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박종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지역본부장 당선자

지난 1월 16~17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조합원 수 약 13만명) 위원장과 각 지역 본부장ㆍ지부장을 동시에 뽑는 선거가 실시됐다. 인천지역본부장 선거에선 조합원 2291명이 투표에 참여, 단독 입후보한 박종면(남동지부 소속) 본부장과 박철준(서구지부 소속) 사무처장을 지지율 97.9%로 선출했다. 당선사례로 바쁜 박종면 본부장 당선자를 21일 공무원노조 남동지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부장 선거와 동시에 진행하면서 지부장 후보들이 영향력 있는 분들이라 저는 덤으로 편승한 결과가 아닐까요?”

박종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공무원노조) 인천지역본부장 당선자는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것에 수줍은 웃음을 보이면서 반대표를 던진 조합원 30명에게 더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공무원노조는 2002년 3월 창립했다. 당시 법은 공무원노조의 전단계인 ‘공무원직장협의회’만 허용했다. 때문에 공무원노조는 불법은 아니되 ‘법외노조’로 존재했다. 그 때 ‘부정부패 척결, 공직사회 개혁’이라는 구호를 외친 공무원노조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시민사회ㆍ노동단체들은 ‘법외노조’인 공무원노조를 지키기 위해 지역별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노조가 건설되고 지켜진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국민들은 부정부패의 온상처럼 여겨지는 공직사회에서 노조의 필요성을 공무원 당사자만큼이나 절감했던 것이다.

공무원연금법 개악 저지, “공적 연금 강화에 이바지”

▲ 박종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지역본부장 당선자.
이번 동시 선거에서 전국 후보들의 주요공약은 ‘공무원연금법 개악 저지’다. 국민들이 공무원노조에 거는 기대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밥그릇 지키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우려와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요. 하지만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연금은 노후를 대비하는 사회안전망이어서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공적 연금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죠. 공적 연금을 약화시키는 것은 당장에 예산을 줄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공적 연금의 약화는 사보험들의 영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지금은 공무원들을 위해 지킨다고 하지만, 이걸 지켜내는 것은 공적 연금 강화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공무원들은 퇴직금이 없다. 신분적 제한으로 영리활동을 할 수도 없다. 산재보험이 별도로 없어서 사건사고가 나면 미래의 연금으로 앞당겨 처리한다. 국민연금은 4.5% 본인부담이지만 공무원들은 7%를 부담한다. 노조에서는 둘이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말을 강조하며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도 찾고 있단다.

노조활동 좋아서 스스로 시작 “공무원 자존감 회복하는 길”

박 본부장 당선자에게 언제부터 노조 활동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주변 권유로 시작한 사람이 많은데, 저는 제가 좋아서 했어요. 2002년 7월 남동지부가 설립될 때에도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선전편집부장을 했어요. 아무 경험이 없어서 소식지를 만드느라 고생했죠”

이후 정책기획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2ㆍ3대에는 수석부지부장, 4~6대에는 지부장을 연임했다.

“2004년 11월 공무원노조에서 총파업을 했어요. 정부가 ‘공무원노조 특별법’을 제정하려했는데 내용을 보면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 것들이라 전국적으로 파업을 했죠. 당시 지부장 권한대행을 하면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어요”

‘철밥통’이라 불리는 이들이 같은 공무원인 경찰에게 연행되면서까지 노조를 만들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공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게 공무원들이 자존감 없이 일하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 단속업무를 하러 현장에 나가 주민들과 충돌할 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냐? 시키니까 하지’라고 얘기하는 동료들이 싫었어요. ‘정당한 일을 하면서 왜 남 핑계를 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공무원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가 제대로 대우와 보상을 못 받으니까 민원인들한테 책임 있게 행동하지 않는 거죠”

2000년대 초까지 공무원들의 당직비는 1만원이었다. 당직 후 다음날 휴무도 아니어서 오전 9시에 인수인계를 하고 오후 1시까지 다시 출근해야했다. 노조를 만든 후 당직비 3만원 인상과 익일휴무를 얻어냈다. 그것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자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노조 건설로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은 개선됐는데, 부정부패는 줄었는지 궁금했다.

“공무원에게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있어요. 초미의 관심사인 거죠. 예전엔 부당인사, 줄서기 등이 많았는데 노조 활동으로 많이 개선됐죠. 또 구의원들이 부당한 압력과 부정한 청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관행이 없어지고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박 본부장 당선자에게 가장 보람된 기억은 공직사회 내에서 성희롱과 성폭력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노조만의 노력은 아니고 공직사회 구성원들이 많이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했죠. 시발점은 노조가 역할을 했다고 봐요. 예전엔 가해자가 노출도 안 되고 오히려 피해자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불이익을 당했는데, 피해자가 노조를 믿고 문제를 풀어서 해결이 됐죠”

복수노조로 조합원 분열, 진보구청장 취임 후 정리돼

노조 활동이 늘 보람된 것만은 아니었다. 박 본부장 당선자는 2004년 ‘공무원특별법 제정’ 저지를 위한 총파업에 참가해 파면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조합원들 사이의 분열이었다. 2007년 남동구청에 별도의 노조가 생긴 것이다.

“구청 집행부가 공무원노조 남동지부를 의도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해 노조를 만든 거죠. 단체협상을 하기 위해 노조 쪽 교섭대표를 10명까지 구성할 수 있어서 조합원 수 대비 ‘8명 대 2명’을 제안했더니 ‘2명 대 2명’으로 하자는 거예요. 나중에 ‘5명 대 3명’으로 저희가 양보를 했지요. 저희는 전국공무원노조여서 중앙이나 인천지역본부의 간부들이 교섭위원으로 들어오는 것이 당연한데, 저쪽 노조에서 반대를 했어요. 민주적인 원칙이 전혀 작동되지 않았죠”

그러나 2010년 6.2 지방선거를 거치며 상황이 변했다. “범야권단일후보인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가 남동구청장으로 당선됐죠. 그들(=별도 노조)의 버팀목이 없어져서 아무런 활동을 안 하다가 노동부에서 ‘휴면노조’를 정리하면서 2011년에 없어졌습니다”

인천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최초의 진보구청장 두 명이 탄생하면서 전국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노조의 입장에서는 진보구청장이 어땠을까?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다보니 양쪽 모두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신뢰하는 관계이고, 공무원노조를 더욱 단단하고 민주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어요”

6.4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지방선거는 공무원집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후보 개인에 대한 의견을 낼 수는 없지만, 지방자치의 한 축인 공무원노조 간부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있어요. 소신껏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한 의지와 실현하고자하는 역량이 있는 분이 필요합니다. 전체 공무원을 아우르고 주민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뛰는 단체장이 요구됩니다. 반면에 정치적으로 당의 영향에 따라 좌우되는 분들이 구청장이 되면, 공무원들이 일하기 어렵죠”

정권의 집중공격, 비판기능 수행 때문
“파트너로 인정하고 상생하면 좋겠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13년째 노조 간부로 사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더라도 가족들에게는 어려운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저는 행복한 사람이죠. 처음 활동할 때부터 묵묵히 바라봐주고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아내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설득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렸어요”

박 본부장 당선자에게는 군 복무 중인 아들 둘이 있다. “큰아이가 중1 때 제가 파면됐는데, 담임선생님이 아버지 직업을 물었는데 우리애가 ‘잘렸어요’라고 하니까,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너희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일을 하셨다. 네가 기죽을 것 없다’고 하셨대요. 사춘기 아이들이 문제없이 잘 클 수 있었던 건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죠. 전교조 조합원이었는데 지역 행사 때 만나서 고맙다고 말했죠”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여전히 정권의 집중공격을 받고 있다. 현 정권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으로 전국이 술렁거리던 때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 혐의로 공무원노조 서버를 세 차례나 압수수색했다. 전교조는 1997년 합법화된 이래 14년 만에 ‘법외노조’가 될 처지에 놓였다.

“비판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전교조는 학교 현장에서 역사교육이나 교육정책 등의 문제점을 학생들에게 알려내는 역할을 하고, 공무원노조도 정부정책에 대해 일정하게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죠. 파트너로 인정하고 상생하면 좋겠지만 그럴 정도로 성숙하지 않다고 봐요”

흔히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는 공무원’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국민의 세금이 허투루 사용되지 않게 국민들은 공무원노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하고,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은 정권이 아닌 그런 국민들에게 복무해야합니다. 그게 공무원노조의 창립 취지이며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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