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79. 숯

 
책상 앞에 무심히 앉아 있다 어느 한 곳에 눈길이 멈췄다. 그곳에 이 책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문학으로 불리는 일본 운문 ‘하이쿠’ 모음집이다. 하이쿠는 단 한 문장으로 글을 끝낸다. 제목도 없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 집은 너무 작아 내 집에 사는 벼룩들도 식구수를 줄이네’ ‘사람들이 다가오면 개구리로 변하거라, 물속의 참외야’(이싸) ‘목욕한 물을 버릴 곳이 없다 온통 벌레들 울음소리’(오니츠라) ‘너무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우리 두 사람의 생애, 그 사이에 벚꽃의 생애가 있다’(바쇼)

여러 차례 읽은 글인데도 다시 보니 모두 새롭다.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마음에 ‘쿵’ 하고 박힌 글.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타다토모)

한 조각 숯에서 살아있는 나무를 발견하다니! 그것도 꽃과 잎이 만개한 푸른 나무가 아니라 흰 눈이 얹힌 고고한 나뭇가지를 말이다. 자연스레 방 한 편에 놓여있는 숯에 눈길이 갔다. 방 안이 건조해 하루에도 몇 번씩 분무기로 물을 뿌려대면서도, 난 한 번도 이 숯이 살아있는 나무였을 거란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 팩에 담긴 닭 가슴살에서 귀여운 병아리와 힘찬 닭 울음소리를 연상하는 것만큼이나,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도 잠시 상상해봤다. 나무가 숯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을.

나무의 주성분은 탄소와 수소, 산소가 결합한 셀룰로오스라는 탄수화물이다. 섬유소라고도 한다. 이것을 공기 중에서 태우면 나무를 이루고 있는 유기물(=탄소를 포함하고 있는 물질)들은 이산화탄소와 물, 그리고 빛과 열에너지로 바뀌고 하얀 재가 남는다.

그런데 반대로 산소가 완벽하게 차단된 밀폐된 곳에서 나무를 태우면 셀룰로오스가 분해돼 탄소만 남고 나머지는 기체로 날아간다. 이때 남은 까만 탄소덩어리, 이것이 숯이다. 그러니까 숯은 높은 온도로 가열돼 다른 물질들은 모두 사라지고 대신 산소와 결합해 에너지로 변할 수 있는 탄소만 남은, 연료덩어리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

숯은 습도를 조절하거나 냄새를 없애고 오염된 물을 깨끗한 물로 거르는 데도 두루 쓰인다. 나무가 숯으로 변하는 동안, 탄소 이외의 물질들이 빠져나가면서 그 자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구멍으로 남는다. 이 무수히 작은 구멍들이 숯의 쓰임을 결정한다. 구멍이 숯의 표면적을 넓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탕 한 알을 반으로 쪼개고, 또 반으로 쪼개 가루로 만들면 덩어리였을 때보다 물에 훨씬 빨리 녹는다. 사탕이 잘게 나눠지면서 물과 닿는 표면적이 넓어진 덕분이다. 스펀지가 많은 양의 물을 빨아들이는 것도 같은 이치다. 숯의 구멍은 공기와 접촉면을 넓혀 수증기를 붙잡아 두거나 내뱉어 습도를 조절하고, 미세 먼지나 음식 조리 시 나오는 오염물질을 흡착할 수도 있다.

‘그래봤자 고작 숯 한 덩어리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숯 1g에는 자그마치 200~400㎡ 면적에 해당하는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적게는 60평에서 넓게는 120평 집 한 채가 조그만 숯 한 조각에 담겨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건조하고 환기를 자주 시킬 수 없는 겨울철에 특히 빛을 발하는 기특한 실용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쩌랴. 이렇게 숯의 유용함만을 읊는 사이 나무와 숯의 생애, 그리고 시적 상상은 저만치 물 건너 가버렸다. 아! 너의 검은 속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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