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윤종필 문화기획자

페이스북(소셜네트워크서비스) 덕분에 굳이 직접 만나거나 따로 연락을 하지 않고도 일상을 서로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세세한 내용까지는 확인할 수 없더라도 직업이나 관심사, 활동반경은 대부분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좀처럼 일상을 종잡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윤종필(38ㆍ문화기획자ㆍ사진) 대표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 어느 날엔 초등학생들과 중구 일대를 뛰어 다니는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오는가 싶더니 어느 날엔 성인들과 연극 수업에 한창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주말엔 청소년들과 신포시장에서 ‘미션’을 수행하느라 바쁘다. 가끔 작가들의 전시회에 기획자로도 참여한다.

종잡을 수 없는 그이지만, 그의 활동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문화예술’과 ‘인천’이다. 쉬는 날도 없이 날마다 새로운 활동을 벌이기 바쁜 그를 10월 26일 오후, 중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신포시장에서 ‘러닝맨’ 미션 게임 한 판!

▲ 윤종필 문화기획자
그의 사무실 한쪽 벽은 책들로 빼곡했다. 마치 ‘교수님’ 직무실에 들어선 듯했다. 책마다 제법 손때가 묻어 있는 걸 보니 장식용이 아닌 건 분명하다. 책값만 해도 수백만 원은 될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손가락으로 한쪽에 쌓인 책 몇 권을 가리키며 “저 책들만 해도 300만 원이넘어요”라며 웃었다.

그는 과연 복잡한 인물이었다. ‘컬렉티브 커뮤니티 스튜디오525’(CCS525) 대표, ‘꾸물꾸물 문화학교’ 교장, 중구 청소년 동아리축제 기획자, 문화 비평지 ‘인천문화현장’ 편집위원, 미디어아티스트, 공공미술현장활동가, 문화예술교육 매개자ㆍ기획자, 문화예술 기획ㆍ비평, 다문화교육 콘텐츠 기획ㆍ진행 등, 그가 스스로 밝힌 직함만 해도 열 손가락이 꽉 찬다.

이 가운데 그가 시간과 노력을 가장 많이 들이는 곳은 바로 ‘꾸물꾸물 문화학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아 201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 이름이다. 중구에 사는 초등학생,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주 1회씩 진행하고 있다. 교육 대상도, 교육 내용도 확연히 달라, 그의 활동이 복잡해 보이는 데 일조한다.

초등학생 프로그램 ‘홍예문 프로젝트’는 중구 일대를 산책하면서 정해진 미션을 수행한다. 동네 간판을 조사하거나, 동네의 불편한 점과 필요한 것을 찾아오거나, 사물을 몸으로 표현해 사진을 찍어오는 등, 때마다 다르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우리동네 고고씽 알피지(RPG)’는 ‘꾸물꾸물 문화학교’ 프로그램 중 가장 신청자가 많다. 15명 모집에 서른 명 가까이 신청해 별 수 없이 오디션까지 봐야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러닝맨’ 방식을 빌려 중구 개항장 곳곳에 숨겨진 미션지를 찾아오거나, 중구 섬 문화체험, 다문화 패션쇼 등 지역 특성과 예술이 접목된 프로그램으로 구성한다. 특히 청소년들을 기획회의부터 참여하게 해 자발성과 리더십을 키우는 데도 신경을 쓴다.

성인 대상 프로그램 ‘생활의 발견’은 삶의 터전인 동네에 있는 다양한 문화공간을 찾아다니고, 자신과 지역 주민들의 생활사를 돌아보기도 한다. 올해는 연극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골수팬이 많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 수업을 듣는 이들도 꽤 된다.

“나와 내 주변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자는 평범한 취지로 시작했어요. 언어를 배우듯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과 이야기로 큰 세상에 대한 이해력을 가져보자는 거죠”

학교와 교수, 학생이 한 뜻으로

그가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1998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 대학의 교육환경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는 대학에 들어가면 강의실에 이젤을 세워 자기 구역부터 만들죠. 단절의 시작이에요. 그런데 프랑스 대학은 단절이 아닌 공동작업을 하는 곳이에요. 프랑스에서는 학위를 받기가 쉽지 않은데, 이들에게 학위란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따내야하는 게 아니에요. 학교와 교수, 학생이 함께 노력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죠. 그래서 학생은 학교에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고, 교수와 학교는 모든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아요. 학생들끼리도 서로 작업을 거리낌 없이 돕고요. 이게 가장 큰 차이죠”

처음 만나는 환경 속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는 상상을 실행에 옮겼다. 대학원까지 다닌 8년 동안 큰 프로젝트 다섯 개를 진행한 것이다. 하나의 주제로 1년 동안 예술작업을 하고 학년 말 발표를 하는 그의 프로젝트에 학교 직원과 교수, 친구 등 스텝 40~50명이 즐겁고도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언어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렵다는 학위를 따낸 것도 모자라 대학과 대학원을 모두 수석 졸업했다.

“프랑스에서 첫 개인전을 연 셈이죠. 학교에선 예술가와 똑같이 학생을 대해줬어요. 작업하는 과정이 아주 즐거웠어요. 그런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뭔가를 기획해야 하잖아요. 막상 해보니 저와 잘 맞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이쪽에 관심을 갖게 됐죠”

내가 가장 잘 아는 곳, 인천

그가 돌아온 2005년 무렵, 우리나라에선 공공예술과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전국에서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도 서울과 경기도 등에서 다양한 사업에 참여했다. 2007년 그가 안산에서 다문화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다.

“안산공단에 외국인노동자가 무척 많아요. 안산역 일대에 외국어로 표기된 간판도 있고 특이한 상점도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지역과 다문화를 연결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게 됐죠. 그런데 문득, 그곳은 교육받는 사람들에겐 ‘우리 동네’지만, 저한테는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심혈을 기울여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타지역이다보니 제가 마치 기금을 따라다니는 ‘기금 유목민’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인천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인천은 그가 삼십 년 넘게 자라고 생활해온 곳이었다. 그에게 인천은, 그 어느 지역보다 그가 가장 잘 아는 곳이었다.

“내가 사는 인천에서도 이런 교육을 한다면 (교육받는 이들이) 인천에 산다는 자부심도 느끼고 애향심도 생길 것 같았어요. 스스로 우리 지역 안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2009년 ‘CCS 525’ 문을 열고 인천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꾸물꾸물 문화학교’를 열었다.

‘마을학교’ 만들고파

올해 사업이 마무리 돼가는 시기, 그에겐 벌써부터 내년 활동 계획이 꽉 들어차 있다. 현재 ‘CCS 525’에 속해 있는 ‘꾸물꾸물 문화학교’를 내년엔 독립된 단체로 만들 생각이다.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 ‘마을학교’로 만들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는 조직이 조금 더 체계화 돼야 하고, 매개자와 기획자를 양성하는 교육과정도 필요해요. 이런 사업을 하나하나 수행해 나가려면 별도의 단체로 독립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죠”

또 청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과, 연수구 아파트단지에서 1년 동안 새로운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아직 젊은 나이라 먼 미래의 목표까지 세우고 있지는 않아요. 지금처럼 우리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예술교육과 기획을 해나가고 싶어요. 다만, 단체를 운영하기가 좀 수월해지면 좋겠어요. 아직까지 지역에서 뜻 있는 활동을 하려 해도 당사자의 희생이 많이 요구되는 게 현실이에요. 예술 활동으로 돈을 벌기란 정말 어렵거든요.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지역과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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