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숙 시민기자의 교실이야기⑤

요즘 남자 아이들은 좀비 놀이를 합니다. 좀비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습니다. 포털 사이트 다음(daum) 국어사전에서 ‘좀비(zombie)는 서인도 제도 아이티 섬의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살아 있는 시체를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문을 보니 ‘바쁜 생활과 반복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은 종종 좀비에 비유되곤 한다. 대중 매체에서 비추어지는 좀비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다시 부활한 시체를 일컫는 단어이다. 호러 및 판타지 작품에 주로 등장하며 부패한 시체가 걸어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잦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몇 가지를 검색해보면서, 태어나서 처음 본 좀비 영화 ‘월드워Z’를 떠올려봤습니다. 배우 브래드 피트는 아주 멋있지만 좀비들은 끔찍했죠. 살아있는 사람이 좀비에게 물리면 10초 만에 좀비가 됩니다. 그리고 좀비들은 누군가를 물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이 산 사람들을 향해 엄청난 힘으로 달려들고 물어뜯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산 사람보다 산 시체가 더 많은 지경에 이릅니다.

어느 금요일 시간교사협의실에서 일을 보고 교실로 돌아오니 한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화가 나서 우는 게 아니었고, 슬퍼 보였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봤습니다.

좀비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이 아이 책상이나 물건을 ‘쓰윽’ 하고 만집니다. 그리고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라고 소리치면서 책상 만진 손을 내밀고 뛰어갑니다. 좀비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우르르 도망 다닙니다. 그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그런 일을 겪다가 교실 앞으로 나가 칠판에 붙은 자석을 만집니다. 그랬더니 남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봤던 여자 아이 몇몇이 “자석이 오염됐다”고 소리치며 만지지 말라고 합니다. 그 아이는 화가 나서 여자 아이들과 싸우고 자리에 앉아 혼자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교사 발령받기 전에 시간강사를 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10년도 더 된 일이죠. 그날은 6학년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수업을 하려는데 한 아이가 교과서가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잘 찾아보고 없으면 우선 짝꿍이랑 같이 봐”라고 말했는데, 다른 녀석이 한 아이를 가리키며 “선생님. ○○이가 숨겼어요. 제가 사물함에 숨기는 거 봤어요”라고 말하더니 아이 몇몇이 우르르 일어나 가리킨 아이 사물함을 다짜고짜 열고 거기서 교과서 한 권을 꺼내더군요.

그러더니 “어! 정말 여기 있네”라고 말하고는 그 아이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책을 숨겼다고 비난 받은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엎드려 울더군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그 아이를 남으라고 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를 운동장 스탠드로 데리고 나가 나란히 앉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조용히 앉아있는데, 아이가 “선생님, 그 교과서는 아이들이 제 사물함에 넣어 놓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이 입으로 직접 들으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울다가 “선생님, 제가 크면 그 아이들 다 죽일 거예요. 절대 가만히 안 놔 둘 거예요” 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하더군요. 뱅글뱅글 돌아가는 안경을 쓰고 작은 몸집에 가녀린 목소리를 가진 아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렇게 분노를 토해냈지만, 그날 전 하루 시간강사일 뿐이었습니다. 그 아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현재 종종 교실에서는 이렇게 10여년 전에 일어났던 일과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 일이 하나둘 제 기억 속에 쌓여가고 있습니다. 매해 새롭게 아이들을 만날 때 마다 이번에는 그런 일 없이 평화롭게 모두가 잘 지내기를 바라며 신경을 쓰지만, 제 노력과는 상관없이 그런 일은 벌어집니다.

그런데 올해 만난 아이들에게 기대가 컸나봅니다. 여럿이 모여 함께 지내다보면 ‘툭탁’거리는 일이 다반사지만 적어도 집단성을 가진 폭력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나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고 나니 걷잡을 수 없이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슬퍼보였는지 이해하고 나니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여기저기 바쁘게 가야 하는 아이들이기에 그동안은 바로 집에 보내줬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가 또 상처가 될까 싶어 힘든 일을 겪은 아이는 집에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오늘 우리 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야기해줬습니다.

아이 몇몇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또 몇몇은 훌쩍거리며 울었습니다. “나 혼자만 가슴 아픈 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오늘 겪고 느낀 것을 글로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교실은 연필 사각 거리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아이들이 쓴 글을 들여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좀비 놀이를 했건 안 했건 모두 오늘 일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다시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왔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해야할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마음이 무겁고 어두웠습니다. 1교시 체육수업을 마치고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우리 반 녀석이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제법 큰 지렁이였습니다.

“선생님, 나무 막대기 없을까요? 아이들이 밟을까 봐요. 그런데 손으로 만지면 지렁이가 화상을 입는 대요” 긴 막대를 찾아 지렁이를 살짝 들어 올려 화단 안으로 들여보내줬습니다. 이를 본 아이는 “아~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하며 가볍게 뛰어갔습니다.

아이를 보며 금요일에 있었던 일이 함께 떠올랐고,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습니다. 이 아이는 반장과 함께 아이들의 좀비 놀이에 대해 내게 알리기 위해 용기를 냈던 아이입니다. 아이는 그날 수업을 마치고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 저는요, ‘양파의 왕따 일기’를 읽으면서 만약에 우리 반에 그런 일이 생기면 절대 침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런 일이 생기니까 정말 말하기 어렵더라고요”

저도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좀비 놀이로 피해를 당했던 아이를 불러 부탁했습니다. “어렵겠지만 아이들 앞에서 금요일에 네가 어떤 일을 겪었고 그래서 기분이 어떠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겠니”

마지막 수업시간, 아이는 용기를 내 자기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그 아이로 인해 불편하고 화났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큰 폭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교실은 예전처럼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일로 아이들도 저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살아있는 시체 놀이(=좀비 놀이)가 우리를 성장하게 도움을 줬네요.

*구자숙 시민기자는 인천대정초등학교에서 5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매달 한 차례 교육현장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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