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승주 동북아정치경제연구소장의 경제이야기④

 
우리 국민들에게 ‘아베’는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다. 20세기 초반 군국주의 부활을 지겹게 획책하는 일본의 지도자 이름이 곱게 들릴 리 없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아베노믹스’도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저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베의 군국주의 퍼포먼스는 우리를 비롯한 세계를 분노시키고 있다. 수천만명이 그들의 전쟁 놀음에 죽어갔는데, 그 역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가당하기나 한 것인가?

그러나 경제 측면에서는 조금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의 일본 경제 부활 패키지 프로그램은 정치적 영역의 군국주의 부활과는 그 영역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이 엔화가치를 떨어뜨리는 화폐전쟁에 나선다는 식의 표현으로 이를 정치적 영역의 군국주의 부활과 연결하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설명은 선동적이고 정치적이기는 하지만, 경제학의 설명과는 좀 멀어진 것이기도 하다. 먼저 아베노믹스가 왜 등장하게 됐는지를 알아보자.

일본 경제는 1990년의 버블 대붕괴 이후 24년째 초장기 침체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한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단어가 일본 경제를 상징하는 말처럼 나왔지만, 사실은 ‘잃어버린 25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1990년 이후 일본 경제는 정말로 꾸준하게 침체를 이어오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 경제를 상징하는 단어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저성장, 저물가, 저소비이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디플레이션’이다. 소비 여력이 떨어진 가계는 극도로 소비를 위축시키고,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계속 가격을 떨어뜨려 대응하는 동안, 경제 전반은 제로(=0)성장의 긴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나와 있다. 1929년부터 이어진 미국발 세계대공황의 경험에서 나온 수많은 경제학 이론들이 이미 존재한다. 그 대책을 요약하자면, 정부는 적자재정으로 시장에 돈을 풀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화폐를 찍어내 역시 돈을 푸는 것이다.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이것만큼 검증된 이론도 없다. 일본 역시 이런 대책을 무려 24년 동안이나 꾸준히 시행해왔다. 그런데도 경제는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백약이 무효처럼 보인다.

아베노믹스는 일본 정부가 그동안 해온 각종 대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돈 풀기’ 대책을 실행하자는 것이 그 요체이다. 더욱 과감하게 돈을 풀어 경제를 자극하자는 말이다. 즉, 아베 정부는 출범 후 10조 3000억엔의 대규모 경기부양 예산을 편성하고 향후 10년간 100조~200조엔의 공공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중앙은행은 본원통화를 2년간 두 배가량 늘릴 계획으로 무제한적인 화폐 발행까지 추진하고 있다.

과거 일본 정부의 경기부양 대책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이런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정책패키지는 오히려 경제학 교과서상 충실한 대책이기도 하다.

아베노믹스는 이미 1년 동안 시행됐다. 그러나 아직도 획기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물가는 약간씩 꿈틀거리고 있고 실업률도 낮아지는 등, 수치 변화가 보이고 있다. 일본 경제의 침체가 그렇게 길고 길었던 만큼, 충격에 대한 반응도 참 느리기도 하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웃 나라의 경제 침체가 계속 되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점점 촘촘하게 엮여지고 있는 세계 경제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 이웃 국가의 성장은 우리의 성장도 함께 이끌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악연으로 묶인 이웃 국가의 역사가 우리에게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정을 요구하듯, 그 나라의 경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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