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승주 동북아정치경제연구소장의 경제이야기③

 
미국이라는 나라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흑백 인종갈등은 히스패닉까지 가세해 흑인 대통령 시대에도 여전하고, 총기자유화 때문에 숱한 생명이 이유 없이 죽어가며, 침략전쟁과 부자감세 때문에 재정적자는 천문학적 수치로 늘어가고 있다. 그 많은 문제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딱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당연히 미국의 의료보험 문제를 선택할 것이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8%를 보건의료 분야에 소비하면서도 국민의 건강관련 지표는 세계 최하위권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GDP의 10% 남짓을, 우리나라는 6%를 보건의료분야에 쓰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의 평균수명이나 각종 건강관련 지표는 우리나 유럽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미국인들이 연간 100만원을 번다면 18만원을 의료비에 쓰는 이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미래는 암담하다.

도대체 미국은 어쩌다가 이런 나라가 됐나? 왜 이렇게 엄청난 돈을 의료비에 퍼부어야하고, 그렇게 돈을 쓰고도 국민 건강은 형편없어져서 뚱보들의 나라가 되고 만 것인가. 비밀은 바로 의료보험제도에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영 국민의료보험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은 국가가 국민들의 의료보험을 책임지는 제도를 택하고 있다. 미국만 예외인 것이고, 미국만 예외적으로 이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자기가 들고 싶은 보험사를 선택해 의료보험에 가입한다. 얼핏 듣기에는 보험사 선택의 자유가 국민에게 보장된 것이 특별히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우파들이 민영 의료보험제도를 사수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런 제도는 정말로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바로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점이다.

보험에 가입해야하는 ‘국민’과 보험 상품을 파는 ‘보험사’ 간에는 필연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즉 국민 개개인은 보험사보다 훨씬 많은 건강 정보를 가지고 있다. 부모가 앓았던 유전질병, 건강에 해로운 생활습관 등은 개인이 가장 잘 파악할 수밖에 없다. 보험사로서는 자기들에게 부족한 정보를 보충하기 위해 각종 고지의무를 부과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대략의 통계자료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즉 보험가입자는 정보를 가지고 있고, 보험사는 통계를 가지고 있다. 이 게임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보험가입자이다.

그렇다면 보험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해야할 것인가? 첫째로는 건강한 가입자들을 선별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미 당뇨병이나 암을 가진 사람에게 보험을 팔면 손해가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평균적인 확률보다 좀 더 높게 질병확률을 잡아야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보험에 가입할 필요를 적게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의료보험비는 굉장히 비쌀 수밖에 없고, 그렇게 비싼 보험료를 내더라도 제대로 된 보장을 받기도 어려워진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이 모두 국영 국민의료보험제를 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족한 정보를 메우기 위해 보험가입대상을 극단적으로 늘려서 전 국민을 모두 강제적으로 보험에 가입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개개인에 대한 정보 부족이 있다 하더라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통계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게 된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체계도 이런저런 문제점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 같은 치명적이고도 본질적인 문제까지는 아니다. ‘오바마 케어’로 인해 미국 전역이 시끄러워진 것은 그만큼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에 통과된 오바마 케어도 그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발자국에 불과하다. 아직도 남은 길은 멀고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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