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⑫ 천안함 프로젝트

천안함 프로젝트 | 백승우 감독 | 2013년 개봉

 
간혹 장애인학교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도가니>나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처럼 ‘봐야하는’ 영화가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묻어두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영화라는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고 여론을 환기하는 것은 분명 유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영화팬 입장에서 ‘봐야 해서 보는’ 행위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니다. 영화는 영화로 말하는 것일진대, 영화 외에 다른 이유들이 덕지덕지 붙은 영화는 보통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때문에 영화적 재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한 영화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게다가 남들이 다 하면 아무 이유 없이 하기 싫어지는 이상한 성격은 더더욱 ‘봐야하는’ 영화를 기피하게 만든다.

정지영 감독이 제작하고 백승우 감독이 연출한 <천안함 프로젝트>는 그런 이유로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았던 영화였다. 아마도 메가박스를 필두로 한 대형 상업영화관들의 상영 거부 사태가 없었더라면, 제 아무리 훌륭하고 정의로운 이야기가 담긴 영화라고 옆에서 떠들어도 귓등으로 흘려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심의까지 마친 영화를 두고 ‘상영 거부’라는 초유의 해프닝을 벌이고 있는 극장가를 보고 있자니 안 볼 수가 없었다. ‘이것들이 상영을 거부해? 그럼 억지로라도 봐주지!’ 뭐 이런 심보랄까? 상영관이 얼마 안 되니 시간 맞추어 극장에 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개봉관을 찾지 못한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이한 개봉전략을 짰고, 덕분에 1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굿 다운로드해서 보고야 말았다.

스크린이 아닌 모니터로 봐서일까, 영화는 더없이 단조롭고 더없이 평이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벌어졌던 재판 장면의 재연이 전부였다. 마치 정돈된 보고서를 낭독하듯 3년 전 의혹이 난무했던 천안함 사건을 들춰냈다.

그렇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기억을 ‘들춰내는’ 영화다. 결코 새로운 사실도 아니고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었고 절대 다수가 의문을 가졌던, 그러나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기억을 소환하는 영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단조롭고 평이한 카메라는 당시에는 ‘1번 어뢰’를 비웃으며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떨었던 나를, 그러나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까맣게 잊고 무감하게 지내는 나를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다시 한 번 통찰하게 한다.

국가 안보를 책임진다는 국정원이 국민들을 ‘좌빨’로 몰아붙이며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고, 이른바 ‘가스통 할아버지’라 불리는 이들이 야당에게 ‘빨갱이’ ‘종북’이라며 각종 테러행위를 일삼고 있는 지금. 천안함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는 학자, 전문가들과 확실한 증거가 없어 확신할 수 없다는 야당 국회의원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던 3년 전 그때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자신을 어디서 주워왔다고 들은 아이가 아버지에게 ‘나 어디서 데려왔어?’라고 물을 때, 아버지가 ‘그런 걸 왜 알려고 그러느냐’고 윽박지르면 그때부터 대화는, 소통은 불가능하다. 천안함 사건이 그랬다” 영화 첫 장면 한 인터뷰이의 말대로, 한국사회는 질문하는 자식에게 윽박지르는 아버지 밑의 아이 같다.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그것이 설사 틀린 의혹이라 할지라도 잘못이 아니다. 국가는 국민의 의혹을 풀어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는 ‘종북’ 딱지 하나로 질문 자체를 봉쇄한다.

아무런 의문이 없는 상태는 겉보기에 평온하고 안정돼 보인다. 그러나 윽박지르는 부모 아래 자라는 아이가 말수 없이 조용하다고 안정된 상태라고 하지 않듯, 질문이 불가능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빨갱이’든 ‘종북’이든 그 어떤 꼬리표도 국민의 입을 막을 이유는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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