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밀양전

 
사회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밀양, 765kV, 송전탑, 원전…. 올 한해 한국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사건이 어디 한두 개겠냐마는, 그 중에서도 일본 후쿠시마로부터 날아온 핵발전의 위험과 고리원자력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한 송전탑으로 인한 밀양 주민과의 갈등은, 한국사회의 갈등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후쿠시마로부터 방사능이 유출됐다는 소식은 전국의 수산시장을 얼어붙게 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사고 소식과 납품비리 뉴스가 끊일 새 없는 고리원자력발전소로부터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송전탑을 세우겠다는 한전과 밀양 주민 간 갈등은 나랏일에 딴지걸어 보상금이나 타먹으려는 님비현상쯤으로 치부됐다.

식탁에 방사능에 오염된 생선이 오르는 것엔 벌벌 떨면서 그 원인이 될 수도 있는 핵발전소의 문제나 그 발전소로부터 수도권까지 전력을 끌어오기 위해 정작 전력을 사용할 수도권으로부터는 한참 먼 멀쩡한 논밭에 고압 송전탑을 설치하는 문제에는 나랏일이라고 눈감아줄 수 있는 건, 일종의 정신분열이 아닌가.

지난 21일 개막한 18회 인천인권영화제 개막작으로 ‘밀양전’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밀양 송전탑 건설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이려니 짐작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정신분열적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겠지 생각했다. 그래서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결론이 빤한 다큐멘터리는 식상하기도 하거니와 노골적인 프로파간다에 조금은 불편하기까지 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인천인권영화제에서 만난 ‘밀양전’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울컥함을 안겨줬다. 73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 내내 눈물을 흘려야했다.

영화는 765kV 송전탑, 말썽 많은 고리원전, 한전과 밀양주민의 갈등… 영화를 보기 전부터 짐작한 장면들 뒤에 있던 밀양의 ‘할매’들을 전면에 드러낸다. 평생 밀양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온 깡촌 할매들은 평생 농사지으며 자식들을 키워온 고향집 어머니의 모습과 꼭 닮았다.

밀양 송전탑 싸움의 사회적 의의나 정치적 의미 등, 지금까지 기자나 지식인의 글을 통해 보아온 밀양 이야기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사람’이 거기 있었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냐며, 당신들이 못 막아내면 후손들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아야하는데 죽을 날 받아놓은 할매들이 싸우지 누가 싸우겠냐며, 밭일하던 모습 그대로 툭툭 털고 한전 직원들과 용역들과 맞서는 할매들이 거기 있었다.

원전, 송전탑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하기도 하고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껏 그 문제들 뒤의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게, 용역들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악착같이 싸우다가도 어느새 해맑게 웃는 할매의 얼굴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밀양 송전탑 싸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송전탑 건설을 막고 있는 주민들에게 님비라고, ‘외부세력’에게 데모질이나 배워 나랏일 망치는 빨갱이라고, 보상금이나 노리는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자들이여, 그 뒤의 할매들을 보라. 거북이 등가죽보다 더 거친 손으로 훔치는 할매들의 눈물을 보라. 후손들에게 고통을 물려주지는 않고 죽겠다며 주름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 할매들의 얼굴을 보라.

더 많은 이들이 밀양 할매들의 얼굴을 보길 바란다. 그 할매들을 통해 정치논리나 경제적 이익 너머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길 바란다.

*‘밀양전’은 공동체상영으로 만날 수 있다. 공동체상영의 자세한 방법은 오지필름 홈페이지(http://ozifilm.tistory.com/222)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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