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성윤 인천 푸른솔한의원 원장
얼마 전 이란의 관영통신사 <IRNA>는 20세 이후 60년간 단 한 번도 씻지 않은 할아버지를 소개했다. 그는 땅바닥이나 굴을 파고 잠을 자며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고 담배를 즐기지만 그 누구보다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청결이 병을 불러온다’는 믿음 때문에 씻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반면 우리네 일상을 보자. 아침과 저녁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속옷은 매일 갈아입는다. 모든 음식은 일단 냉장고에 들어가야 하고, 물은 정수해서 먹어야 안심이다. 놀이터에서 흙 묻히고 노는 아이들을 보는 일은 먼 과거의 일이 됐다. 집안 살림은 모두 먼지하나 없이 제자리에 바르게 놓여있어야만 한다.

근대사회 들어 위생상태의 개선은 영양상태의 개선과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평균수명과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켜줬다. 파리의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거리에 널린 똥을 밟고 가야했던 시절에 만연했던 전염병은 이제 더 이상 사망원인의 앞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이명래 고약으로 상징되던 종기로 고생하는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 깨끗해진 덕분이다.

하지만 이제 문제는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자연계의 불결한 것, 기생충, 세균 등에 접촉하면서 성숙해간다. 때문에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는 면역력이 오히려 떨어진다.

면역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 몸에 들어온 나쁜 물질(항원)에 대해 싸우면서 그것에 대한 저항력(항체)을 가진다는 뜻이다. 예방주사를 맞는 것도 작은 세균을 미리 몸 안에 넣어 이후 더 큰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 놓는다는, 어찌 보면 단순한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멸균, 소독, 항균의 기치를 내걸면서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지나치게 약화되고 있다. 종기가 없어졌어도 그보다 더 무서운 알레르기 질환은 급증했다. 특히 아토피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청결시대’의 대표적 질병이다.

동의보감에는 ‘양자십법(養子十法)’이라 해서 아이를 키우는 데 주의사항 열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목욕을 자주 시키지 말라는 것(少洗浴)이다. 피부 저항력이 어른에 비해 떨어지는 아기의 경우 과도한 청결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았던 조상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균을 우리 몸에서 분리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멸균이 아니라 세균과의 적당한 타협과 공존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 사람 몸 자체가 세균덩어리고 세균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피부에 존재하는 포도상구균은 비록 땀 냄새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성의 음부에 존재하는 세균들은 젖산을 만들어 질 내부를 약산성의 상태로 유지해 외부의 나쁜 세균에 대한 방어막을 형성한다. 이를 비누로 자주 씻으면 약산성 상태가 무너져 칸디다균이 증식해 질염을 야기한다. 지나친 청결이 화를 부른 것이다.

왼쪽으로 굽은 막대기를 똑바로 펴려면 오른쪽으로 잡아당겨야한다. 지나친 청결상태가 문제가 된다면 조금 더러워지는 것으로 방향을 잡는 것도 필요하다. 앞에서 말한 이란의 씻지 않는 할아버지는 80세가 돼도 건강하다고 한다. 최악의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 편히 사는 것이 그 원인이 아닐까, 보도는 전한다.

청결 강박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약간은 더럽게 살아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영화 <숨박꼭질>의 주인공 손현주가 보여주는 피가 나게 손을 씻는 결벽증이 우리에게 조금씩은 숨어있지 않은가, 생각해볼 일이다. 노숙자에게 탈모 없고, 거지에게 아토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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