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77. 연탄(1)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어느 날이었다. 날씨 때문인지 점심시간이 되자 뜨끈한 칼국수 생각이 났다. 근처 식당을 찾아 나섰다. 식당 문을 열자 훈훈한 기운이 훅 밀려왔다. 오그라들었던 온 몸의 근육이 단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식당 한 가운데 연탄난로가 놓여 있었다. 아! 연탄.

연탄은 1980년대까지 가정 난방의 80%를 차지한 대표적 연료다. 난방 연료로 사용하려면 불이 잘 붙고 화력이 오래 유지되는 물질이어야 한다. 연탄은 장작에 비해 보관과 화력 조절이 쉬워 단박에 많은 이들의 아궁이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물질이 산소에 의해 모두 산화되는 것을 완전연소라 한다. 종이가 하얀 연기를 발생하며 불에 타 재가 되는 것이 대표적 완전연소다. 물질이 완전연소하려면 충분한 산소(O2)가 공급돼야하고 적정 온도가 유지돼야하는데, 완전연소 시에는 물(H2O)과 이산화탄소(CO2)가 방출된다.

만일 산소 공급이 충분치 않거나 온도가 낮으면 불완전연소를 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이산화탄소보다 산소가 하나 적은 일산화탄소(CO)이다. 일산화탄소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다. 혈액의 적혈구 속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물질이 있다. 헤모글로빈은 폐에서 받은 산소를 온 몸에 전달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헤모글로빈은 산소만이 아니라 일산화탄소와도 결합한다. 게다가 일산화탄소는 헤모글로빈과의 결합력이 산소보다 250배나 강하다. 산소를 운반해야할 헤모글로빈에 일산화탄소가 달라붙어 결국 우리 몸은 산소부족 상태가 된다.

특이한 점은, 헤모글로빈은 척추동물의 혈액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척추동물에선 헤모시아닌이 헤모글로빈의 산소 운반 역할을 대신한다. 헤모시아닌은 일산화탄소와 결합력이 없어 무척추동물은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지 않는다.

만일 사람의 몸에도 헤모시아닌이 있다면 어떨까? 일산화탄소 중독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헤모글로빈에 비해 산소 운반양이 적어 척추동물의 산소 소모량을 감당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헤모시아닌에 들어있는 구리 이온은 헤모글로빈의 철 이온에 비해 산소 운반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젖은 연탄을 사용하거나 방바닥의 틈이 갈라졌을 때, ‘연탄가스 중독’이라 부르는 일산화탄소 중독이 발생할 수 있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산소 사용량이 높은 장기인 뇌와 심장이다. 중독이 되면 우선 두통, 어지럼증과 함께 속이 메스꺼워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심해지면 호흡 마비와 발작이 일어나고 혼수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어렸을 때 몇 차례 연탄가스를 마시고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엄마는 한 손으론 당신의 아픈 머리를 짓누르며 다른 손으로는 우리에게 동치미국물을 먹였다. 동치미국물에 들어 있는 유황성분이 호흡을 돕고 체내 독소를 빨리 배출시킨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 민간요법은 사실 큰 효과는 없다. 가벼운 중독인 경우 가장 빠르고 좋은 해결책은 환기를 시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고, 중독이 심해 의식을 잃은 경우 국물이 기도를 막아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연탄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주택가를 걷다 보면 연탄재가 종종 눈에 띈다. 올 겨울, 연탄을 사용하는 이웃들이 부디 별 탈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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