 주목할 점으로 제5조 2항의 ‘국가는 지자체의 문화관련 계획ㆍ시책과 자원을 존중하고’라는 부분을 꼽으며 지자체의 자율성을 국가가 존중한다고 명시한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문화관련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손 본부장은 “‘국가와 지자체는 각종 계획과 정책을 수립할 때 문화적 관점에서 국민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문화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제5조 4항의 내용이 가슴 벅차다”고 한 뒤 “인권에 기반 해 문화적 가치에 대한 관점과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토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또한 “지역문화진흥법은 결코 죽은 법이 되지 않을 것이다. 법이 없는 상황에서도 생활문화와 지역재단 등 문화현장에서는 활발하게 진행돼왔다”며 “이 법의 제정으로 더욱 탄력 받을 수 있다. 현실에 맞게 법을 더욱 정비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손 본부장도 박 연구위원이 강조한 ‘지역문화 진흥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강화’ 부분을 언급했다. 그는 “지역문화정책이 만들어진 적이 있었지만 계획을 세울 법적 근거가 없었다. 이제 법이 마련됐으니 장기ㆍ지속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법적 근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지역문화진흥법’에는 지역문화재단 또는 지역문화위원회 설립에 관한 조항이 있다. 현재 인천에는 광역시 차원에서 인천문화재단(2004년 설립), 기초지자체에선 부평구문화재단(2006년 설립)이 유일하다. 법 제정으로 지자체 차원의 문화재단이 많이 늘 것이고, 준비가 필요하다.

손 본부장은 “현재 인천문화재단은 정책적 기능 없이 사업실행을 주로 하고, 인천시가 정책을 수립한다. 앞으로는 재단이 포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문화향유자 중심으로 중요한 변화가 이뤄져야한다. 문화기본법에 근거한 문화향유자 중심의 다양한 법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에 맞게 인천시도 전반적인 조례 검토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참여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한다”고 말했다.

손 본부장은 문화재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활문화’라는 비정형적인 것에 행정이 제대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생활문화센터(=복합문화커뮤니티센터)라는 중간조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천시 생활문화 지원 조례’ 제정 필요

주제발표 후 토론이 이어졌다. 몇 년 전부터 문화단체들과 ‘인천시 생활문화 지원 조례’ 제정을 준비해왔다는 강병수 인천시의회 의원이 첫 토론자로 나섰다.

강 의원은 “오랫동안 준비한 조례라 법률적 체계는 완성했다. 법이 제정돼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지만, 6대 시의회 임기가 3개월밖에 안 남아 부담감을 느낀다”고 한 뒤 “생활체육처럼 문화도 향유해야할 영역으로 공감됐지만 그동안 조례로 만들려하니 상위법이 없었다. ‘생활문화’에 대한 정의도 없는 상태에서 법률적 근거부터 만들자니 섣부르다는 판단과 중앙정부와 발맞춰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 속에 2~3년 미뤄왔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지면서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역문화진흥법에 명시된 ‘조례로 정해 시행할 수 있다’는 조항에 근거해 조례(안)을 만들어 임기가 끝나기 전인 3월께 발의할 예정이라고 강 의원은 덧붙였다.

그는 또한 “조례 내용은 크게 총칙, 생활문화 지원, 생활문화예술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 설치ㆍ운영으로 구성됐다”며 “지금까지 논의한 것을 근거로 해 만들었는데 법률과 배치되지 않은지, 박 연구위원께 묻고 싶다”고 했다.

이 조례안의 ‘생활문화 지원’에선 지원의 폭을 생활문화시설까지 폭넓게 했다. 또한 지원센터 운영위원회에 개인과 단체 참여를 보장했다. 예산이 수반되고 관리가 필요한 지원센터 설립에 인천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강 의원은 “지방선거가 끝나고 7대 의회가 열리면 인천을 문화 창조도시로 만들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해 관련 조례를 시급히 제정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인천 특성 살린 문화정책으로 경쟁력 갖춰야

곧이어 이재상 인천연극협회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이 회장은 “30년간 인천에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체계적인 문화정책이 추진되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통과된 법을 기본으로 전체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며 “문화권에 제일 소외된 사람들은 학생들이다. 입시교육에 매몰되면서 문화적 가치를 학습할 시간이 없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번 법 제정을 계기로 인천의 특성에 맞는 문화정책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며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인천의 문화적 특징을 설명했다.

“예술전문가나 관객 모두 서울로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고, 지원의 감소와 관객 수 등의 계량적 잣대로 인천 예술인에 대한 공공문화시설의 역차별이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인천을 점차 서울의 문화를 받아 소비하는 문화적 소비도시로 몰아가고 있다”

이 회장은, 인천이 서울과 경쟁에서 회생이 불가능하다면 이의 극복방안으로 인천의 특성을 살린 창조적인 실험성을 갖춘 전문가를 성장시켜 서울에서 경쟁하다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는 순환구조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역적 특성을 충분히 감안해 인천에 맞는 문화 지원 정책을 수립할 것도 부탁했다.

공유경제형 마중물 지원방식 필요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임승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는 성남시의 ‘사랑방클럽’과 인천시의 ‘문화바람’을 비교분석하며 지속가능한 생활문화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제안을 내놓았다.

성남시의 경우 ‘시민 주체의 문화예술 창조도시 구현’을 비전으로 민관 협력체계로 ‘사랑방문화클럽’ 209개를 운영했다. 관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전국적인 모범사례로 알려졌다. 그러나 관료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업의 재미와 클럽 간 친밀성이 떨어지면서 효과가 저하되고 있다.

인천 ‘문화바람’의 경우는 ‘문화수용자운동’ 차원에서 회원과 시민들의 출자로 소극장 ‘소풍’을 마련하고 이어 동아리 연습공간인 ‘부평놀이터’와 ‘남동놀이터’를 만들었다. 회원도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공간 임차료와 운영비 증가를 감당하지 못했다. 자구책으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적자가 누적됐다.

임 대표는 “생활문화 동아리 활동의 첫 번째 동기는 기능 습득이지만, 활동으로 자존감이 올라가면서 사회적 공헌을 하고 싶어 한다. 자연스럽게 지역에서 문화공간을 거점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며 주인의식이 생긴다. 또한, 생활 민주주의를 체험하며 시민의식을 높인다”고 말했다.

공동체가 자생력을 갖추려면 안정적인 활동공간을 가져야한다. 지금까지 행정이나 정치권에서는 공간 지원 방식으로 위탁이나 한시적 조건부 대여를 했는데, 이는 공간에 대한 온전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임 대표는 자생적인 커뮤니티에 대한 공간 지원 방식으로 ‘공유경제형 마중물’ 지원 방식을 제안했다.

“전세자금처럼 저리로 장기 대출하는 것이다. 단체들도 갚아야 자생력이 생긴다. 원금과 이자가 쌓인 금융기관은 또 다른 곳을 지원하면 된다. 돈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돈다. 커뮤니티에 지원하는 돈이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을 ‘문화 융성 체감의 해’로 설정했다. 국회를 통과한 문화 관련법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관련 조례 제정 등 할 일이 많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은 인천지역에서 법 검토와 시행령 관련 제안을 위한 기구를 구성하고, 인천지역 문화진흥을 위한 정책 제안 단위를 구성해야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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