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 짐 자무쉬 감독 | 2014년 개봉2014년

 
뱀파이어는 동서양 귀신을 통틀어 가장 에로틱하고 서늘하고 그래서 매력적인 귀신임에 분명하다. ‘천국보다 낯선’으로 일찌감치 작가주의 영화감독 계보에 이름을 올린 짐 자무쉬 감독 역시 이 매력적인 서양 귀신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짐 자무쉬 감독의 뱀파이어는 귀신 영화라면 으레 있을 법한 ‘사연’보다는 ‘비주얼’에 집중한다. 21세기 뱀파이어 커플인 아담과 이브는 미국 디트로이트와 모로코 탕헤르에 각각 떨어져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사랑은 어느 연인보다 절절하고 서늘하다.

‘절절함’과 ‘서늘함’이 어떻게 같이 어울릴까 싶지만, 둘을 절묘하게 어울리게 만드는 것은 아담과 이브를 분한 배우들의 압도적인 비주얼이다. 눈의 여왕이 인간계에 내려온 듯한 외모와 분위기의 틸다 스윈튼이 분한 이브, ‘토르’로 어두운 매력을 이미 전 세계에 알린 톰 히들스톤이 분한 아담은, 정말 매력적이다.

뱀파이어 커플 아담과 이브는 수세기에 걸쳐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다. 그들은 뱀파이어지만 인간사냥을 하지 않는다. 21세기답게 거래로 신선한 피를 ‘사서’ 마신다. 때문에 이들의 일상에서 그들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아담은 ‘인간좀비’들이 만드는 21세기에 대한 염증으로 절망에 빠져 있다. 보다 못한 연인 이브는 밤비행기로 디트로이트로 향한다. 여기에 이브의 사고뭉치 여동생 에바(미아 와시코브스카)가 갑작스럽게 방문하면서 이들이 뱀파이어임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영화의 사건들은 매우 우발적이고, 인간좀비에 대한 비판도 그렇게 날이 서 있지 않다. 영화가 ‘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는 서구 문명사를 유려하게 드러낸다.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값이라도 하듯 그들의 대화엔 서구 문명사의 찬란한 유산이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 그들은 유명한 시인과 음악가, 과학자, 예술가들과 친교를 나눈다. 인간의 피를 먹고 영생불멸하는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공포가 아닌 서구 문명사의 총체로 읽어낸 짐 자무쉬 감독의 해석은 살짝 허세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매우 참신했다.

서구 음악사를 온몸으로 뚫고 온 아담은 유튜브를 통해 21세기 전 세계의 팬들과 조우하는 뮤지션이고, 모로코의 이국적 풍경을 누리며 사는 이브는 단 한 번의 손길로 악기의 연식을 감식하고 촉각과 후각으로 나무의 학명까지 읊조린다. 아담과 이브가 인간의 피를 빨아 얻어낸 불로영생은 단순한 수명 연장이나 늙지 않음이 아닌 인류의 지식과 예술을 축적하는 과정인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영화 내내 흐르는 국적 불명의 이국적인 음악과 배우들이 뽐내는 스타일이 역설적으로 생의 욕구를 자극한다. 아담은 21세기 ‘인간좀비’에 절망하지만, 아담과 이브가 뽐내는 스타일은 바로 그러한 인간들이 쌓아올린 문화적, 예술적, 과학적 성취의 결과물인 셈이니 이 어찌 살 만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뱀파이어라는 어둠의 히로인들을 통해 생의 욕구, 사랑의 욕구를 자극한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