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합법적인 노조 지위 박탈 위기

결국 그들은 9명의 해직교사를 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법외노조’라는 암흑 같은 미래다. 이들은 이마저도 감내하겠다고 했다.

“죽어도, 참교육 실현을 위해 몸을 던졌던 해직교사를 버릴 수는 없다”는 박홍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인천지부장의 말처럼, 전교조 조합원들은 가치판단에 조직의 명운을 걸었다. 그들은 왜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해직교사들의 삶에 그 답이 있다.

<인천투데이>은 ‘해직자 배제’라는 정부의 규약 시정을 거부한 이유와 이들이 감내해야할 것들, 또 전교조의 역사를 정리했다.<편집자 주>

투표조합원 67.9%, 규약 시정 거부

▲ 지난 17일 부평역 광장에서 열린 ‘전교조 탄압 중단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박흥순 전교조 인천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전교조가 해직자를 조합원에서 배제하라는 고용노동부의 명령을 거부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고용부가 전교조에 통보한 규약 시정 마감시한인 오는 23일, 전교조는 14년 만에 합법적인 노조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전교조는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시행한 조합원 총투표에서 ‘해직교원을 조합원에서 배제하라는 고용부의 통보에 전체 투표인원(5만 9828명)의 67.9%가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18일 밝혔다.

전국 투표자의 68.59%가 거부한다, 28.09%가 수용한다에 투표했으며, 인천은 거부한다가 69.34%, 수용한다가 29.62%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고용부는 지난달 23일 전교조에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시정하지 않으면 한 달 뒤 법외노조가 된다고 통보했다.

이에 전교조는 지난 16∼18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시정해야하는지, 현재 활동 중인 해직 조합원을 탈퇴시켜야하는지를 묻는 총투표를 시행했다.

전교조 집행부가 조합원 총투표 결과를 따르기로 한 만큼 고용부가 제시한 마감시한인 오는 23일까지 규약을 시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최종적으로 법외노조 판정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강훈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은 “이번 선택은 법외노조로 가더라도 해직교사를 버릴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결과”라며 “조합원들은 해직교사가 왜 해직됐는지 그 과정을 잘 알고 있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법화 14년, 거꾸로 가는 시계

이제 24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한다. 전교조는 1987년 출범한 ‘민주교육 추진 전국교사협의회’를 거쳐 1989년 창립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교원노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에따라 전교조는 불법노조라는 탄압을 받았다. 조합원 1527명이 해직 징계를 받고 교단을 떠났지만, 전교조의 합법화 투쟁은 계속됐고, 창립 10년 만에 조합원 6만여명 규모의 합법노조가 됐다.

전교조가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법외노조가 된다는 것은 그때의 고난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다.
고용부가 문제 삼은 해직교사 9명 때문에 전체 조합원이 피해를 입어야하느냐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정부의 잘못된 명령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할 것들이 만만치 않다. 조직 중앙에서 활동했던 전임자 문제를 시작으로 교육부와의 단체교섭 권한도 사실상 상실된다.

그밖에 정부의 각종 지원금도 중단된다. 조합사무실의 임대료와 여러 교육 사업에 지급됐던 지원금도 끊기게 된다.

더 큰 걱정은 조직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전체 투표자의 과반 이상이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투쟁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28.09%나 된다. 조합원 6만여명 가운데 1만 6000여명에 달한다. 이번 총투표에서 ‘정부 명령을 수용한다’고 답한 조합원들의 선택에도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강훈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은 “해고 조합원 가입을 문제 삼은 정부는 명분 없는 노골적인 전교조 탄압을 벌이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적 운영 요구한 교사는 ‘파면’
‘거마비’ 받은 교육감은 ‘당당’

▲ ‘전교조 탄압 중단 촉구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피켓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박춘배(47)씨는 해직교사다. 인천외국어고등학교 학원민주화투쟁을 하다 2004년 4월 24일 파면됐다. ‘직원회의 불참’이 그 사유다. 교사들이 직원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비민주적인 학사운영 때문이었다.

당시 인천외고 학생들은 휴지를 줍지 않으면 5점,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오면 10점 등, 가혹한 벌점제에 대해 학교 쪽에 항의했고, 교사들도 ‘민주적 학사운영’을 학교 쪽에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했고, 학교는 문제를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휴교령’을 내렸다. 결국 인천외고 사태는 학생 90여명이 다른 학교로 전학한 뒤에야 봉합됐지만, 박춘배씨의 교사로서 삶은 2004년에 멈췄다.

박춘배 교사가 2004년 8월 4일 쓴 ‘파면교사 일기’를 보면, 당시 그의 심정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교사다. 그러나 파면교사다. 나로부터 뜯어간 살점 같은 우리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꺼이꺼이 울음을 삼켜야하는 나는 지금 파면교사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많고 가르쳐야할 아이들이 많기에 지금의 아픔을 감당하는 일은 오히려 평생을 교단에 서기 위해 잠시 쉬는 간이역의 기다림이라고 여기고 싶다.

1명을 위해 99명이 희생되는 학교가 되어가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감히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만이 ‘좋은’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하는 학교 관리자를 보며, 일사병을 앓듯, 숨이 턱턱 막혀 옴을 느꼈다. 선생질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슬픔의 역사를 살아서는 안 된다.

내가 비어두고 나온 교단의 자리를 아이들이 지키려 무던히 싸워왔듯, 나는 이 고됨의 시간을 사랑하며 살아가야한다. 나는 교사다. 상처받고 떠나간 아이들이 다시금 제자리 돌아와 물푸레나무처럼 낯익은 그런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2004년 8월 4일 인천외고 박춘배 파면교사 일기 중에서)

박춘배 교사가 원한 것은 돈도 아니었고, 승진도 아니었다. 단지,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외침 때문에 10년 가까운 세월을 학교 밖에서 싸우고 있다.

한편, 나근형 인천시교육감은 현재 부하 직원들로부터 뇌물 19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나 교육감은 “이 중 100만원만 받았다”며 공소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또, 재판 과정에서 “거마비(수레와 말을 타는 비용이라는 뜻으로, 탈것을 타고 다니는 데 드는 비용)’를 관행적으로 받았을 뿐, 대가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태생부터 ‘촌지’를 거부했다. 촌지 관행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그런데 26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인천 교육계의 수장은 ‘거마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는데, 교육감은 여전히 당당하게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