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73. 하늘(1)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첫 문장이다. 감성 충만하던 고등학생 시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 시를 외우고 또 외웠다. 위 구절이 멋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 시인이 바라본 하늘이 어떤 하늘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 페가수스자리나 물고기자리처럼 가을에만 나타나는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이 아니었을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의 ‘천고마비(天高馬肥)’는 시인이 살던 시절에도 흔히 쓰이는 말이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할아버지가 북쪽 변방을 지키러 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니, 유래가 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낮 하늘로 가을을 표현할 때, 윤동주는 밤하늘에서 가을을 발견했다. 시인의 눈은 역시 다르다.

밤이든 낮이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이 하늘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대체 하늘이 무엇이기에, 보는 이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하늘은 지표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 가운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공중에 가득한 공기에는 원래 색이 없다. 그런데 맑은 날 하늘은 왜 파랗게 보일까.

그 이유는 빛의 성질 중 하나인 ‘산란’ 때문이다. 빛에는 직진ㆍ반사ㆍ굴절ㆍ산란ㆍ회절ㆍ분산 등 여러 성질이 있다. 산란은, 빛이 먼지나 공기 등 작은 입자와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햇빛에는 무지개 색이 모두 담겨있는데, 이 중 가장 산란이 잘 되는 색이 바로 단파장인 파란색과 보라색이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다. 대기 중 수분은 구름이나 안개처럼 우리 눈에 하얗게 보이는데, 가을엔 대기에서 수분까지 싹 사라지면서 다른 계절보다 더욱 파랗게 보인다.

반면,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와 달리, 해가 질 때는 햇빛이 지구 반지름 정도의 대기를 더 통과해야한다. 이때는 단파장인 푸른색보다 장파장인 붉은색이 직진성이 강해 대기를 뚫고 우리 눈까지 잘 전달된다. 저녁놀이 붉게 보이는 이유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진 이후에도 도시의 하늘은 잠들지 못한다. 한밤중에도 하늘 끝자락이 희뿌옇게 붉은 색을 띠고 있는데, 이는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광(光)공해다. 광고 조명이나 가로등, 차량 전조등 등 도시의 불빛이 공중의 먼지 입자를 만나 산란한 것이다. 이 빛이 하늘의 별빛을 막아, 도시에서 별을 보기 어려워졌다.

우리가 파란 하늘과 붉은 노을을 보며 감상에 젖는 것은, 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인류의 무의식과 관련이 깊다. 비가 오고 천둥이 내리치는 날엔 사냥도 채집도 하기 어렵다. 강물이 불어나 물고기를 잡을 수 없고, 구름이 해를 가렸으니 멀리 길을 나섰다간 자칫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이들에게 가장 좋은 날이란, 바로 비구름이 싹 물러가고 파란 하늘이 비치는 날이다. 게다가 붉은 노을은 내일도 맑은 날이 이어질 것임을 미리 알려주는 신호였다. 사냥에서 돌아와 지친 몸으로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비록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반드시 사냥에 성공해 부족 사람들과 푸지게 고기를 먹게 될 거라는, 희망과 기대를 품는 것이다.

드물지만, 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을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모든 이들이, 그리고 늘, 사냥과 채집을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가뭄이 이어질 때는? 이럴 땐 비가 내리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았을까? 이런 성향도 마찬가지로 유전자 속에 차곡차곡 쌓여 후세에 이어진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지만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이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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