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인천 ‘술 빚는 사람들’

오로지 쌀과 물, 누룩으로만 술을 빚는다

▲ 정형서 원장(왼쪽)이 가양주 교실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술 담그는 법을 교육하고 있다.
설을 앞두고 직접 술을 빚는 사람들이 있다. 빚은 술을 설 차례 상에 올릴 예정인데, 이 사람들의 모임 이름은 ‘술 빚는 사람들’이다. 인천 남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정형서 원장이 처음 술 빚는 걸 배워 이 모임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정형서 원장은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우리 술 빚는 법을 배웠고, 그 뒤 인천에서 같이 해보자고 주변 사람들에게 제안했는데, 처음 관심을 보였던 이들이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남지부 회원들이었고, 그 뒤 연수지부 회원들이 결합했다.

참여 인원이 늘면서 현재는 ‘술 빚는 연수주민’과 ‘술 빚는 남구주민’으로 분리해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술을 담근다. 모임마다 한 번 모일 때 10~15명 정도가 모인다.

쌀 4킬로그램, 물 4리터, 누룩 500그램이면 8~10리터 정도의 술을 만들 수 있다. 쌀과 물, 누룩이 어울려 저만의 술 맛을 낸다.

누룩은 전통누룩 제조장인 전라남도 송정 송학곡자에서 구매한 걸 사용하는데, 행사 때는 누룩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통밀을 빻아 가루를 만든 다음 물을 넣어서 반죽해 꽉 누른 다음에 3주간 자연발효를 시키면 누룩이 만들어진다.

정 원장은 “술 맛은 우선 쌀이 좋아야한다. 문헌을 보면 술을 빚을 때 술 담그기 전날 ‘백세’한다고 돼있다. 백번 씻는다는 뜻인데, 쌀뜨물이 없어질 때까지 깨끗하게 씻어야 술맛이 잡냄새 없이 깔끔하다”고 말했다.

쌀을 깨끗이 씻어 하루 정도 불린다. 다음날 물기를 빼고 두 시간 정도 고두밥을 짓는다. 밥을 각자 지을 수 없어 한꺼번에 찐다.

이렇게 하면 모두 똑 같은 밥에, 똑 같은 물에, 똑 같은 누룩에, 똑 같은 비율로 술을 만들게 되지만, 막상 술이 나오면 맛은 다 다르다.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넣어 각자 집으로 가져가는데, 집마다 온도와 습도 등이 달라 술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정 원장은 “누룩 안에 수백 가지 효모가 있다. 효모마다 반응하는 게 달라서 술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집집마다 자기만의 술 특성이 생기는 것”이라며 “가양주에는 단맛, 신맛, 떫은 맛, 짠맛, 청량 등의 다섯 가지 맛이 있는데, 이 다섯 가지 맛이 각 가정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효모들이 다르게 반응하면서 각기 다른 맛을 내게 한다”고 말했다.

가양주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배어 있다. 음식은 곧 고향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이자, 그 중에서도 술은 예로부터 제사나 잔치에 사용하려 빚은 것이기에 더욱 진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술 빚는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사람에 대한 그리움, 공동체 대한 그리움을 술로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활동하기 좋을 때 좋은 술 만들기도 좋아

가양주를 담근 뒤 맨 위에 맑게 떠있는 술을 청주라 하고, 청주를 걸러 낸 뒤 남은 원액을 다시 체에 담아 물을 섞어 걸러 낸 술이 막걸리다.

가양주도 절기마다 부르는 명칭이 있다. 가장 먼저 담그는 술은 삼해주다. 정월 초하루를 지나고 12지지 중 해(亥)일에 술을 빚고, 다시 12일 후 해일에 덧술을 하고, 세 번째 해일에 2차 덧술을 하는 게 삼해주다.

삼해주는 삼양주다. 삼양주는 세 번 배양한 술이다. 첫 번째 술은 물을 끓이며 쌀가루를 풀어서 고두밥 대신 죽을 만들어 담그거나, 물을 끓인 상태에서 불을 끄고 쌀가루를 넣어 만든 반생반숙 상태의 범벅을 만들어 담근다.

죽 또는 범벅 상태의 고두밥에 물과 누룩을 넣어 버무려 발표시키면 1차술, 막걸리가 만들어진다. 이때 겨울에는 6~7일, 여름에는 3일 뒤 다시 범벅을 넣어준다. 효소가 알코올을 생성하는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6일, 3일 후 고두밥을 넣어준다. 삼양주로 술을 빚으면 술맛이 더 깊고 좋다.

1차술과 2차술을 밑술이라고 하는데, 밑술을 하는 이유는 효모균을 배양하기 위해서다. 효모균은 누룩 안에 갇혀 있다가 물과 밥을 만나면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이 효모가 좋은 영양분을 얻어 포도당을 만들고 알코올로 분해하면서 맛과 향이 좋은 술을 만들어낸다. 밑술을 네 번 하는 술은 오양주라 부르는 귀한 술이다.

봄에 배꽃 필 무렵 담그는 술을 이화주라 부른다. 술에서 배꽃향이 나서 붙은 이름인데, 그렇다고 고두밥과 누룩을 비빌 때 배꽃을 넣은 것은 아니다. 배꽃향이 나는 까닭은 배꽃 필 무렵 사용하는 누룩이 통밀과 다른 이화곡을 사용하는데, 이 이화곡이 배꽃향의 성분이다.

이화곡은 3월에 만든다. 통밀이 아닌 쌀가루로 누룩을 만드는 게 특징이다. 이때 만든 누룩에서 배꽃향이 난다. 즉 누룩의 효모균들이 저마다 향을 뿜어내는 것으로, 그 효모균들이 배꽃이나 과일 향을 내게 해준다.

이와 다릴 직접 꽃잎을 넣어 만드는 술도 있다. 진달래주는 말린 꽃잎을 2차술에 넣어 같이 발효시켜 만든 것이고, 백화주는 백 가지 꽃잎향이 나는 술이다.

술 담그기 가장 까다로운 때가 여름이다. 외부 온도가 높아 술이 쉽게 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 담그는 술을 과하주라 한다. 여름을 지나는 술이라는 뜻이다. 과하주는 보통 6월 말에서 7월 정도에 담근다.

▲ 교육에 참여한 주민이 고두밥과 누룩, 묵을 비빈 후 발효를 위해 옹기에 옮기고 있다.
정 원장은 “가양주는 자연발효로 만들어지는데 온도가 25도 이상 넘어가면 금방 쉰다. 초산균들의 활동이 드세기 때문이다. 여름철 온도가 25도 넘어 가니깐 좋은 효모보다 초산균의 활동이 더 활발하다. 효모가 고두밥을 포도당으로 만들고, 다시 알코올로 분해해야하는데 초산균 때문에 포도당까지만 진행하고 알코올로 분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때 증류한 소주를 넣어주면 효모가 초산균으로부터 보호되면서 전혀 다른 술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술 담그기 좋은 때는 봄과 가을이다.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은 절기에 좋은 술이 만들어진다. 우리 몸에 이로운 효모들도, 우리 몸이 활동하기 좋은 조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봄에 이화주가 있다면, 가을에는 국화주다. 감국주라고도 하는데, 달 ‘감’에 국화 ‘국’자를 쓴다. 식용 국화 중 단맛이 나는 감국을 말려서 같이 발효시킨다. 이 말린 감국을 2차술 때 고두밥과 누룩, 물과 함께 섞어 발효시키면 국화주가 만들어진다.

술 향기 그윽한 곳에, 정겨운 사람들 이웃 맺어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술 빚는 집은 점차 사라졌다. 시골에서도 이제 술 빚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다. 명절 때마다, 제사 때마다, 잔치 때마다 술 담그는 게 다반사였지만, 지금은 전통주가 홀대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지만, 우리 전통누룩을 사용하는 양조장은 극히 드물다. 양조장에서는 술 만드는 효모만 뽑아서 밥에 입힌 뒤 술을 만든다. 술만 되게 하는 균들만 뽑아서 술을 담기에 술이 안정적이지만 맛이 획일화된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정 원장은 “누룩에는 수백 가지 효모들이 있지만 공장에서는 잡균을 없애버린 한 가지 균만 사용해 술을 만든다. 그러다보니 술이 안정적으로 만들어지고 술 양도 더 나온다. 하지만 가양주는 똑 같이 술을 빚더라도 때마다 효모가 반응하는 게 달라 술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 원장이 가양주 모임을 시작한 이후 인천에서도 술을 빚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술 빚는 사람들은 등산이나 모임에 갈 때 직접 빚은 술을 가져가면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모임에 술을 가지고 나가면 회비도 면제받는다고 했고, 집에 손님을 초대해 직접 빚은 술을 내올 경우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가양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12년 남구청의 후원으로 가양주 교실을 진행했고, 지난해에는 봄과 가을에 두 번을 진행했다. 연수구에서는 연수문화원이 나서서 동아리 형식의 강의를 진행했다.

‘술 빚는 사람들’은 매달 한 번씩 술을 담근다. 인천연대 남지부에서는 셋째 주 일요일에 모이고, 연수지부는 넷째 주 일요일에 모인다. 술을 처음 담그는 사람들을 위해서 4주간 가양주 교실을 진행하기도 한다. ‘술 빚는 사람들’은 올해 가양주 뽐내기 대회도 열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 전통주를 만드는 일을 복원하고, 삭막한 도시생활 속에 사람과 공동체 대한 그리움을 확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술 빚는 사람들’은 올 설에도 직접 빚은 술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가거나, 차례를 지낼 것이다. 술 향기 나는 곳에 정겨운 사람들이, 저마다 술을 빚어 마을에 이웃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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