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폭스 파이어

폭스 파이어 (Foxfire: Confessions of a Girl Gang) / 로랑 캉테 감독 / 2013년 개봉

 
환절기라 그런가, 재채기가 멎질 않는다. 차가워진 아침 공기보다 높아진 하늘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몸으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이 끝났다. 그러나 한여름의 뜨거웠던 태양의 기억은 다가올 혹한의 겨울을 지내는 힘이 될 것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한여름 작렬하는 태양처럼 타올랐던 시절을 기억하는 영화, <폭스 파이어>다. 프랑스 감독의 영화지만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미국이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자본주의의 폭풍성장으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전 세계로 번지던 시절, 반면 지독한 성차별과 인종차별, 가혹한 노동착취, 메카시즘의 광풍으로 미국사회가 꽁꽁 얼어붙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어쩌면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결코 아메리칸 드림으로 유입될 수 없는 여성, 유색인종, 노동계급, 좌파 지식인들에 대한 억압의 반작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정치·사회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온 로랑 캉테 감독은 바로 이 시절 미국 하층계급 소녀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는다.

가족과 이웃, 학교에서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여성들에게는 폭력적인 가부장질서에 입 닥치고 순응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던 미국 변두리 마을.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소녀 렉스는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 매디와 함께 아버지, 삼촌, 선생님, 또래 남자아이들로부터 온갖 폭력에 시달리던 친구들을 모아 비밀동맹 ‘폭스파이어’를 결성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소녀 갱단의 이름인 셈이다.

폭스파이어의 목표는 단 하나. 자신들을 짓밟은 세상에 대한 복수다. 친구에게 성폭력을 가한 교사를 응징하고 낡은 타자기를 가지고 싶어 했던 조카에게 타자기를 빌미로 성상납을 요구하는 늙은 삼촌을 테러한다. 또래 여자아이를 희롱하던 소년 들을 칼로 위협한다.

폭스파이어가 벌이는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복수는, 일면 통쾌하긴 하지만 다분히 무모하고 급진적이다. 현행법으로 보면 분명 범죄자들이다. 하지만 폭스파이어는 어느새 그 마을 소녀들에게 닮고 싶고 가입하고 싶은 스타가 된다. 그만큼 소녀들에 대한 억압이 컸던 사회라는 반증일 것이다.

폭스파이어의 실험은 단순한 복수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대안공동체를 실험하기도 한다. 소녀들이 함께 살 허름한 집을 구하고 각자의 능력만큼 벌어 함께 나누어 쓰는 공동체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힘도 없고 돈도 없는, 당시 미국사회에서 가장 약한 소녀들일 뿐이다. 더구나 폭스파이어 안에도 인종과 외모에 따른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매 순간 갈등과 긴장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녀들을 아니꼽게 보던 이들에게는 철모르는 아이들의 객기인 것처럼 보였던 폭스파이어의 실험은 결국 한순간 불타오르고 사그라진다. 정말 폭스파이어는 소녀들의 ‘철없는 한때’일 뿐이었던가.

그러나 렉스는 말한다. “영원한 건 없어. 때가 되면 꺼진다고 해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동안만이라도 진실하면 돼.”

이 영화는 다분히 급진적이고 무모했을지언정,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꿨고 그 꿈을 위해 뜨겁게 불타올랐던 순간의 진실을 보여준다. 물론, 폭스파이어의 소녀들이 벌인 행동은 결코 도덕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들이 뜨겁게 타올랐던 순간의 진실이 있었기에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당연시되던 1950년대와는 ‘다른’ 사회가 가능했던 것 아닐까?

무모한 상상은커녕 상식적인 바람마저 가로막힌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폭스파이어 소녀들의 불꽃같던 그 순간이 더 없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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