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락기 강화고려역사재단 연구위원
지난달 19일,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정례회견에서 “일본은 그동안 안중근이 범죄자라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밝혀왔다”라는 발언으로 안중근 의사 표지석 설치와 관련한 한국과 중국의 협조에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사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여러 현상과 사건에 대한 한국과 중국, 일본의 해석 차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어쩌면 한-일 간, 중-일 간 관련된 것이라면 해석이 전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나 중국 남경대학살 같은 개별 건에서부터 넓게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식민지 조선의 항일투쟁과 중국의 반일운동 전반에 대한 인식도 뿌리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한국과 중국이 같고, 일본이 다른, 이 인식의 차이는 단순히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상태에 있었던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의 인식 차이라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형성된 국제질서를 근본부터 부정하려는 일본의 태도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전후(戰後)’라는 말이 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한 1945년 이후 시기를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인데, 여기에는 전쟁 이전과 다른 변화된 조건 속에서 살아야했던 일본사람들로서는 어려웠던 시기라는 의미가 내포돼있다.

직접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인한 일본의 상황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19세기 후반부터 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군림하며 조선과 중국을 비롯해 주변 국가를 침략했던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으로 인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전후’에 형성된 질서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결국 전쟁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또는 일본은 미국에 진 것이고, 조선이나 중국에는 진 적이 없다는 일본 일부 세력의 인식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도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국가 추모시설의 건립을 미루는 것도 ‘전전(戰前)’과 ‘전후’를 연속해서 동일한 일본으로 보려는 인식의 산물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일본제국주의시대의 일본국, 일본 정부와 현재의 일본국, 일본 정부를 동일시하는 인식은 결국 식민지 조선에서 자행한 각종 정책을 법적, 제도적 차원의 문제로 만들어버림과 동시에 그 질서에 저항한 조선 사람들의 투쟁은 불법적, 탈법적 행위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을 보면, 일본제국주의 타도와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의 건설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목표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역사인식에서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법률 체계에 따랐는가, 그렇지 아니한가와 상관없이 정당한 것이다. 일본이 어떻게 역사를 인식하든 어쩌면 그것은 일본의 자유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후과 역시 일본이 감당해야할 몫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의 일각에서도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비로소 성립한 신생독립국가로 여겨 ‘건국절’을 제정하느니 마니하고, 일제 때의 행위를 당시의 법률 등을 가지고 평가하면서 그것이 마치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한 것인 양 하는 움직임이 수그러들지 않고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국민적 논란과 갈등은 다름 아닌 우리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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